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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이 한없는 기쁨과 즐거움의 은혜를 깨닫기를 기도

김종희권사(2) / 대전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그 후 1958년경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은 당시 보기 드물었던 신식 양옥집과 예쁜 화단이 잘 가꾸어져 있어서, 여름에는 나무가 푸르고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직접 다니시면서 축복을 해 주셨는데, 저희가 사는 다세대 주택에 오셨을 때는 복도를 마주 보고 있는 집들을 지나시며 한 집 한 집 전부 축복해 주셨습니다. […]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는 이곳이 참길임을 깨달아

김종희권사(1) / 대전교회

저는 1932년 인천 인근 장봉도라는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 적부터 동네에 있는 감리교회에 다녔던 저는, 스물두 살에 결혼한 후에도 감리교회에 계속 나갔습니다. 1956년 제가 인천 율목동에 살면서 율목 감리교회에 다닐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둘째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를 하느라 얼마간 교회에 못 나갔는데, 어느 날 길을 가다 우연히 같은 교회 권사님 한 분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

죄를 씻어 주는 권능의 생명물을 여러 모로 체험하다

천영자 권사(2) / 대구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당시 제단에서는 매일 새벽예배를 드린 후 관장님이 생명물을 한 컵씩 주셨습니다. 생명물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물로, 교인들이 마시기도 하고 눈에 몇 방울씩 넣기도 했습니다. 제가 생명물을 처음 눈에 넣었을 때 굉장히 따갑고 아파서 왜 그런지 물어보았더니, 보통 물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지만 생명물은 죄를 소멸해 주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 후 1970년경에는 이런 일이 […]

분명히 구원의 길 체험하고 누가 뭐래도 참길임을 확신

천영자 권사(1) / 대구교회

저는 1944년 경상북도 달성군 다사면에서 6남매의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농사를 크게 짓는 대농으로 비교적 부유한 편이어서, 저와 형제들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고를 졸업한 후,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는 남동생들을 보살피며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67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고향 친구가 저희 집에 왔다가, 자신이 한 달 전부터 대구전도관에 다니게 됐다는 […]

성신의 은혜 받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나

최재복 권사(2) / 소사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그 후 1956년 5월에는 서울 제2운동장에서 하나님 집회가 열렸는데, 저는 집회가 시작되고 며칠 후부터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집회장에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모여서 끝이 어딘지 안 보일 정도였습니다. 자리가 비좁아 다른 사람 무릎 위에 겹쳐서 앉았어도 불편한 줄을 몰랐고, 사람들과 함께 북을 치며 찬송을 부르는 시간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첫날, 저는 집회장에서 기도하며 […]

‘가난해도 매일 기쁨속에 살아요’ 말하는 모습에 이끌려

최재복 권사(1) / 소사신앙촌

저는 1926년 황해도 옹진군 용호도라는 섬마을에서 태어나 열아홉 살에 결혼을 했습니다. 남편은 여러 가지 해산물을 판매하는 사업을 했는데, 몇 년 동안 사업이 잘되어 큰 집을 장만하고 재산도 꽤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6·25 전쟁이 일어나 난리통에 피난을 다니면서 재산을 많이 잃게 되었고, 인천 경동에 정착했을 때는 빈손이나 다름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생계가 막막했던 그때, 다행히 아는 사람의 도움을 […]

이길을 끝까지 따라 기쁨으로 하나님 뵙는 것이 소원

엄기권사(2) / 익산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이만제단에 다녀온 후 어머니는 박 장로님을 따라야겠다고 하시며, 식구들과 함께 집에서 예배드리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저는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 집회에 다녀온 후로 그분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장로교회에 가지 않고 있었는데, 드디어 제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저희 집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하나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분들도 찾아왔고 다른 사람에게 전도된 […]

‘동방의 한사람’이 바로 박장로님인 것을 깨달아

엄기권사(1) / 익산교회

저는 1932년 경상북도 영주에서 8남매의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해방 후 충청북도 충주로 이사 와 1952년에 충주여고를 졸업했습니다. 저는 독실한 장로교인이신 어머니를 따라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충주로 이사 온 후부터는 충주 장로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56년 어느 날, 청주 외덕 장로교회에서 박태선 장로님을 모시고 부흥집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전에 저는 신문에서 박 장로님에 대한 기사를 봤었는데, […]

열병이 물러가는 신기한 안찰의 권능을 체험하다

임옥산 집사(2)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1957년 11월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을 건설하면서 저와 언니는 건설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 가서 한 일이 땅에 자갈을 골라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임시로 마련된 숙소에서 자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주무시지 않고 계속 축복하시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매섭게 추운 겨울이었지만 그 은혜 속에서 포근히 쉴 수 있었기에 건설대원들 모두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얼마 후 저는 건설대 식당으로 옮겨 […]

박태선장로님 집회에서 너무도 신기한 광경을 보게 돼

임옥산 집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29년 황해도 황주에서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장로교를 열심히 믿는 집안이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와 사별한 후 전도사가 되어 여러 교회에서 시무를 했습니다. 6·25 전쟁이 한창일 때 피난을 내려와 서울에서 살게 되면서, 어머니는 황동 장로교회의 전도사가 되었고 언니와 저도 그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1955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심방을 나가셨던 어머니가 돌아와서 하는 말씀이, 지금 창신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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