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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희생과 사랑 기억하며 흐르는 눈물로 기도합니다

강봉임 권사(3) / 기장신앙촌

1961년 1월 당시는 소사신앙촌에 물을 공급하는 큰 우물을 건설하던 때였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친 후 사람들이 돌 하나씩을 이고 우물 짓는 곳으로 가져가면 하나님께서 인자하게 웃으시며 한 명 한 명에게 전부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돌을 나른 후 안수를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줄을 섰을 때, 하나님께서 양쪽의 손목을 앞으로 모으시더니 “내가 이렇게 돼도 너희가 나를 […]

목사들이 갖은 비방을 해도 내가 받은 은혜는 잊을 수 없어요

강봉임 권사(2) / 기장신앙촌

당시 종갓집 맏며느리로 대식구의 살림을 맡아 하던 저는 30대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깨와 무릎의 신경통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식구들과 일꾼들의 식사 준비, 빨래, 바느질, 베 짜기 등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쉼 없이 일하다 보면 종종 칼로 베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으로 꼼짝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깨가 너무 아파서 팔을 들어 올리지 못하고 무릎이 아플 때는 가만히 누워 있어야 그나마 […]

이 분이야말로 진짜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 이 분을 따르리라.

강봉임 권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18년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에서 네 자매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전형적인 양반집 자제인 아버지는 문중의 제사와 재산 등을 돌보는 유사(有司)를 맡아 하셨으며 저희 형제들에게 글공부를 가르치시면서 항상 조신한 태도와 말씨를 강조하셨습니다. 열일곱 살에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간 저는 스무 명이 넘는 대식구 살림을 하면서 시댁 식구들을 따라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1956년, 전라북도 정읍군 신태인에서 살 때였습니다. […]

구원의 길을 알고 따라오게 된 이 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

전화순 권사(3) / 기장교회

1958년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남편이 축대 위를 지나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사고로 갑자기 숨을 거두게 되어, 저는 몹시 놀라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경황이 없었던 그때 인천제단 교인들이 저희 집에 모여서 장례 절차와 입관예배를 함께해 주었습니다. 소사신앙촌 장례반이었던 이 장로님이 오셔서 시신을 씻겼는데, 마침 생명물이 없어 축복 캐러멜을 넣어 끓인 물로 시신을 닦아 주었습니다. 시신은 피부가 […]

이만제단에서 구름기둥같이 쏟아져 내리는 이슬성신을 목격

전화순 권사(2) / 기장교회

<지난호에 이어서> 박 장로님께서는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어깨가 맞닿을 만큼 비좁게 앉아 있는 사이를 가볍고 빠르게 다니시면서 안수해 주신 후, 단상에서 힘찬 음성으로 “병자들은 일어나라!” 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일어났는데 저는 주변에 있던 벙어리와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한마디도 못 하고 옆 사람과 손짓 발짓으로 대화하던 […]

골초에 술고래던 남편은 은혜 맛을 본 후 술담배와 손을 끊고

전화순 권사(1) / 기장교회

저는 1919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제 나이 열일곱 살에 가족들이 인천 신흥동으로 이사하게 되어 거기서 양재 기술을 배우던 중,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故 이병환 집사)과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저희 앞집에는 인천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저에게도 성당에 같이 가자고 자주 권유하곤 했습니다. 천주교인인 앞집 아저씨는 술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으로, 그분이 매일같이 […]

배꽃같이 환하게 핀 얼굴로 찬송 부르며 일하던 그 시절 그리워

김복동 집사(4)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공장이 완공되면서 저는 메리야스 공장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시중에서 찾기 어려울 만큼 좋은 원단과 예쁘고 튼튼한 바느질의 신앙촌 메리야스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날로 급증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종종 밤새워 일했는데, 작업 중에 어느 순간 향취가 진동해서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직원들에게 축복해 주고 계셨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하라.” 하시던 하나님. 그 은혜 속에서 […]

시신이 곱게 핀 모습을 보고 유족들이 놀라워 해

김복동 집사(3)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전도관에 다니는 직원들이 저를 찾아와서 하는 말이, 이제 곧 본인들이 감원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군인교회 목사가 전도관으로 몰려가는 직원들을 두고볼 수 없어서 피복창 책임자에게 감원을 부추긴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70여 명이 전부 감원된 뒤에도 다른 직장을 구해 일하면서 부산전도관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당시 부산제단에 다니던 송 권사님은 본인 집의 […]

은혜를 받아 즐거워하며 집회장은 기쁨과 환호로 넘쳐나

김복동 집사(2) / 기장신앙촌

<지난호에 이어서> 그때 박 장로님께서 “오늘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것을 본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슬 은혜를 본 사람은 손을 드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 아까 이슬비가 내리던 것이 바로 은혜였구나.’ 생각하며 손을 번쩍 들었더니, 박 장로님께서 저를 지목하시며 “일어나서 지금까지 본 대로 이야기하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저는 “찬송을 부를 때 천막 안에 […]

천막집회에서 이슬같은 비가 내리고 성신의 불이 퍼져나가

김복동 집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25년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에서 7남매 중 여섯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소학교를 졸업한 저는 군복을 생산하는 피복창(공공 기관의 제복 등을 만들거나 수선하여 보관하는 곳)에 취직해 기술을 익혀서 봉제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결혼 후 가정을 꾸리던 1950년, 남편과 아이들이 충남 공주의 큰집에 가 있는 동안 6·25 전쟁이 발발하여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 혼자 피난길을 떠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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