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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권능으로 벙어리가 말을 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

이옥희 권사(1) / 덕소교회

저는 1934년 경기도 안성군 일죽면에서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동네에는 일죽 장로교회라는 교회가 있었는데, 한마을에서 저와 친하게 지내는 동생 선영이가 교회에 나와 보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아 ‘정말로 신이 계실까?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아실까?’ 하며 차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일죽 장로교회에 다니면서 가끔씩 […]

구원의 길을 밝혀 주신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히 울려

서영자권사(4) / 덕소교회

그 후 저는 1961년에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차멀미가 무척 심했던 저는 장사를 나가면서 멀미할 것이 걱정되었는데, 장사 첫날부터 거짓말처럼 차멀미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차가 멀리서 지나가기만 해도 속이 뒤집어질 듯이 멀미를 했던 제가 차를 타고 아무리 먼 거리를 다녀도 멀미가 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메리야스를 들고 다니며 장사를 하다가 얼마 후부터 […]

시신을 피게하는 성신의 권능 보고 전도관을 세워

서영자권사(3) / 덕소교회

전주제단 교인 중에는 폐병을 앓는 30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거동을 하기가 힘들어 들것에 실려 와서 예배에 참석했는데, 뼈에 가죽만 붙어 있다고 할 정도로 해골같이 말라서 차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 그분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다른 교인들과 함께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원래 저는 장례가 났다는 말을 들으면 무서워서 상가를 피해 다녔는데, 그때 처음으로 […]

기성교회가 총동원된 전주집회 핍박의 현장을 보다

서영자 권사(2) / 덕소교회

저는 하나님의 집회에 참석한 후 이전에 다니던 완산 장로교회에 계속 나갔습니다. 6월이 되자 전주전도관이 세워질 터에서 하나님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반가운 마음으로 집회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집회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완산교회 김윤식 목사가 광고하기를 “이번에 박태선 장로의 집회를 막기 위해 집회 첫날 전주 시내 모든 기독교 교파가 뭉쳐서 동부 장로교회에서 회의를 합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

지독한 죄 타는 냄새에 이어 기막힌 성신의 향취 맡아

서영자 권사(1) / 덕소교회

저는 1932년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장로교회에 다녔던 저는 임실군의 독실한 장로교 집안에 시집간 후로 더욱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오수 장로교회의 장로이신 시아버님(故 김재선 장로)은 신앙생활에 정성을 기울이며 어려운 사람을 한식구처럼 보살피는 분이었습니다. 가을이면 수확한 곡식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 주셨으며 육이오 전쟁 때는 피난민들을 집에서 먹이고 재우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던 1954년경 저희 가족이 시댁에서 분가해 전주에서 […]

사람의 마음속 중심까지 다 살피시는 하나님

유도순 권사(3) / 덕소교회

1958년 여름에는 소사신앙촌 노구산에서 엿새 동안 대집회가 열려 전국의 교인들이 소사신앙촌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노구산 정상에 모인 수십만의 사람들은 쏟아지는 소나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온 산이 울리도록 우렁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옆 사람과 어깨가 닿을 만큼 빽빽이 앉은 가운데, 잠시라도 자리를 떠났다가는 금세 앉을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틀이고 사흘이고 그대로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집회 중 어느 날인가 하나님께서 […]

처음 하나님을 뵙는 순간 ‘아, 꿈에서 뵈었던 분이다’

유도순 권사 (2) / 덕소교회

그러던 1957년 12월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생후 10개월 된 은자를 업고 외출을 다녀왔는데,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느라 신경을 썼는데도 추위 때문인지 아이가 기운 없이 축 늘어진 채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가려 해도 집에서 수십 리나 떨어져 있는 데다가 그때 시간이 너무 늦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새벽이 되자 아이는 숨소리가 전혀 […]

박 장로님이 ‘이슬같은 은혜’를 내리는 감람나무

유도순 권사(1) / 덕소교회

저는 1929년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열일곱 살에 결혼한 저는 시어머니를 따라 간전면에 있는 장로교회에 다니며 일요일예배에 꾸준히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여자 전도사님(故 박말자 관장)은 성경을 깊이 탐독하고 성경 구절을 자세히 설명해 주어서, 교인들이 자주 모여 전도사님의 성경 해설을 듣곤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박 전도사님과 대여섯 명의 교인들이 좀 더 […]

호세아서에 기록된 ‘동방의 한 사람’과 ‘감람나무’를 증거

박종문 승사(2) / 노량진교회

그때 갓 돌이 지난 넷째 경원이를 집회에 데리고 갔었는데, 홍역을 앓아 열이 오르고 설사를 하던 아이가 예배를 드리는 동안 어느새 열이 다 내리고 설사도 멈추어 언제 아팠던가 싶을 정도로 깨끗이 나았습니다. 장시간 예배를 드리는데도 아이는 배고프다고 보채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며 새근새근 곱게 잠이 들었습니다. 남산 집회가 끝난 후 저는 하나님께서 전국의 대도시를 다니시며 부흥집회를 계속하신다는 […]

남산집회에서 박장로님께서는 양심의 법을 강조하셔

박종문 승사(1) / 노량진교회

저는 1922년 황해도 벽성에서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천도교(天道敎)를 믿으셨던 아버님은 종종 정화수를 떠 놓고 조용한 음성으로 무언가를 외우셨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는 어렴풋하게나마 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녀 본 적은 없었지만 밥을 먹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저는 항상 식사 전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 후 스물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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