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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가지고는 천국에 못 가지요’ 하셨던 말씀 떠올라

이만화 권사(2) / 홍제교회

그 후 1960년 12월에 동아일보에서 하나님 은혜가 찍힌 사진이 조작됐다는 터무니없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전부터 비방 기사를 계속 내던 동아일보가 급기야 이슬성신 사진이 조작됐다고 허위 기사까지 쓰니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교인들이 항의하는 뜻으로 동아일보사 앞에 모여 구호를 외쳤는데, 최루탄을 쏘아서 눈을 뜰 수 없는 와중에 차에 실려 동대문 경찰서로 가게 […]

나도 은혜를 받아서 기쁘고 즐거웠구나!

이만화 권사(1) / 홍제교회

저는 1941년 경상북도 경주군 감포읍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많이 지었던 저희 집은 가을이면 추수한 곡식이 창고 가득 쌓일 만큼 생활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어릴 때 감포 장로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셨고 몇 년 후에는 아버지도 같이 나가셨습니다. 교회 일에 열심이셨던 부모님은 행사 때면 교인들을 집으로 불러 대접하고 교회에 강대상을 기증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던 1955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박태선 […]

주 안에 행복을 누리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유효순 승사(2) / 기장신앙촌

건설대에서 일을 배우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저녁 식사 후에는 원하는 사람만 작업하러 나오라고 했는데, 저는 몹시 피곤해서 그만 들어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식사하는 동안 피곤이 점점 사라지더니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한 것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이 가뿐하고 기운이 솟아올라 다시 현장에 나가 신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 […]

서울 중앙 전도관 (이만제단) 나간 후로 마음속 불안이 기쁨으로

유효순 승사(1) / 기장신앙촌

1938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난 저는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슬하에서 세 살 터울 남동생과 같이 살았습니다. 몸이 약하셨던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나셨고 몇 년 후 새엄마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막연히 새엄마가 좋으신 분일 거라고 기대했지만 새엄마는 아버지 몰래 저희 남매를 구박하며 하루도 큰소리를 내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였던 저는 하루도 마음 편한 날 […]

‘직접 보고 겪은 은혜 어찌 부인할 수 있을까’

곽병기 / 기장신앙촌

그해 가을에는 서울에 올라가 이만제단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안개같이 뽀얀 것이 사람들 머리 위로 자욱하게 내리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한없이 쏟아지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싹싹 피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주시는 이슬성신이 안개처럼 뽀얗게 내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모습을 보며 ‘똑같이 예배를 드려도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고 못 받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받으면 참 좋구나!’

곽병기 / 기장신앙촌

저는 1938년 충청북도 보은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 슬하에서 7남매 형제들이 오순도순 살았고, 장남인 오빠는 셋째였던 저를 무척 아껴 주었습니다. 그 후 제 나이 열세 살 때 6 ·25 전쟁이 일어나면서 큰 슬픔을 겪게 됐습니다. 동네에 인민군이 들이닥쳐 청년들을 모두 끌고 갔을 때 청년단 단장이었던 오빠는 인민군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도 병을 […]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하나님의 은혜일세

김춘매 퇴임 교역자(2) / 기장신앙촌

전주제단에 계속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폐병을 앓던 젊은 여자 교인이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듣고 입관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원래 저는 겁이 많아 시신을 보는 것이 꺼려지긴 했지만,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면 아름답게 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입관예배 때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이 씻긴 후 보여 줬는데 고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폐병을 […]

누가 그렇게 안찰을 못 받아서 안타까워합니까?

김춘매 퇴임 교역자(1) / 기장신앙촌

저는 1928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열아홉 살에 결혼한 후로는 남편 직장이 있는 고창에서 살았는데,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임신한 몸으로 70Km를 넘게 걸어서 전주까지 피난했습니다. 그때 무리가 됐는지 학질에 걸려 한참을 앓은 후 아이를 사산하고 말았습니다. 또 남편은 공습이 퍼붓는 중에 남원 시댁으로 갔다가 행방불명이 되어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쟁 통에 혼자가 된 저는 […]

‘내 힘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구나!’

김주자(2) /기장신앙촌

서울에 온 뒤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전도관에 나와 보라고 계속 권유하셨습니다. 그 권유에 못 이겨 이만제단에 다녀오신 날 아버지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설교 시간에 등단하신 박 장로님께서 “마음 문 여세요.” 하고 말씀하시는 순간 아버지는 7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고 하셨습니다. 6·25 전쟁 때 큰 소리로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서 구해 주셨던 음성이 바로 박 장로님의 음성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

하나님 은혜가 내 몸과 마음에 스며든다는 것이 신기해

김주자(1) / 기장신앙촌

저는 1937년 전라남도 목포시 창평동에서 태어났습니다. 4남매 저희 형제들은 부모님을 따라 어릴 적부터 성결교회에 다녔고, 아버지가 인쇄소를 하셔서 큰 부자는 아니어도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제가 자랄 때는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들이 많았는데 베풀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거지 아이를 만나면 집에 데려와 씻기고 먹인 후 고아원까지 업어다 주셨습니다. 열성 성결교인이셨던 아버지는 6·25 전쟁 때 신기한 일을 겪었다고 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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