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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자격을 갖추어 천국에서 하나님 뵈옵기를 기도드려

최영옥 집사(4) / 기장신앙촌

그 후 1982년에는 부산에 계시던 어머님이 80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제가 부산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던 1956년부터 어머니도 함께 나가기 시작하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신앙생활을 계속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큰소리 한 번 내신 일이 없을 정도로 성품이 온화하신 분이었습니다. 언젠가 올케언니가 하는 말이, 어머님이 신앙촌에서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시면 얼굴이 아주 곱고 환해져서 소녀처럼 예뻐 보이신다고 했습니다. 어머님 입관예배 때 […]

호세아서에 기록된 감람나무가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깨달아

최영옥 집사(3) / 기장신앙촌

1957년에는 부산 영주동 산언덕에 웅장한 제단 건물을 짓게 되었습니다. 제단 터를 고르고 다질 때부터 많은 교인들이 나와서 질통을 지고 흙을 나르며 작업을 함께했습니다. 저도 거기서 일을 도왔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벽돌을 지고도 훨훨 나는 것처럼 가볍게 뛰어다녔습니다. 다 함께 찬송을 부르면서 일하는 시간이 재미있고 즐거웠으며 귀한 성전을 짓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참 기쁘고 보람되었습니다. […]

안찰 받을 때 아팠던 것은 죄가 성신을 대항하기 때문임을 알아

최영옥 집사(2) / 기장신앙촌

집회장은 대낮같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입추의 여지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단상에 서신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새하얀 와이셔츠 차림으로 힘차게 북을 치시며 찬송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렇게 박 장로님의 인도에 따라 찬송을 부르던 순간,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하더니 목구멍에서 배까지 시원한 물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배 속에 신작로 같은 넓은 길이 활짝 열리고 그 길로 시원한 […]

천막집회에서 철야를 했는데도 피곤치 않고 몸은 날아갈 듯

최영옥 집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0년 평안남도 안주군 입석면의 시골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평범한 농가였던 저희 집은 온 가족이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며 부족함 없이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제 나이 스물한 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오빠네 가족까지 열두 명의 식구가 피난을 떠났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에 꼬박 두 달 동안 산길을 걸으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몹시 고생을 […]

거룩한 성신을 내 맘속에 언제나 모시는 것이 내 소망

유영애(4) / 기장신앙촌

저와 네 살 터울인 여동생 순애는 언제부턴가 배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래도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는 것 같아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복막염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워낙에 말수가 없고 성격이 순한 동생이 아픈 것을 내색하지 않아서 가족들도 몰랐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로 옆구리에서 물을 빼내고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좋아졌는데 어느 날 밥을 먹은 것이 […]

기성 종교 세력과 정치인들의 음모로 옥고를 당하신 하나님

유영애(3) / 기장신앙촌

당시 소사신앙촌 농장에서 일하던 저는 매일 근무를 마친 후 오만제단에 올라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인천 앞바다가 얼어붙는 혹한 속에서 옥고를 치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공판이 있는 날이면 신앙촌 사람들이 모두 오만제단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루는 공판 날 예배를 드릴 때였는데 갑자기 아주 좋은 향기가 진하게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강하게 진동하는지 마치 […]

죄를 씻어 주시는 하나님의 성신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

유영애(2) / 기장신앙촌

저희 가족이 입주했을 때는 박태선 장로님께서 지방을 다니시며 순회 집회를 하시느라 몹시 바쁘시던 때였습니다. 신앙촌은 일주일에 한 번씩 예배를 인도하셨는데 저는 주일예배 때 처음으로 박 장로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의 인도로 힘차게 손뼉을 치면서 찬송하는 동안 마음이 참으로 기쁘고 평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저는 처음으로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한 번도 […]

예배 시간에 향기가 진동하고 안개같은 것이 뽀얗게 내려

유영애(1) / 기장신앙촌

저는 1933년 전라남도 광양군 봉강면의 시골에서 5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가족은 농사를 지어서 먹고사는 데에 걱정이 없었으며 온화한 성품의 부모님 슬하에서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아버지는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으며 어머니는 일꾼을 부려 농사를 지으시고 종갓집 맏며느리로 1년에 열세 번씩 있는 제사를 준비하셨습니다. 딸이 넷인 저희 집안에서 외아들인 남동생은 어려서부터 눈이 좋지 않아 온 가족이 걱정을 했습니다. […]

하늘의 기쁨을 주시고 새 생명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

김후순 집사(3) / 기장신앙촌

당시는 소사신앙촌에 주택을 한창 지을 때여서 건설대원뿐 아니라 종업원들도 건설 작업을 도왔습니다. 양재 공장에서 근무했던 저는 다른 종업원들과 함께 새벽예배를 마친 후 지게를 지고 벽돌을 날랐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많이 나르려고 경쟁하면서 신나게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출근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양재 공장에서 제품 검사를 맡아 하며 사이즈와 바느질 등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

하나님 단상에서 불덩어리가 사람들 쪽으로 튀어나와

김후순 집사(2) / 기장신앙촌

이듬해인 1956년 10월에 저는 창미네 식구들을 따라 전도관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용산구 원효로 3가에 위치한 그곳은 박태선 장로님께서 세우신 교회라고 했습니다. 기차처럼 기다랗게 생긴 예배실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찬송을 했는데 거기서 소리 높여 찬송을 부르며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주 일요일에는 이만제단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여 창미 어머니와 함께 이만제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한창 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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