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추수감사절에 300 명 인도한 죽성교회 이희자 권사

2006 추수감사절에 300 명 인도한 죽성교회 이희자 권사
발행일 발행호수 2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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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이희자 권사 / 죽성교회

“신앙촌 가까이 살면서도 신앙촌이 이런 곳인 줄 몰랐다. 듣던 바와는 너무 다르다.” “이렇게 좋은 곳인데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또 불러 달라.” “신앙촌이 무조건 좋다. 또 가보고 싶다.”

이희자 권사(64. 죽성교회)의 인도로 신앙촌에 와서 추수감사절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의 말이다. 2006 추수감사절에 이 권사의 초대로 신앙촌을 찾은 사람은 300명이 넘었다.

죽성교회는 신앙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천부교회이다. 이 권사는 자그마한 어촌인 죽성리에서 전도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시온쇼핑을 하고 있는 기장읍까지 가서 전도를 했다고 했다. 이 권사는 지금의 시온쇼핑 자리로 이전하기 전에는 기장군 장안읍 ‘월내’에서 시온쇼핑을 했었다. 하루는 기성교회 목사가 이 권사를 전도하겠다고 시온쇼핑으로 들어오더란다. 그 목사가 신앙촌에 비방을 늘어놓자 마침 옆에 있던 김수연 씨. 이 권사의 인도로 죽성교회에 다니고 있는 김 씨가 나서서 “당신이 신앙촌에나 가봤냐”며 오히려 먼저 나서더라며 “그렇게 우리 식구가 되어가는 그들을 볼 때면 감사 기도가 절로 나오고 전도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 목사는 어떻게 됐냐고 묻자 “앉으시라고 자리를 권하고 이사야 41장으로 시작하여 막힘없이 구절구절 설명을 하니까 아무 말도 못하고 나가버리던데요.”라며 가볍게 웃는다.

이 권사가 전도를 많이 하게 된 것은 천부교회에 나오면서 여러 가지 은혜 체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처녀 시절에 소사 신앙촌에 들어갔는데 처음 은혜 받은 영등포 제단에 나가서 반사를 했었어요. 그 때 커다란 북을 메고 치고 다니며 노방 전도를 하곤 했는데 그러면 동네 아이들 5~60 명이 주욱 따라와요. 그러면 그 아이들 데려다가 예배드리고 그랬습니다. 40 년 전만 해도 지금처럼 집이 많지가 않았어요. 그 당시 아이들 5~60 명이면 꽤 많았어요. 기성교회 다니던 아이들도 따라와 예배를 드리곤 했어요.”

처녀 시절 북치며 노방 전도 하던 이 권사는 3년 전 죽성교회의 전도부장이 되면서 그 옛날 전도하던 저력이 다시 살아났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주저앉아 있던 사람들을 이 권사가 보듬고 다독여 다시 끌어내 소비조합까지 하게 된 이도 세 명이나 된다. “신앙촌까지 들어온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 신앙의 열도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봐요. 그런 신앙이 있던 사람들이니까 다시 열심을 내어 지금은 제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인 새벽예배 때면 눈물로 기도드리지 않는 날이 없다는 이 권사는 주일이 되면 몸이 여러 개라도 모자를 만큼 바쁘다. 모시고 사는 팔순의 부모님 보살펴 챙겨 드리고 아침부터 약속 장소에 나가 새 교인들을 챙기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직접 모시고 가고 젊은 사람들은 각자가 차를 타고 오라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식사 당번이라도 되는 주일이면 새 교인들 챙기는 전화 할 시간도 없을 때가 많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 부탁을 드린다. “하나님 오늘은 하나님께서 심방해주세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날은 더 많은 열매가 교회로 나왔다.

성신이 함께 하시면 성신께서 앞장서서 역사하신다는 말씀을 새삼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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