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장 천막 안에는 이슬비 같은 것이 계속해서 쏟아져

진하옥 집사(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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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936년 함경북도 성진군 성진읍에서 태어난 저는 영어 교사이며 통역관이신 아버지 아래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유난히도 사색에 잠기는 것을 좋아해서 별명이 ‘철학 박사’였던 저는 ‘사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이 깊은 고민에 빠져 있으니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하옥아, 뭘 그렇게 생각하니?” 하며 묻곤 했는데, 저는 아무리 고민해 봐도 답을 얻을 수 없어 몹시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집회장에 중환자들의 신음소리와 지독한 냄새가 가득하더니
그러나 웬일인지 장미꽃 향기같은 좋은 향기가 풍겨 와
그것이 하늘의 향기임을 나중에 깨닫게 돼

1945년 해방 후 아버지가 하지 중장(John Rheed Hodge, 미 군정 시 주한미군 사령관)의 통역관으로 일하시다가 신병을 얻게 되면서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북도 임실로 이사를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저는 제가 가진 의문의 실마리를 풀고자 장로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유명하다는 부흥집회에도 빠짐없이 다녔습니다. 부산 이모님 집에서 여고를 다닐 때도 장로교회에 계속 나가긴 했지만 그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으며, 사춘기의 예민한 감성으로 고민을 거듭하다가 번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1955년 5월, 부산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일 때였습니다. 구덕 장로교회 새벽예배 시간에 박종철 목사가 광고하기를 “지금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에서 성신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5월 23일부터 집회가 열리니 교인 분들 모두 참석하여 큰 은혜 받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시간이 없었지만, 항시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의문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집회에 꼭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회 첫날 2교시를 마치고 조퇴하여 집회장인 공설운동장을 찾아갔습니다.

집회장에는 천막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으며 모인 사람들은 인산인해로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유명한 부흥사인 박재봉 목사, 이성봉 목사, 변계단 권사 등의 집회에 참석해 봤지만 모두 교회 아니면 강당 정도였기에 여기서의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앉은 집회장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목발이며 들것, 리어카 등이 놓여 있고 중환자들이 누워 있어 신음 소리와 함께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저는 앉을 곳을 찾아다니다가 맨 뒷자리에 한 발을 들여놓는 순간, 흙먼지와 가마니 먼지 날리는 포로수용소 같은 곳에서 웬일인지 장미꽃 향기처럼 아주 좋은 향기가 진하게 풍겨 오는 것이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 큰 은혜 받으세요.” 하던 목사의 말처럼 이곳에 뭔가 있긴 있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드리던 저는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며 “박 장로님께서 나오신다!” 하는 소리에 단상을 바라보았습니다. 키가 훤칠하신 분이 하얀 와이셔츠 차림으로 강대상을 탕탕탕 치시며 “마음 문 여세요. 다 같이 찬송가 64장 하시겠습니다.” 하셨습니다. 그 순간 맨 뒷자리에 있는 제가 단상과 제일 가까운 앞자리에 앉은 것처럼 장로님의 모습이 크게 보이는데, 희게 빛나는 얼굴과 인자하신 모습이 한국만 상대하실 부흥사가 아니라 세계적인 부흥사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박 장로님의 모습을 뵙는 순간, 그토록 고민해도 풀리지 않았던 의문이 완전히 풀리면서 ‘저분을 따르는 것이 바른 길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번민에 사로잡혀 있던 제 심령이 한없이 평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결코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집회 기간 동안 매일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시선만 마주쳐도 병마가 물러간다 하시며 “일어나 뛰어라!” 하고 외치시면 수많은 환자가 여기저기서 일어나 병이 나았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들에게 단상에 올라와 영광을 돌리라고 하시자, 방금까지 송장 내를 풍기며 죽어 가던 환자들이 단상 위로 뛸 듯이 올라가서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 상상할 수도 없었던 기적이 부지기수로 일어났습니다. 천막 안에는 이슬비 같은 것이 계속해서 쏟아졌는데, 그 이슬비가 바로 이슬과 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제가 맡았던 장미꽃보다 진한 향기는 하늘의 향기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힘찬 음성으로 한마디 한마디 외치시는 말씀은 참으로 명쾌하고 분명하였습니다. “천국에서도 담쌓고 사나요? 천국에는 담이 없어요.” 하시는데, 그 말씀대로 집회장은 장로교니 감리교니 침례교니 하는 교파를 초월한 은혜의 한마당으로 그 열기가 더할 수 없이 뜨거웠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단상에서 내려가시면 뒤이어 김성여 목사, 김현준 목사, 이동선 목사 등과 윤치영 초대 내무부 장관, 최창순 전 사회부 장관, 임영신 중앙대학교 총장, 박현숙 전 무임소 장관 등 정계 요인들의 은혜 체험담이 이어졌습니다. 일주일 넘는 집회 기간 동안 저는 담임 선생님을 설득해 하루도 빠짐없이 조퇴를 하고 집회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앞으로 유치원부터 초·중·고·대학까지 세울 계획이라고 하시기에, 저는 진학 방향을 돌리고 아무 때라도 박 장로님께서 세우시는 대학에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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