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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안 보일 정도로 내리는 이슬성신을 보다

임종희 권사(2)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1955년 7월, 고대하던 하나님 집회가 한강 모래사장에서 일주일간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가 참석했습니다. 단상에 서신 하나님께서는 군중들을 향해 ‘쉭! 쉭!’ 하신 후 찬송가를 놓는 받침을 들어 힘 있게 치셨는데, 그 순간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단상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 나와 하나님과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얗게 퍼져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루는 쉬는 […]

열흘간 철야기도를 하고나니 어느새 내 병은 완치돼 있어

임종희 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23년 황해도 안악군 은흥면에서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장로교회에 다니는 속에서 저도 어릴 적부터 교회에 다녔으며, 장성한 후에는 장로교인과 결혼을 했습니다. 6·25 전쟁 중에 인천으로 내려온 저희 가족은 시내에 있는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셔서 육신의 병도 고치고 마음의 병도 고치십시오’ 1955년 남산집회 신문광고를 보며 ‘여기 가면 내 병이 나을지도’ 집회 […]

쥐약을 잘못 먹고 죽어가던 손녀가 생명물 마시고 소생

김교임 권사(2) / 서울 당산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1958년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여름에는 소사신앙촌 노구산에서 대집회가 열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저희 가족들도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노구산 정상이 하얗게 뒤덮이도록 빼곡히 앉은 사람들은 여름날 잦은 소나기가 쏟아져도 집회에 열중할 뿐 누구 하나 우산을 쓰는 사람이 없었으며 자리를 뜨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집이 가까이 있으니 우산을 가져오거나 쉬는 […]

이전에 맛보지 못했던 즐거움으로 매일이 새로워져

김교임 권사(1) / 서울 당산교회

저는 1930년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가호리에서 태어나 결혼 후에는 서울 원효로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1956년 저는 동네 이웃 사람들이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되었는데, 그분은 큰 집회를 자주 여시며 집회하시는 곳마다 소경이 눈을 뜨고 불치병이 낫는 등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이만제단에서 들리는 은은한 음악 종소리 들으며 새벽예배 참석 예배 후 […]

이장하면서 변치않는 생명물의 권능을 깨달아

조연주 님(1) / 기장신앙촌2

지난호에 이어서 한번은 한 살 된 조카 경희가 설사병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약을 먹여도 낫지 않고 계속 설사를 하던 아이는 이틀이 되자 기운이 다 빠져 뼈가 없는 아이처럼 축 늘어져 버렸습니다. 울지도 않고 눈을 감은 채 숨만 간신히 쉬는 것을 보고 온 식구가 다 겁을 내며 안절부절이었습니다. 저는 급히 제단에 뛰어가 생명물과 축복 캐러멜을 […]

장로교회에서는 자유율법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조연주 님(1) / 기장신앙촌

저는 1937년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단주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을 따라 영광읍 장로교회에 나가게 된 저는, 나이가 들면서 성가대와 반사 활동을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1964년이었습니다. 저와 친자매처럼 지내던 주민대(현재 광주 서동교회 권사)가 저희 동네에 있는 영광전도관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민대는 저에게 전도관에 나와 보라며 권유했지만 저는 그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민대와 […]

누가 뭐라해도 받은 은혜가 너무나 분명하고 뚜렷해

우종화 권사(2) / 소사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집회 기간 중 하루는 점순이와 함께 노구산 아래 소사신앙촌 주택가로 내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길가의 어느 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기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이 집의 여자 교인이 숨을 거두어 입관예배를 드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싶어서 그 집에 들어간 저는 그때 처음으로 시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인은 살색이 시커먼 빛을 띠었고, 피부가 헐었는지 거뭇거뭇한 […]

노구산 대집회의 추억, 은혜의 창파 속 먹지 않아도 배 안고파

우종화 권사(1) / 소사교회

저는 1938년 충청북도 보은군 회북면 부수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나이 스무 살이던 1957년, 저희 동네는 전도관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습니다. 면사무소 근처에 생긴 전도관으로 동네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가면서, 친구들끼리 모이면 전도관에서 있었던 일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제 외종 사촌 동생인 점순이도 전도관에 다녔는데, 예배를 드리면 참 좋다며 저에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교회에 다녀 본 적이 없었던 저는, […]

이역만리에서도 눈감으면 환하게 떠오르는 신앙촌 정경

최경희 승사(2) / L.A.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영주동에 제단이 거의 완공될 무렵 저희 가족은 서울로 다시 올라오게 되었고, 어머니는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셨습니다. 서울로 이사 와 어머니와 떨어져 살면서, 저는 점점 제단에 안 나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저를 무척 안타까워하시며 가끔 저희 집에 오셔서는 두세 시간씩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께 제가 울지 마시라고 말씀드리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얼굴로 “내가 […]

이슬성신이 비와 같이, 뽀얀 눈송이같이 쏟아져

최경희 승사(1) / L.A.교회

저는 1923년 함경북도 경흥군 웅기읍에서 2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독실한 장로교인이신 어머니(故 이용복 권사)를 따라 교회에 다니긴 하면서도 신앙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스물세 살에 결혼한 저는 서울 청량리로 이사 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55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남산에서 집회하실 때 참석하셨는데, 그때부터 박 장로님께서 집회하시는 곳마다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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