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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좌교회 –  학생회

가좌교회 – 학생회

학생회

■ “천부교회에 다니게 된 것이 감사해요” 10월 5일 주일예배가 끝나고 생크림케익 만들기 행사에 도우미 활동을 하고 있는 북가좌교회 학생회 임원들은 각자 맡은 곳에서 질서와 안내, 프로그램 진행을 돕고 있었다.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홍준희(초5)는 “교회활동을 하니까 제가 더 적극적이고 활발해지는 것 같아 좋아요.”, 올 2월 시온산에 올라갈 때 이슬성신을 본 손유진(초5)은 “하나님 말씀 배우는 시간이 너무 […]

동아일보 사건의 기억

동아일보 사건의 기억

서대문 형무소 출감 기념으로 오만제단에서 찰칵

동아일보는 전도관과 신앙촌에 대한 비방을 일삼다 급기야 축복 사진을 놓고 조작한 것이라고 보도를 했다. 이에 소사신앙촌 대학생회를 중심으로 항의 방문을 하게 되었다. 동아일보 사옥 인근에 있다가 나팔을 세 번 불면 사옥 앞으로 모이라고 했다. 길 건너 골목에 있다가 나팔 소리를 듣고 동아일보 사옥 앞으로 가니 이미 경찰이 두 줄로 서있었다. 잔디밭에 섰는데 경찰들이 어린 학생들을 […]

1961년 10월 16일 – 온 마을이 전도관을 핍박해

1961년 10월 16일 – 온 마을이 전도관을 핍박해

기성교회 전도사는 전향해 오고

전남 해남군 현산면 황산리 소재 현산 전도관에서 시무하던 장 전도사가 ‘전도관을 3년간이나 없애버리려고 별러왔던’ 마을의 최부자(父子)에게 습격을 받았다. 제단 건물을 부수고 전도사를 돌로 쳐 넘어뜨린 후 흉부를 재차 돌로 쳐 절명케 한 것이다. 이에 “동 제단 성도들은 호흡이 끊어진 장 전도사를 부둥켜안고 눈물로 합심 기도를 했던 바 마침내 3시간 30분만에 소생했으며 또한 9일에는 단에 설 […]

신앙촌 캐러멜

신앙촌 캐러멜

일본 모리나가 캐러멜 뺨쳤던 인기
남녀노소가 사랑했던 신앙촌 캐러멜

“그 밖에 당시 구멍가게에서 사 먹었던 과자류 중 가장 인기있었던 것은 ‘크라운 산도’와 ‘미루꾸 캬라멜’이었다. 미루꾸 캬라멜은 몇 종류가 있었는데 박태선 장로가 건설한 신앙촌에서 만든 ‘신앙촌 캬라멜’이 가장 잘 팔렸지.” 1957년 소사신앙촌이 건설되기 시작해서 신앙신보 1958년 12월 22일자에 보면 시온 캐러멜에 대한 광고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신앙촌 캐러멜은 당시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캐러멜은 주일학교 시절 제일 맛있었던 […]

충무교회 – 하나님께서 직접 단에 서주셨다는 자부심이 대단해요

충무교회 – 하나님께서 직접 단에 서주셨다는 자부심이 대단해요

“교회 크기는 작아도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3번이나 단에 서신 곳이래요. 어렸을 때부터 들었어요.” “전국 교회 중에서 평당 땅값이 가장 비쌀걸요?” “예전엔 이곳에서 신학원도 했었대요.” “성가대 연습도 여기서 많이 했어요.” 퇴계로 5가, 주소는 중구 쌍림동 … 천부교 충무교회 퇴계로 5가란 도로 표지판이 교회 앞에 있다. 주소는 서울 중구 쌍림동, 그러나 시작부터 교회 이름은 충무로를 따서 천부교 […]

야간 근무를 마치고 생명물을 찾아가던 날

야간 근무를 마치고 생명물을 찾아가던 날

이영실 권사 / 소사교회

소신앙촌 한일공장에서 크림 빵을 만들던 때였습니다. 당시 신앙촌 크림 빵의 인기가 엄청났습니다. 밤새 야간에도 작업을 교대로 하며 생산을 했는데 당시 우리 공장은 늘 잘해서 하나님께 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공장에서 작업하다가 나오는 생산품을 필요하면 돈을 내고 사서 먹었지 그냥 집어 먹는 일은 없었습니다. 덕소 제단 옆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생명물을 축복 받는 곳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

1958년 9월 15일 – 이만제단에 수재민 1,700명 수용

1958년 9월 15일 – 이만제단에 수재민 1,700명 수용

1958년 9월 4일부터 6일까지 전국적으로 내린 폭우로 서울 경기 일대는 30년 만의 홍수소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한강의 증수로 한강 연변 낮은 지대는 모두 침수되고 서울에서만 약 2천여 세대 7천명의 이재민을 냈다”고 신앙신보는 보도하고 있다. “큰 수해를 받은 곳의 하나인 용산구 이촌동에서는 지난 5일 하오부터 침수되기 시작하여 6일 아침에는 완전히 탁류에 휩쓸리게 되고 폭우 중에 이재민은 인근 […]

1958년 8월 18일 – 기성교파가 합세 폭력 휘둘러

1958년 8월 18일 – 기성교파가 합세 폭력 휘둘러

‘광복 열세돐 우리나라 정부 수립 십주년’을 맞아 각계각층의 기념식이 있었다. “삼천만의 철천지 한인 조국통일과 교계의 분쟁을 단연 종식하고 오직 마지막 역사를 완수시킴으로써 선열의 영전에 보답하겠다는 일념의 결심을 한층 굳게 가진 바 있다”며 광복절을 맞이하는 당시 교계의 반응을 톱뉴스로 전했다. 기성교계는 여전히 전도관의 집회에 방해를 놓았는데 죽산에서는 기성교계 5개파가 합세하여 노방전도하는 노방전도대에 폭행을 가한 또하나의 집회 […]

죽성교회 – 진실된 마음과 정성을 드리는 교회

죽성교회 – 진실된 마음과 정성을 드리는 교회

신앙촌과 가장 가까운 곳. 기장 죽성리 바닷가 마을. 복잡한 부산 시내를 지나 도착한 이쪽 세상은 온통 푸르디 푸르렀다. 사방으로 창문이 열려 바닷바람이 치고 들어온다. 이리 들어와 저리 나가고, 저리 들어와 이리 나간다. 8월 3일, 이른 새벽 조용한 작은 어촌마을을 깨우며 달리는 사람들… 한국천부교 죽성교회 여성회를 만나보았다. 새벽 5시. 조용한 어촌마을에 찬송과 기도소리가 울려 퍼진다. 죽성교회 […]

공주 전도관의 추억

공주 전도관의 추억

여름성경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긴 행렬

공주전도관이 세워지기 전 친정아버님과 친정집 대청마루에서 전도사님과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늘어 대청마루에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게 되자 공주 시내에 전도관이 세워졌습니다. 당시 저는 교회 생활에 적극적인 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설교 말씀을 듣고 아이들을 교회 옆에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공주전도관 바로 옆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공주전도관 개관집회가 있던 날, 처음으로 저는 먼 발치에서 하얀 양복을 입으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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