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관 교인들 부르는 찬송 소리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

김순매 권사(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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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31년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걱정 없이 살았던 저희 집은 일제시대와 6·25 전쟁을 겪으며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집안의 기둥인 큰오빠가 일제 때 징용으로 끌려가고 작은오빠는 6·25 전쟁에 군인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오빠들을 대신해 맏이 역할을 하며 동생들을 보살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대구로 나가 자취를 하면서 방직 회사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1955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자취하는 집에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몰려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들것에 실려 가는 환자도 있었습니다. 옆집 아주머니에게 물었더니 칠성동에서 큰 부흥집회가 열려서 거기에 가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집회를 하시는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은혜를 내리셔서 불치병 환자가 낫는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고칠 수 없는 환자들이 박 장로님 집회에 많이 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박태선 장로님이 누구시기에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시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그날 친한 친구의 동생이 찾아와서 박 장로님 집회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그 동생은 박태선 장로님이 아주 유명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동생과 함께 칠성동에 가 보니 천막을 쳐 놓은 집회장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여 있었습니다. 서로서로 어깨가 닿을 만큼 비좁게 앉아 들어갈 수가 없어서 저와 동생은 맨 뒷자리에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 멀리 단상에 서신 분이 아주 조그맣게 보이고 말씀하시는 음성도 들리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이 너무 많아 답답한 데다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것이 소란스럽게 느껴져서 동생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예배드리고 가요. 박 장로님 집회에서는 은혜가 내린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은혜가 어떤 것인가 궁금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불편하고 지루해서 예배 도중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저는 스물일곱 살에 결혼해 서울 시흥동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다 보니 어느새 제 나이도 40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옆집에 사시는 윤경숙 권사님이라는 분이 친정어머니처럼 잘해 주셨는데, 전도관 교인이신 그분은 같이 시흥전도관에 나가자고 권유하셨습니다. 저는 윤 권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전도관이 박태선 장로님께서 세우신 교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박 장로님 집회에 구경 갔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큰 관심이 없어서 전도관에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옆집에 사는 권사님의 전도로
새로 짓고 있던 시흥전도관에 나가
찬송가를 몰라도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 소리를 듣는데 마음이 편안해져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 계시던 시어머니가 저희 집에 다니러 오셨습니다. 그날 마침 윤 권사님이 오셔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윤 권사님이 전도관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저를 전도하고 싶다고 하시자 시어머니는 저에게 윤 권사님을 따라 전도관에 나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시어머니 말씀을 거스를 수가 없어서 전도관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시흥전도관을 새로 짓고 있는 중이라 임시로 가정집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찬송가를 몰라서 따라 부르지 못하고 가만히 듣기만 했습니다. 그때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당시 저는 건강이 많이 나빠져서 한낮에도 자주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별다른 이유 없이 기운이 빠지고 온몸에 진땀이 흘러서 병원을 다녀 보았지만, 특별한 병명이 없었고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윤 권사님이 제가 아프다는 것을 전도관에 알리셨는지 하루는 전도사님과 교인들이 저희 집에 찾아오셨습니다. 동그랗게 모여 앉아서 찬송을 불렀는데 저는 앉아 있기도 힘들어서 온몸에 진땀이 흘렀습니다. 옆에 있는 교인에게 눕고 싶다고 했더니 그분은 제 안색이 창백하다고 걱정하며 얼른 누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누웠다 일어나자 웬일인지 몸이 아주 가뿐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 앉아서 한참 동안 찬송을 불러도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교인들이 저를 보고 얼굴이 달덩이처럼 뽀얗고 혈색까지 돈다고 했습니다. 저는 앉아 있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없었는데 예배를 드리는 중에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졌다고 교인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 후로 시흥제단이 신축되면서 저는 새벽예배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윤 권사님이 매일 깨워 주셔서 빠짐없이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의 제일 장로교회에 다니는 젊은 새댁을 만났는데, 새댁은 저를 보고 왜 하필이면 전도관에 다니느냐고 했습니다. 전도관은 손 씻은 물, 발 씻은 물을 먹이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세상에 그런 물을 먹이는 데가 어디 있겠냐며 한 귀로 흘려버렸습니다.

건강이 나빠져서 누워있던 어느 날
전도관 교인들이 집에 찾아와 예배를
함께 드리는데 앉아 있지도 못할
정도였던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져

그런데 다음 날 새벽예배에 갔더니 전도사님이 물을 한 컵 주시며 박태선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생명물을 보는 순간 ‘혹시 이 물이 손 씻은 물인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흘려버렸는데 막상 생명물을 보니 다시 그 말이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생명물을 아무리 살펴봐도 증류수같이 맑고 깨끗해서 역시 그런 소리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날 처음으로 생명물을 마시게 되었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새벽예배를 마치고 생명물을 주셔서 한 컵씩 마셨습니다.

생명물을 마신 후부터 저는 기운이 빠지고 온몸에 진땀이 흐르던 증상이 깨끗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전에는 몸이 많이 마르고 안색도 창백해서 이웃들이 “애들을 두고 엄마가 아파서 어떡해?” 하며 걱정했는데, 생명물을 마신 후로는 살도 찌고 발그스름하게 혈색이 돌아서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김순매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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