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리스트

화창한 날씨에 이슬비같은 은혜가 쏟아져 내려

김정자 권사(2) / 소사신앙촌

선교사인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모든 교사가 기독교인인 수피아여고에 제 앞으로 신앙신보가 배달되자 선생님들은 전도관에 가는것을 반대해 제가 다니던 광주 수피아여고는 선교사인 교장선생님(Florence E. Root)을 비롯해 모든 선생님들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신앙신보가 학교로 배달되면서 선생님들은 제가 전도관에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전도관은 이단이니 절대 가면 안 된다고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교장선생님이 저를 부르셔서 “네가 전도관에 다니는 것은 한때의 충동일 […]

집회장에서 향기 덩어리를 안은듯 진한 향취가 진동해

김정자 권사(1) / 소사신앙촌

저는 1939년 전라남도 영산포의 독실한 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영산포 장로교회의 수석 장로와 권사의 직분을 맡고 계셨으며, 유아세례를 받은 저는 어릴 때부터 매일 성경을 읽으며 교회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을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미션스쿨에 다니면 신앙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광주 수피아여고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독실한 장로교 가정에서 태어나 유아세례까지 […]

이슬성신을 주시는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권능

이명호 권사(2) / 기장신앙촌

어느 여름날 폭염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평일 오후 제단에 갔더니 전도사님이 말씀하시기를 “제단 근처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 권사님이 돌아가셨는데, 너희 학생 세 명이 먼저 가서 찬송을 부르고 오라.” 하셨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이런 일이 처음이라 무섭기도 하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그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방문을 여는 순간 아주 진한 향취와 함께 시원한 바람이 […]

꿈에 안찰을 받았는데 실제로 멍이 들고 아프다니

이명호 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7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8·15 해방이 되어 한국에 돌아와 인천 도화동에서 살게 되었으며, 일본에서 아버지를 여읜 후로 어머니 혼자 어렵게 생계를 꾸리셨습니다. 숭의초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시내의 한 침례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는 학비가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에서는 […]

진실한 마음으로 구하면 귀 기울여 들어주심을 깨달아

채은주 권사(3) / 인천교회

그해 12월에는 인천 숭의동에 웅장한 전도관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하나님께서 매주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셨기에 숭의동제단은 항상 대집회를 하는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이웃에 사는 한복순이라는 여고생을 숭의동제단에 데려가게 되었습니다. 복순이는 3년 동안 관절염을 심하게 앓으면서 팔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어, 학교도 가지 못하고 방 안에서만 지내고 있었습니다. 밥도 엄마가 떠 먹여 […]

성신을 받아 죄를 씻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채은주 권사(2) / 인천교회

박 장로님께서는 “마음 문 여세요. 마음 문을 열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시면서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하는 찬송을 힘차게 인도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쏟으며 찬송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리도 간절하게 찬송을 부르는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습니다. 그렇게 찬송을 하던 어느 순간 아주 향긋하고 좋은 냄새가 머리 위에서 들이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

박 장로님께로부터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목격해

채은주 권사(1) / 인천교회

저는 1927년 황해도 옹진군에서 1남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님(故 윤옥산 권사)이 감리교회에 나가시게 되면서 그때부터 저도 어머니 손을 잡고 꾸준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열여덟 살에 결혼한 저는 8·15 해방 후에 남편과 친정 식구들과 함께 이남으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50년 인천에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중에 육이오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먼저 피난을 갔던 남편과는 연락이 […]

소비조합 활동으로 경제적 풍족 이루고 살아

정순실 권사(4) / 안양교회

그 후 1957년 11월부터는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건설대원을 지원받는다는 광고를 들었습니다. 저도 건설대에 지원했지만 건설대장이신 장세호 집사님이 “너는 몸이 약해서 안 돼.” 하며 받아 주지 않으셨는데, 그래도 다시 지원해서 결국 건설이 시작된 신앙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아는 건설대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힘든 일을 서로 하려는 분위기였으며, 무거운 모래 나르는 질통을 가져가려고 경쟁하기도 […]

넘쳐나는 기쁨과 즐거움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어

정순실 권사(3) / 안양교회

당시는 매일같이 많은 사람들이 제단에 모여 철야예배를 드려서 저도 그 예배에 종종 참석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제단에서 철야를 하고 다음 날 바로 등교할 수 있도록 교복 차림에 책가방을 챙겨서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제단에서 찬송과 기도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새벽예배 때 하나님께서 참석자들에게 안수를 해 주시고 나자, 어느새 학교 갈 시간이 되어서 저는 […]

‘동방의 한 사람’과 ‘이슬 성신’,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 들어

정순실 권사(2) / 안양교회

박 장로님께서 찬송 인도와 설교를 마치신 후 저녁예배는 끝이 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그대로 남아서 열심히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정전이 되어 전등이 전부 꺼져 버리자 집회장이 온통 깜깜해지고 말았는데, 그때 저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둥그런 불덩어리가 천막 안의 공중에 나타나더니 무척 빠른 속도로 사람들 머리 위를 휙휙 하며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

<<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