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를 받을 때 형언할 수 없는 향취가 온 몸을 감싸

오양례 권사(2) / 덕소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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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그날 저녁에도 집회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저는 한달음에 이만제단으로 달려갔습니다. 낮 예배 때와 마찬가지로 빈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그 비좁은 사이를 빠르게 다니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 위에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형언할 수 없이 향기로운 냄새가 온몸을 감싸는 속에서, 저는 어렸을 때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나님을 부르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제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길로 인도해 주셨으니, 앞으로 이 길만을 따라가게 하옵소서.’ 기도를 드리면서 제 마음은 갓난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긴 것처럼 마냥 기쁘고 아늑할 뿐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안성과 서울을 오가면서 이만제단의 일요일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죄를 씻어서 셩결함을 입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고
지옥은 절대 가지 말아야 한다는 안타까운 하나님 음성이 생생해
자유율법대로 작은 죄라도 짓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생활

하나님께서는 설교 시간마다 한시라도 빨리 죄를 씻어서 성결함을 입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지옥! 천국! 지옥!” 하고 외치시며 지옥은 절대 가지 말아야 한다는 안타까운 음성이 집에 돌아와서도 섬광처럼 순간순간 떠올랐습니다. ‘눈으로도 마음으로도 생각으로도 죄짓지 말라.’ 하시는 자유율법대로 맑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며, 작은 죄라도 짓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것은 결국 허무한 삶이 될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은혜 받은 이야기를 하며 전도를 했습니다. ‘구원을 바라보며 사는 것보다 더 복된 삶이 있을까요. 하나님, 이 길을 따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눈을 뜰 때마다 감사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제단에서 은혜 받는 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성결교회에 저를 데리고 갔던 주인집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다가, 이전에 할머니가 생명물을 두고 ‘손 씻은 물, 발 씻은 물’이라고 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올케가 생명물을 먹고 병이 나은 일을 이야기하면서, 생명물에 대한 험담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 성결교회 목사나 교인들이 전도관에 대해 갖가지 이야기를 하지요. 하지만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원래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저는 어른에게 말씀드리기가 어려웠지만 그때만큼은 담대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할머니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며 화를 내시면서도 아무런 대답을 못한 채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이만제단에 계속 다니던 중에, 하루는 꿈속에서 아담한 전도관을 보게 되었습니다. 약간 높은 단에 마련된 단상과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문, 그리고 나무가 깔린 바닥까지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게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을 꾸고 나니 ‘안성에 있는 전도관에 다니면 매일 새벽예배를 드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성제단에 다니는 동네 사람과 함께 처음으로 가 보았습니다. 예전에 제단에서 울리는 북소리와 찬송 소리를 듣고서 참 좋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제단 안에 들어가 보니 단상과 창문, 나무로 된 바닥까지 제가 꿈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몇 번이고 쳐다보면서 참으로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집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안성제단으로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러 다녔습니다. 새벽 2시든 3시든 눈이 떠지는 대로 일어나서 곧바로 준비하고 집을 나서면, 눈이 쌓여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때에도 후끈후끈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면서 하나도 추운 줄 모르고 제단으로 향했습니다. 조용한 제단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다 보면 어느새 예배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교인들 모두 동편 하늘이 밝아 올 때까지 힘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셋째 딸 명숙이가 두 살 정도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아이가 젖 먹은 것을 다 토해 내더니 설사가 멈추지 않으면서 얼굴이 백지장같이 창백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기운이 하나도 없이 축 늘어져서 숨만 겨우 쉬고 있었습니다. 저는 생명물을 조금씩 떠서 딸아이에게 먹인 후, 모기만 하게 숨을 쉬는 아이를 보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서 잠시 마루로 나왔습니다. 마루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는데 어느 순간 시원한 바람이 아이가 있는 방 쪽으로 불어 가기에 얼른 방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이는 놀랍게도 꽃송이같이 발그스름한 핏기가 얼굴 전체에 감돌면서 생기 있는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거짓말처럼 구토와 설사가 말끔히 나은 명숙이는 그 후로 감기도 잘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명물이나 축복 캐러멜을 먹으면 아프던 것이 깨끗이 낫는 것을 수시로 체험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갈 필요가 전혀 없었는데, 당시 경장(警長)이었던 남편은 전도관에 다니는 것을 무척 반대하며 보통 사람들처럼 아플 때마다 병원이나 약국을 찾았습니다. 한번은 동네 병원의 의사가 하는 말이, 김 경장 부인이나 아이들은 병원에 오지 않아도 건강하게 잘 지내는데, 왜 유독 김 경장만 병원에 들락거리냐며 물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저희 남편은 원래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언제부터인가 폭음이 잦아지더니 가정에 너무나 소홀해져서 아이들과 먹고살기가 어려운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저는 제단에 다니면서부터 신앙촌 제품을 조금씩 판매했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촌 소비조합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아이들을 먹이고 입혀야 하니 어떻게 하면 장사가 될까 고민을 했습니다. 품질 좋은 신앙촌 제품은 서울에서 먼저 알아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울 원효로의 친정집 주위를 다니며 장사를 했습니다. 특히 주부들이 신앙촌 이불과 담요를 좋아해서 여러 명이 계를 묶어 구입했는데, 앉은자리에서 수십 명씩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맛있기로 유명한 시온 간장은 제가 사는 안성에서도 인기가 좋아서 간장을 가져가면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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