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마셜 플랜

류길재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정치학 박사
발행일 발행호수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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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류길재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정치학 박사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으면 제 정신이 아니라고 말했다. 2·13 합의 직후에는 마셜 플랜을 얘기하면서 “아무리 퍼 주어도 남는 게 있다”고 했다. 통 크게 도와주면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게 되어 있고 핵문제 해결도 앞당길 수 있다는 취지로 들린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잘못된 비유와 중대한 논리적 비약이 담겨 있다.

우선 마셜 플랜은 2차 대전 직후 미국이 소련의 동구 팽창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서독 경제를 단기간에 부흥, 발전시키려는 프로젝트였다. 서독에 대한 대규모 경제 지원을 통해 서독 경제를 복구시키고, 이렇게 해서 발전된 서독이 동구 공산권을 봉쇄하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 계산은 맞아떨어졌다. 서독은 우월한 경제력과 발전된 민주주의를 통해 동독을 비롯한 동구 국가들에 민주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리고 통일을 이룩했다.

그런데 2차 대전 직후의 상황과 같은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한 봉쇄를 한국이 걱정할 필요는 오늘날은 전무하다.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는 이미 무너졌고 중국의 공산 체제는 시장경제주의로 줄달음치고 있기 때문이다. 마셜 플랜이 대 공산권 봉쇄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라는 사실을 노 대통령이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에다 들이댄 것은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막대한 지원도 불사하자는 뜻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렇다면 대규모 지원이 북한을 개방 국가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소련 및 동구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에도 버텨 온 지구상 유일한 세습 왕조 체제를 갖춘 독재 국가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말과는 다르게 북한은 ‘제 정신’이며, ‘제 정신’으로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난이 본격화 된 지도 10년을 훌쩍 넘었다. 북한이라고 개혁개방을 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은 곧 북한의 왕조 체제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못 하고 있고, 안 하고 있는 것이다. ‘제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백만의 인민이 굶어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체제를 유지해 왔다. 한국이 지난 9년 동안 햇볕정책을 구사해 왔지만 북한의 겉옷조차 벗기지 못하고 오히려 여미게 만든 것이 그것 때문이었다. ‘햇볕’이란 말이 상대방의 옷을 벗기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오히려 당연하다.

대북 지원은 북한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거창한 이유보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또는 북한 핵을 폐기시키기 위해서라는 작지만 구체적인 이유를 대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야만 북한의 정책을 조금씩이나 바꿀 수 있고, 국내에서 남남갈등을 줄이며, 국제사회에서 한국 정부의 ‘제 정신’을 인정받을 수 있다. 대북 정책은 상대방이 있고, 함께 풀어야 할 국가들이 있다.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자기 마음대로 정책을 추진하면 자기만족은 될지 모르지만 결과는 자기기만으로 돌아오게 된다. 상대는 핵을 가진 공산 왕조 국가이다. 북한판 마셜 플랜이 북한을 변화시켜 ‘남는 장사’가 되리라는 사고는 너무나도 순진하지 않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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