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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런'이 너무 좋아...'

10여년간 신경성 변비로 온갖 고생을 다하던 내가 ‘런’을 만난 것은 크나 큰 행운이었습니다. 이슬을 함초롬이 머금은 듯한 나팔꽃 같은 ‘런’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런’에 반해 버렸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차갑게 보관한 ‘런’을 꺼내 마개를 열고 한 모금 마시면서 혀 속 깊이 음미하는 ‘런’의 깊은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나는 얕은 단맛이 […]

반사 시절의 추억

반사 시절의 추억

완공한 대전교회 앞에서

발머리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주일학생들과 함께 거의 완공을 보고 있는 대전교회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아마도 여고를 졸업한 그 해였던 것 같다. 1학년이던 1957년. 재일교포 야구 선수가 대전역에 온다고 해서 나는 1학년 1반 대표로 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가다가 그만 웅덩이에 빠져 발이 젖는 바람에 학교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교실에 왔더니 부산 남성여고에서 전학을 온 한정지란 친구가 […]

1977년 7월 25일 – 범 교단적 수재민 구호 운동

1977년 7월 25일 – 범 교단적 수재민 구호 운동

`화목하고 거룩함을 좇으라`

1977년 7월 25일자 본보는 수재민에 대한 천부교의 구호활동을 보도하고 있다. 서울 경기 일원에 있었던 집중호우로 불의의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구호의 손길을 펼치는 KBS-TV의 에 시온합섬 부사장이 직접 출연해 3백만원의 성금을 기탁했으며 전국 각 교직자들이 모으고 있는 성금 중 일부는 교인 가운데 수해를 당한 사람에게 전달이 되고 일부는 MBC에 기탁한다는 것이다. 수재민 구호에 대한 전도관의 활동은 […]

화곡교회 – 참석하면 즐거워지는 교회

화곡교회 – 참석하면 즐거워지는 교회

전도받은 사람이 또 전도해 오고... 전도하는 화곡교회로

화곡교회를 찾은 6월 첫 주 일요일은 한여름 더위를 방불케 하는 뜨거운 햇볕이 오전부터 내리쬐었다. 예배 시간이 되려면 아직 한 시간도 넘게 남아있는데도 예배실에는 벌써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화곡교회는 버스 정류장에서 꽤나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에 위치한다. 예전에 산을 깍아서 교회를 지었다는 교회는 거의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야 한다. 차를 타고 올라가면 […]

전국 전도관에서 빈민 위한 ‘공민학교’ 열어 무료 교육

전국 전도관에서 빈민 위한 ‘공민학교’ 열어 무료 교육

시온 고등공민학교

지금은 획일화된 교육이 싫고 공교육에 염증을 느껴 대안학교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실정이지만,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가정 형편상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6·25전쟁 이후 온 국민이 생활고에 시달리던 1950~60년대에 배움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청소년들에게 초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던 ‘공민학교(公民學校)’,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을 실시하는 ‘고등공민학교’ 제도가 있었는데 천부교에서 이 교육에 앞장을 섰던 것이다. 공민학교는 1946년 […]

배움의 기회를 통해 신앙의 길을 알게 돼

배움의 기회를 통해 신앙의 길을 알게 돼

구례전도관 소속 - 구례 고등공민학교

나는 전남 구례구 역전 안동네에 살았다. 초등학교는 2키로 떨어진 곳에 중학교는 7키로 떨어진 곳에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구례 읍내에서 구례전도관 전도사님이 이 마을 저 마을 자전거로 다니시며 학생들을 모집했다. 이장댁에서 마이크로 온동네에 광고를 했다. “무료로 가르쳐주는데 학생을 모집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학교에 못간 애들도 많았고, 나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

‘낙도의 상록수’로 소개돼 청와대까지 방문

‘낙도의 상록수’로 소개돼 청와대까지 방문

도초전도관 소속 - 도초 고등공민학교

전남 신안군 도초도 수다리 전도관에서 한발리에 전도관을 개척하여 나는 1966년 1월 한발전도관에 부임하게 된다. 이후 이곡리에도 전도관을 개척하고 세 곳에서 공민학교를 세워 수업을 해나갔는데 학생 수가 자꾸 불어나가자 새로운 건물이 필요했다. 마을 사람들은 나서서 자발적으로 연서하여 당터라고 아끼던 큰 땅을 희사하겠다고 했다. 학교 건물을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시 신앙촌에서 생산하던 슬레이트며 목재 등 그 먼 […]

건설대의 추억

건설대의 추억

이단우권사 / 기장신앙촌

나는 1955년 부산 집회에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1958년 5월 13일에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였다. 지금도 기장신앙촌이 그렇지만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신앙촌만한 생활환경이 없었다. 한국전쟁으로 전 국토가 피폐화되었고 원조물자로 연명하던 시절에 자급자족으로 삶의 터전을 하나님께서 일구어주셨으니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은혜를 받고 귀한 정성으로 물건을 만들고 그야말로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었다. 나는 그 후 군대를 갔다오고 양말공장을 거쳐 1962년 7월에 덕소신앙촌에 […]

1957년 6월 24일 – 성조지(星條紙)에 이만제단을 소개

1957년 6월 24일 – 성조지(星條紙)에 이만제단을 소개

하루 한 곳씩 세워지는 전도관

“이 땅에 일어난 성신의 불길은 드디어 세계적 포석이 성숙화 되어~” 1957년 6월 24일자 신앙신보에는 ‘스타즈 앤드 스트라이프스(STARS AND STRIPES)’에 소개된 이만제단에 관한 기사와 사진이 실려 있다. “서울 중앙전도관의 교인 수는 이만명이며 전국의 각 제단 총 수는 4백 개가 된다는 바 그 가운데 특히 한강변에 세운 이 중앙의 큰 제단은 순전히 전도관 신도들의 헌금과 그들의 노력으로 […]

‘하나님의 은혜로 핀 시신을 뺏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핀 시신을 뺏겨서는 안 된다’

조환동 어린이 시신 사수(死守) 사건

때는 1987년 재야 민주화 운동이 절정을 이룰 때였다. 8월 9일, 장마가 끝나고 한여름 더위로 푹푹 찌는 여름날 오후. 청주시 남문로 중앙공원에서는 충북민주화운동협의회(회장.허종현. 성공회신부)주관으로 ‘민주정부수립과 민족통일을 위한 한마당대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집회가 무산되자 이 대회에 참석하려던 2백여 명의 청년회원과 대학생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대치했다.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시위대가 분산되던 중 시위대 일부가 음성경찰서 소속 지프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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