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신앙촌(4) 산업①

석탑 철탑 산업훈장 정부에서 받아
발행일 발행호수 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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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기장신앙촌이 건설되던 1970년대는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구호 아래 국가적으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펼쳐질 때였다. 기장신앙촌에서도 이에 발맞추어 대단위 수출 공장이 건설되었다.소사신앙촌과 덕소신앙촌에서 양질의 국민 생활 필수품을 생산하여 ‘양심적이고 믿음직한 신앙촌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국민에게 심어 주었다면 기장신앙촌에서는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이 건설되고 수천명의 사회인들까지 고용하여 상품의 수출을 위한 기반을 갖추었다.

“믿음 안에 선한 생업으로 정부 시책에 적극 호응하는 시온합섬섬유는 지난해 7월 5일부로 상공부 무역업자회에 등록(제1002호)을 필하고 무역업무를 개시했다.”(신앙신보1972.12.4)
당시에 주력했던 부분은 섬유산업으로 섬유는 봉제와 직조가 있었는데 봉제만 해도 1봉제 재킷부, 2봉제에 정장 셔츠부, 3봉제 외의부, 4봉제 메리야스부로 나뉘어졌다. 당시에 시온에서는 섬유를 직접 짜고 날염도 직접 했다.
담요 짜는 기계, 카페트 기계, 직조기계 등 당시에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기계들이 있었다. 독일제 최신 날염기도 3대나 도입했는데 동대문 시장의 거상들이 원단을 가지고 몰려와서 나염을 찍어가는 일도 허다하였다고 한다.
직조기 500대가 들어왔는데 이 기계들을 가동하기 위해 수천명의 사회인들이 고용되었으며 이들을 부산으로 출퇴근 시키는 버스만도 20여 대가 되었다고 한다. 아직 신앙촌에 입주자가 많지 않던 당시에 시온인만으로 공장 인원을 충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 사원으로 입사해서 신앙을 갖게 된 황순례관장(55, 인제교회)은 다음과 같이 그 때를 회고했다.
“1972년, 신앙촌에 일자리를 알아보러 신앙촌을 방문하기로 마음먹고 거제동에서 출발하는 신앙촌 통근버스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어느 날 그 버스를 타고 신앙촌으로 향했습니다.
신앙촌에 도착한 저는 위치를 물어 어느 건물 2층에 위치한 편물 공장 사무실로 찾아갔습니다. 제가 찾아온 사정을 얘기하고 담당자와 일자리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 보니, 원하는 조건과는 맞지가 않아서 그냥 되돌아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 없이 갔던 길이라 지갑도 가져가지 않았던 저는, 통근 버스가 나가는 시간까지 기다리는 동안 그곳 현장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장 1층으로 안내되어 가 보니, 제가 근무하던 회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 기계들은 모두 자동으로 편물을 짜는 기계라고 하였습니다.
그곳의 언니들은 찬송가를 부르면서 일을 하였는데, 그 노랫소리가 듣기에 참 좋았습니다. 또 몇 시간 동안 있으면서 저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갈 때 저는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기분 좋게 느껴지는 신앙촌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후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기장신앙촌 편물 공장에 입사를 하였습니다.”
시온의 기업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는 ‘정직’이다. 그 옛날 카스테라 한 개에 계란 하나씩을 꼭꼭 지켜서 넣었다는 유명한 일화뿐 아니라 시온합섬(주)에서 30년 이상 근속한 정향숙 씨는 “공장이 잘 되려면 첫째 도둑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실오라기 하나라도 내 맘대로 쓰면 안 된다고 철저하게 가르치셨죠.”라고 했다.
1971년 7월에 무역 업무를 개시하여 미주, 유럽 및 기타 지역에 수출을 해서 1971년 11월부터 1972년 10월 31일에는 538만 2천 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리게 된다. 전년 대비 900%의 수출 신장률을 이룬 것이다. 이런 공로로 그해 11월 30일 수출의 날에는 석탑 산업훈장을 받게 되었다.
그 이듬해인 1973년에는 전년에 비해 3배에 이르는 1천 3백여만 달러의 실적을 올려 그 해 수출의 날에 철탑 산업훈장을 받게 된다.
1973년 12월 17일자 신앙신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그간 시온에서는 주로 국내시장을 상대로 그 상품의 우수성과 신용을 생명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비록 최고의 영예는 아니지만 그 역사의 일천함과 성장 발전의 뛰어남을 함께 감안할 때 (수출 실적은) 찬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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