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하는 3일 내내 아무것도 안 먹어도 배가 안 고파

주채경 님(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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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저는 1920년 전남 영암군 영암읍 서남리에서 1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언니와 남동생과 함께 장로교회에 열심히 다녔던 저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있고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여름날 하루살이를 보면 ‘아! 저 작은 하루살이도 하나님이 만드셨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 계시는 아름다운 세계는 어떤 곳일까 하며 사색에 잠기곤 했습니다.

그 후 광주 이일 성경학교에서 공부했던 저는 그 학교 유화례(Florence E. Root) 선교사의 주선으로 1955년부터 이일 성경학교에서 근무하며 유 선교사의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광주 양림동에 집을 마련하고 동네 장로교회에 다녔는데, 그 교회 교인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가까이 있는 다른 교회와 사이가 무척 나빴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반목하고 질시하는 모습을 보니 저는 마음이 몹시 불편하고 괴로웠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하나님! 저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하며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당시 서울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남동생 하성이가 볼일이 있어 잠시 광주에 내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남동생은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분이 서울 도심에서 부흥집회를 하실 때 엄청난 인파가 모였다며 “누님, 그분은 한국에서 제일가는 부흥강사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수가 적고 신중한 동생이 평소와 다르게 열심히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렇게 훌륭하신 분이 누구신지 알아보고 싶어 기회가 되면 그분의 집회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광주 시내에서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 부흥집회”라고 쓰인 커다란 벽보를 보고, 저는 ‘그분이 광주에 오셨구나!’ 하며 집회 첫날부터 참석했습니다. 그때가 1955년 11월이었습니다.

집회가 열리는 광주공원에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어 집회장이 터져 나갈 것 같았습니다. 천막을 치고 가마니를 깐 그곳에 도무지 빈틈이 없어서 앞사람이 뒷사람의 무릎에 앉다시피 할 정도였습니다. 박태선 장로님께서 서 계신 단상 쪽에는 수십 명의 목사들이 의자를 놓고 앉아서 열심히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몇 시간씩 계속해서 설교하고 찬송을 인도하시는데, 장내의 수만 군중이 그 말씀과 찬송에 하나같이 집중하며 예배를 드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예배를 드리던 중에 고개를 들어 단상을 바라봤더니, 안개처럼 뽀얀 것이 천막 안에 가득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뽀얀 것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박 장로님께서 설교하시는 음성만이 분명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서서히 걷혔을 때, 박 장로님께서 “모두 옆 사람의 얼굴을 보세요.”라고 하셔서 옆에 앉은 분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과 달리 얼굴이 어쩌면 그리도 환하고 아름다워졌는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 향기가 날 만한 것이 전혀 없는데도 난생처음 맡아 보는 좋은 향기가 순간순간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집회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참으로 놀랍고 신비로워서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예배에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집회 3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집회장에서 계속 철야하며 3일 내내 물 한 모금, 밥 한 숟갈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집회에 계속 참석하려면 밥을 먹는 것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집에 다녀오려고 집회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잠시 볼일을 보기 위해 집회장 옆의 화장실에 들어간 순간, 너무도 좋은 향기가 진하게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번뜩 ‘이 향기는 집회장에서 맡은 그 향기다!’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구덩이를 파서 만든 재래식 화장실에서 구린 냄새는 조금도 맡을 수 없고 좋은 향기가 코에 들이붓는 것처럼 진동하니 그 놀라움을 다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하며 그 신기한 향기를 맡은 저는 그길로 집에 갈 생각을 접고 다시 집회장에 돌아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부터 힘차게 외치시는 박 장로님의 말씀이 모두 저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한 말씀 한 말씀이 그토록 깊은 감화를 주실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설교 말씀을 통해 제가 맡은 향기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향취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향취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체험으로 제 마음속 깊이 새겨졌습니다.

당시 박 권사님이라는 분이 저와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이일 성경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는데, 그분도 광주공원 집회에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박 권사님은 “집회 때 박 장로님 주변에 환한 광채가 둘러져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하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박 권사님과 저는 마주칠 때마다 집회에서 은혜 받았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왜 그리도 기쁘고 즐거운지 얼굴이 함박꽃처럼 피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조선대학 근처에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전도관’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박 권사님은 그곳에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요일이면 연로한 어머님을 모시고 전도관에서 예배를 드리고, 새벽예배는 다니던 장로교회에 계속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가 전도관을 이단이라고 하면서 절대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목사님도 광주공원 집회에서 철야를 했었는데……. 그때는 은혜를 받았다고 기뻐서 외치더니 왜 이제 와서 저런 말을 할까?’ 하며 납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머님께서도 “왜 전도관을 이단이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구나. 얘야, 이제 교회에 가지 말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 교회에 가지 않고 전도관으로 다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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