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꽃 향기같은 진한 냄새가 목안으로 흘러 들어와

최용득 승사(1) / 덕소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126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저는 1923년 8월 서울 서빙고에서 태어났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인근의 서빙고 교회를 다니긴 했으나, 비 오는 날 떨어지는 빗줄기를 재며 나갈까 말까 고민하곤 했으니 말 그대로 ‘교회 다닌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저는 어느덧 청년이 되었고, 이따금씩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매년 춘하추동 사계절이 어김없이 변하여 곡식이 자라는 것과 같이 우주 만물이 어긋남 없이 운행되고 있다면 이 오묘한 섭리를 주관하시고 운행하시는 존재가 반드시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동안 내가 건성으로 교회를 다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온전한 신앙인이 되어 하나님과의 연결함이 있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주일학교 반사도 하고 청년회 임원도 맡는 등 교회 일에 열심을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여러 부흥집회를 찾아가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해 보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55년 여름이었습니다. 하루는 서빙고 교회에 같이 다니던 김 집사님이 저를 찾아와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한강에서 대규모 천막집회를 연다는 포스터를 보았다면서 같이 가 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김 집사님이 전해 들은 말에, 박 장로님 집회에는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의 말문이 열리는 등 수많은 기사와 이적이 일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부흥집회라면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던 데다가 김 집사님이 전해 주는 말에 놀란 저는 ‘불의 사자’가 과연 어떤 분이신가라는 궁금한 마음에 당시 근무하던 국방부 연구소에 일주일간의 휴가를 내고 집회에 참석하기로 하였습니다.

집회(한강 집회, 1955. 7. 4. ~ 7. 11.)가 시작되는 날 저녁, 김 집사님과 저 그리고 다른 동료 네 명과 함께 한강 모래사장에 도착했는데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 할 크기의 천막이 모래사장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고 저희 일행은 간신히 뒤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천막 안이 얼마나 넓었던지 제가 앉은 곳에서는 단상이 있는 천막 앞부분이 까마득하여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자리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박 장로님이 나오셨다고 해서 눈을 뜨고 앞을 보니 하얀 와이셔츠를 입으신 분이 단에 서 계셨습니다. 단상까지는 거리가 꽤 되는데도, 단에 서 계신 박 장로님이 그렇게 크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서 계신 그 모습 또한 이 세계에 속한 사람 같지 않았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는 찬송가 64장을 부르셨는데 꼭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 찬송 인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불렀지만 저는 손뼉 치는 것이 어색하여 가만히 앉아 찬송만 불렀습니다. 두 시간 가량 계속된 예배가 끝나자 주위 사람들은 ‘향취가 난다, 불이 내린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며 상기되어 있는데, 저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고 특별히 보이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천막 밖에 나가 강변 쪽 모래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홀로 기도를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남들은 받았다는 은혜를 저는 알지 못하니 주일학교 부장이니 청년회장이니 하는 직분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부디 저에게도 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간절히 기도를 계속 드리니 어릴 적에 어머니 심부름하며 잔돈을 떼어먹은 것, 남의 밭에 몰래 들어가 과일을 따 먹은 것 등등 아주 오래된 일부터 최근의 일까지, 크고 작은 저의 잘못들이 줄줄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잘못들을 회개하며 기도드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새벽 1시였고 일어나려고 보니 무릎이 모래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일어나 다시 천막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고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무슨 송장 타는 냄새 같기도 하고 퇴비가 썩는 것 같은 냄새가 나기에 어디서 이런 악취가 나는지 좌우를 둘러봐도 아무런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냄새에 속이 메스꺼워져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같이 왔던 동료들에게 그만 집으로 가자고 하니, ‘새벽 1시가 넘었는데 지금 시간에 어떻게 집에 가겠느냐?’며 새벽예배 때까지 있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혼자 갈 수도 없고 해서 다시 앉아 기도를 계속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어디선가 바람이 휙 불어오면서 백합꽃 향기 같은 진한 냄새가 맡아지며 목 안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입 안 가득한 그 냄새는 가실 줄 모르고 계속되며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새벽예배 때 박 장로님께서 단에 오르시니 향취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러자 박수가 절로 나오며 즐겁게 찬송을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저는 집에 가서 잠깐 자고 올 때만 제외하고 일주일 동안 계속하여 집회에 참석하였는데, 향취의 은혜는 집에서나 천막에서나 계속되었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향취가 가시지 않았습니다.

한강 집회를 통해 제가 경험한 은혜의 증거는, 그동안 기성교회를 다니며 그토록 갈구하였음에도 얻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박 장로님이야말로 진정 하나님과 함께하는 분이시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던 하나님의 존재를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고, 박 장로님의 예배만을 갈구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