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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냄새 진동하고 성신의 바람은 계속 불어와

김병희권사(1) / 덕소교회

저는 1922년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에서 2남 3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농가에서 유복하게 자라 열아홉 살 때 천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시부모님과 남편이 모두 감리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저는 친정에서 교회에 전혀 다녀 본 적이 없었지만, 시댁의 분위기를 따라 그때부터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다니던 장로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려 하면 예배시간 내내 졸리고 목사의 설교는 귀에 […]

하나님께서 지켜주셨기에 따라올 수 있었던 이 길

박승규 승사(2) / 의정부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이전에 자일리에 세워졌던 제단은 장마 때 유실되어, 당시 저희 집 근처에는 제단이 없고 의정부 읍내까지 나가야 했습니다. 시골에 살고 제단이 가까이 없다 보니 농사철에는 일요일예배도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몇 달을 제단에 나가지 못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신앙이 미약했던 저였지만, 의정부제단에서 교인들이 늘 심방도 오시고 생명물도 가져다주시며 이끌어 주셨던 것이 지금도 참 고맙고 감사합니다. […]

축복 물질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다

박승규 승사(1) / 의정부교회

제가 전도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돌아가신 저희 시어머님(故 김신도 권사)을 통해서였습니다. 의정부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는 1947년 스무 살 되는 해에 결혼한 후에도 시댁인 의정부읍 자일리에서 생활하였습니다. 10남매의 맏며느리로 시골 농사 큰살림을 도맡아 하며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냈습니다. 태어나서 백일 무렵부터 아프기만 하다가 죽은 아들 몸이 굳고 푸르둥둥하게 피부색이 변해 너무나 […]

목사의 터무니 없는 전도관 비방 설교를 혼내주다

곽옥란권사 / 뉴욕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그 후 1962년 10월에는 덕소신앙촌에 입주해 소비조합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신앙촌에서 출발하는 첫차를 타고 나가서 하루 종일 바쁘게 다니며 장사를 해도 피곤한 줄을 몰랐습니다. 밤늦게 막차를 타고 신앙촌에 도착하면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주무시지 않고 축복하시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서 기쁘고 활기차게 살았던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전도관에서는 발 씻은 […]

시신을 아름답게 피우는 생명물의 권능은 형언할 수 없어

곽옥란권사 / 뉴욕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그러던 어느 날, 관장님께서 이런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전라도에서 전도관에 다녔던 20대 청년 한 명이 춘천에서 군 복무를 하던 중에 죽게 되어 군대에서 입관까지 다 마쳤다는 것이었습니다. 관장님은 우리 교인인데 예배도 드리지 않고 묻을 수 없다면서 서둘러 조치를 취했고, 결국 그 시신을 춘천제단에 옮겨 와서 입관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시신을 옮겨 올 때 부대에서 […]

노구산 대집회때 쏟아지는 비 맞으면서도 은혜에 열광

곽옥란권사 / 뉴욕교회

저는 1927년 강원도 양구에서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쌀, 포목 등을 판매하는 큰 상회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저희 형제들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스무 살에 결혼하여 춘천에서 살았는데, 6·25 전쟁이 끝나고 이웃 사람의 전도를 받아 춘천 천주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 많이 한 나는 전도관 사람들과 성경을 토론해 얘기해 보니 그분들 설명이 명확하고 설득력이 있어 전도관에는 […]

만민이 한없는 기쁨과 즐거움의 은혜를 깨닫기를 기도

김종희권사(2) / 대전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그 후 1958년경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은 당시 보기 드물었던 신식 양옥집과 예쁜 화단이 잘 가꾸어져 있어서, 여름에는 나무가 푸르고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직접 다니시면서 축복을 해 주셨는데, 저희가 사는 다세대 주택에 오셨을 때는 복도를 마주 보고 있는 집들을 지나시며 한 집 한 집 전부 축복해 주셨습니다. […]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는 이곳이 참길임을 깨달아

김종희권사(1) / 대전교회

저는 1932년 인천 인근 장봉도라는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 적부터 동네에 있는 감리교회에 다녔던 저는, 스물두 살에 결혼한 후에도 감리교회에 계속 나갔습니다. 1956년 제가 인천 율목동에 살면서 율목 감리교회에 다닐 때였습니다. 당시 저는 둘째 아이를 낳고 산후 조리를 하느라 얼마간 교회에 못 나갔는데, 어느 날 길을 가다 우연히 같은 교회 권사님 한 분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

죄를 씻어 주는 권능의 생명물을 여러 모로 체험하다

천영자 권사(2) / 대구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당시 제단에서는 매일 새벽예배를 드린 후 관장님이 생명물을 한 컵씩 주셨습니다. 생명물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물로, 교인들이 마시기도 하고 눈에 몇 방울씩 넣기도 했습니다. 제가 생명물을 처음 눈에 넣었을 때 굉장히 따갑고 아파서 왜 그런지 물어보았더니, 보통 물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지만 생명물은 죄를 소멸해 주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 후 1970년경에는 이런 일이 […]

분명히 구원의 길 체험하고 누가 뭐래도 참길임을 확신

천영자 권사(1) / 대구교회

저는 1944년 경상북도 달성군 다사면에서 6남매의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집은 농사를 크게 짓는 대농으로 비교적 부유한 편이어서, 저와 형제들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여고를 졸업한 후,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는 남동생들을 보살피며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67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는 고향 친구가 저희 집에 왔다가, 자신이 한 달 전부터 대구전도관에 다니게 됐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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