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광수 관장 편 ⑤ 불손하던 유족들의 태도가 달라지다

생명물의 권능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자 없어
발행일 발행호수 2342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1. 천부교 김제교회 모습 2. 일광교회에서 문맹이었다가 글을 일게 된 이준희할머니(왼쪽 두 번째)의 칠순잔치 모습

5.불손하던 유족들의 태도가 달라지다

기성교회식 장례 치르기 원하며 계속
못마땅해하던 유족을 생명물로 씻긴 후
뽀얗고 아름답게 핀 시신을 보더니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예뻐졌습니까?
크게 놀라며 불손하던 태도가 공손해져

김제전도관에 부임하고 얼마 후 김제전도관의 한 청년이 갑자기 사망을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과는 새벽예배도 같이 드리고 새벽예배를 마치면 제단 근처 학교에서 운동도 같이 했었던 청년이었습니다.

안 믿는 집안의 청년이라 사망소식을 듣고 저는 부관장과 같이 청년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안타깝기 그지없는 상황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총각이 죽으면 입에 식초를 넣는 풍습에 따라 입에다 독한 식초를 넣어 입이 헐고 상처가 나서 딱 붙어있었습니다. 볼수록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청년의 부모님에게 전도관 식으로 입관을 하고 예배를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렇게 하라고 하여 입관 의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로 입을 살살 닦았더니 닦은 지 얼마 안 되어 딱 붙었던 입이 벌어져 생명물을 입에 넣어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명물을 마신 시신은 뽀얗고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김제전도관에서도 저는 하루도 심방을 거른 적이 없었습니다. 심방을 가면 교인들이 장사를 하러 가거나 바깥에 볼일을 보러 가서 아무도 없을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때면 교인의 집 앞에서 잠깐 기도를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심방을 가서 교인들이
집에 없을 때는 그 집
마당이나 집 앞에서
기도 드리고 돌아와

나금순 집사님 댁에도 심방을 가곤 했는데 나집사님은 홀로 병든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여섯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나집사님은 신앙촌간장을 팔면서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리어카와 자전거에 신앙촌간장을 싣고 부지런히 장사를 다니면서 병든 시어머니도 정성껏 잘 모시고 대학까지 자녀들을 교육시켜 교육청, 도청에서는 나집사님에게 장한 어머니상과 감사패를 줄 정도로 열심히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집사님의 시어머니가 병중에 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전주에 사는 남편의 형제들은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듣고 큰 형수인 나집사님 댁으로 왔습니다. 형제들은 나집사님의 어려운 형편에 비해 잘 살았고 많이 배운 사람들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집사님의 말이라면 함부로 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가족 누구의 도움도 없이 신앙촌간장 장사를 하면서 혼자 힘으로 여섯 아이들을 반듯하게 키우고 병든 시어머니까지 극진히 모셔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제전도관 나집사님
신앙촌간장 장사만으로
병든 시어머니 모시고
대학까지 자녀 공부시켜
나집사님의 연락을 받고 저도 교인들과 함께 나집사님 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저와 교인들을 대하는 유족들의 태도가 좋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믿는 기성교회 식으로 장례를 치르길 원했는데 큰 형수가 전도관 식으로 장례를 치르겠다고 하니 반대는 못하지만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이번 장례가 나집사님의 친척들에게 생명물로 시신이 피는 하나님의 권능을 깨닫게 하는데 중요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부터 전도관 절차에 따라 입관을 하겠으니 전도관 교인 외에는 방에서 모두 나가 주십시오.” 저는 우리 교인들과 온 정성을 다해 생명물로 시신을 씻겼습니다. 시신은 병환으로 누워있어서 바짝 마르고 누런빛으로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하게 씻기자 피부가 뽀얗게 피어나고 살이 올라 살아있을 때보다도 더 예쁘고 편안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전도관식 장례에 불만이
많던 유족들 생명물로
씻긴 후 살아생전보다
더 예뻐진 모습 보고 놀라
“유족들은 모두 방으로 들어오십시오. 입관을 하고 다 함께 입관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입관예배를 드리기 위해 방안으로 들어온 유족들은 예쁘게 변한 시신의 모습을 보고 “아니 어떻게 했길래 어머님이 이렇게 예뻐졌습니까?”하며 모두 놀라면서 무척 기뻐하고 감사해 했습니다. 그때부터 못마땅해 하던 유족들의 자세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제 아무리 세상의 부귀와 권세를 다 가진 자라 하더라도 죽은 시신을 아름답게 피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자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난 뒤 금성중학교 체육교사인 나집사님의 큰 아들은 장례식에서 생명물로 할머니가 아름답게 핀 모습에 놀라 체육부 아이들을 모두 전도해서 주일이면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예배를 드리러 나오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아름답게 핀
시신을 본 중학교 교사인
큰 아들은 학교 체육부
아이들을 모두 전도해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김제전도관 교인이었던 정명례집사님을 기장신앙촌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집사님은 저를 보더니 “관장님, 우리 딸 정자가 신앙촌에 들어왔어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김제전도관에 있을 때 정집사님이 예배드릴 때에 데리고 다니던 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학생이던 최정자는 어느덧 30대 여청이 되어 신앙촌에서 의무실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신앙촌소비조합원으로 열심히 활동을 하다 지금은 속초교회 여성회 관장으로 시무를 하고 있습니다.

김제전도관에 시무하던 저는 1977년 8월 2일 다시 협회로 발령이 났습니다. 협회에 온 지 몇 달 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전라북도 이리시 창인동의 이리역(지금의 익산역)에서 정차 중이던 열차에서 화약이 폭발하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