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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도관에서 빈민 위한 ‘공민학교’ 열어 무료 교육

전국 전도관에서 빈민 위한 ‘공민학교’ 열어 무료 교육

시온 고등공민학교

지금은 획일화된 교육이 싫고 공교육에 염증을 느껴 대안학교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실정이지만,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가정 형편상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6·25전쟁 이후 온 국민이 생활고에 시달리던 1950~60년대에 배움의 혜택을 받지 못하던 청소년들에게 초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던 ‘공민학교(公民學校)’,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을 실시하는 ‘고등공민학교’ 제도가 있었는데 천부교에서 이 교육에 앞장을 섰던 것이다. 공민학교는 1946년 […]

배움의 기회를 통해 신앙의 길을 알게 돼

배움의 기회를 통해 신앙의 길을 알게 돼

구례전도관 소속 - 구례 고등공민학교

나는 전남 구례구 역전 안동네에 살았다. 초등학교는 2키로 떨어진 곳에 중학교는 7키로 떨어진 곳에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구례 읍내에서 구례전도관 전도사님이 이 마을 저 마을 자전거로 다니시며 학생들을 모집했다. 이장댁에서 마이크로 온동네에 광고를 했다. “무료로 가르쳐주는데 학생을 모집한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학교에 못간 애들도 많았고, 나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

‘낙도의 상록수’로 소개돼 청와대까지 방문

‘낙도의 상록수’로 소개돼 청와대까지 방문

도초전도관 소속 - 도초 고등공민학교

전남 신안군 도초도 수다리 전도관에서 한발리에 전도관을 개척하여 나는 1966년 1월 한발전도관에 부임하게 된다. 이후 이곡리에도 전도관을 개척하고 세 곳에서 공민학교를 세워 수업을 해나갔는데 학생 수가 자꾸 불어나가자 새로운 건물이 필요했다. 마을 사람들은 나서서 자발적으로 연서하여 당터라고 아끼던 큰 땅을 희사하겠다고 했다. 학교 건물을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당시 신앙촌에서 생산하던 슬레이트며 목재 등 그 먼 […]

건설대의 추억

건설대의 추억

이단우권사 / 기장신앙촌

나는 1955년 부산 집회에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1958년 5월 13일에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였다. 지금도 기장신앙촌이 그렇지만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신앙촌만한 생활환경이 없었다. 한국전쟁으로 전 국토가 피폐화되었고 원조물자로 연명하던 시절에 자급자족으로 삶의 터전을 하나님께서 일구어주셨으니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은혜를 받고 귀한 정성으로 물건을 만들고 그야말로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었다. 나는 그 후 군대를 갔다오고 양말공장을 거쳐 1962년 7월에 덕소신앙촌에 […]

1957년 6월 24일 – 성조지(星條紙)에 이만제단을 소개

1957년 6월 24일 – 성조지(星條紙)에 이만제단을 소개

하루 한 곳씩 세워지는 전도관

“이 땅에 일어난 성신의 불길은 드디어 세계적 포석이 성숙화 되어~” 1957년 6월 24일자 신앙신보에는 ‘스타즈 앤드 스트라이프스(STARS AND STRIPES)’에 소개된 이만제단에 관한 기사와 사진이 실려 있다. “서울 중앙전도관의 교인 수는 이만명이며 전국의 각 제단 총 수는 4백 개가 된다는 바 그 가운데 특히 한강변에 세운 이 중앙의 큰 제단은 순전히 전도관 신도들의 헌금과 그들의 노력으로 […]

‘하나님의 은혜로 핀 시신을 뺏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핀 시신을 뺏겨서는 안 된다’

조환동 어린이 시신 사수(死守) 사건

때는 1987년 재야 민주화 운동이 절정을 이룰 때였다. 8월 9일, 장마가 끝나고 한여름 더위로 푹푹 찌는 여름날 오후. 청주시 남문로 중앙공원에서는 충북민주화운동협의회(회장.허종현. 성공회신부)주관으로 ‘민주정부수립과 민족통일을 위한 한마당대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집회가 무산되자 이 대회에 참석하려던 2백여 명의 청년회원과 대학생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대치했다. 경찰의 최루탄 발사로 시위대가 분산되던 중 시위대 일부가 음성경찰서 소속 지프차를 […]

‘은혜로 핀 시신을 정치적 제물이 되게 할 수는 없었죠’

당시 예배 인도했던 관장들의 이야기

“조환동이는 축복일에 갈 때면 버스에서 노래를 잘 불러 교인들의 인기를 독차지 했었던 재간둥이었지요.” 조환동 군의 잘 핀 시신을 데모대에게 내 줄 수 없어 끝까지 지켜냈던 관장들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이제 데모대에게 맞아 죽는구나”라고 각오했었다고 했다. 시위대는 노제를 지내며 운집한 군중을 선동 하려고 발인 예배를 마친 조환동 군의 관을 빨리 내놓으라고 불같이 독촉을 했고 예배를 인도하는 […]

미국에서 준비하던 이슬성신절

미국에서 준비하던 이슬성신절

윤영희 학생관장 / 강릉교회

이슬성신절 무대에 서기 위해 우리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일주일에 3번 이상 제단에 모여서 합창 연습을 하였다. 합창하시는 분들 모두가 나름대로 직장이 있었고 제단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힘들다는 불평 없이 모이는 시간에 다 모여서 연습을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뵙는다는 들뜬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장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연습에 임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무대이기에 […]

시흥교회 – 모진 핍박 이기고 선 교회에 더 큰 성신의 은혜

시흥교회 – 모진 핍박 이기고 선 교회에 더 큰 성신의 은혜

시흥교회 부인회

“내가 먹어 본 음식 중에 맛이 최고예요!” 5월 13일 이슬성신절 축하예배를 마친 새교인들이 점심식사를 하면서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싸고 싱싱한 재료로 새교인들을 대접하고 싶어 경동시장까지 가서 까다롭게 재료를 골랐다는 황영자 집사의 정성과 홍성야 권사의 손맛, 한정희 집사의 웃음이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결인 듯했다. 홍성야 권사는 시흥교회 총무이자 살림꾼이다. 홍권사 사전에 하나님 일에는 절대 NO가 […]

시흥교회 –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는 반사들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어주는 아이들

시흥교회 –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는 반사들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어주는 아이들

시흥교회 학생회

시흥교회 학생회에는 여청반사, 도우미반사, 봉사어린이까지 다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신앙촌에서 열린 여름캠프에서 시신 핀 모습을 보고 하나님을 깨닫게 되었다는 예빈이(중3)와 하나님 말씀이 신기해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는 수민이(중3)도 반사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이다. 또 초등학교 시절 김미현 씨를 다시 교회에 나오게 챙겨준 김선희 씨, 또 선희 씨를 전도한 언니 김은정 씨도 10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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