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장로님께서 바로 성경에 기록된 감람나무이심을 깨달아

전금의(3)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33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매주 박 장로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성경상의 감람나무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호세아 14장을 풀어 주시며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자가 곧 감람나무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이슬 은혜를 직접 체험하고 조목조목 가르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박 장로님께서 바로 성경상의 감람나무이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깨닫는 것이 참 재미있어서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이라는 찬송을 자주 불렀습니다.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수예부와 건설대, 편물부를 거쳐 제과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제과부에서 만드는 캐러멜과 카스텔라가 큰 인기를 끌어서 3교대를 하며 생산해도 주문량을 맞추기에 바빴습니다. 카스텔라는 빵 하나에 계란 한 개씩을 넣어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었으며 캐러멜은 일본 모리나가 캐러멜보다 더 맛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제과 공장은 밤에도 대낮같이 전등을 밝히고 신나게 찬송을 부르며 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야간작업 때 하나님께서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찬송 소리가 크게 들려서 왔다고 하시며 작업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소사신앙촌에 큰 우물을 쌓을 때는 신앙촌 주민들이 모두 돌을 나르며 일을 도왔습니다. 저는 제과부에서 일하고 남는 시간에 우물을 쌓는 곳에 가서 일을 돕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돌을 나르고 있는데 “쉭! 쉭!” 하고 축복하시는 소리가 들려서 주변을 살펴보니 언제 오셨는지 하나님께서 오셔서 일하는 사람들을 향해 축복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때 큰 돌을 들었는데도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가뿐하게 옮길 수 있었습니다.

1960년 12월 10일은 동아일보 사건이 있었던 날입니다. 이슬 은혜가 내리면 사진에 찍히기도 하는데 동아일보는 이슬 은혜가 찍힌 사진이 조작되었다는 허위 보도를 했습니다. 12월 10일 많은 교인들이 정정 보도를 요구하기 위해 동아일보사에 가게 되었고 저도 따라갔습니다. 제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체험한 이슬 은혜를 조작 운운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정정 보도를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이 휘두르는 곤봉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는 교인도 있었습니다. 그때 가슴을 치고 또 쳐도 원통함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천지가 요동해도 이 길을 끝까지 따라가야겠다는 굳은 각오가 생겨났습니다.

그 후 1962년 덕소신앙촌에 입주해 제과부에서 일을 했습니다. 덕소신앙촌은 한강 변에 건설되어 참 아름다웠습니다. 제가 입주했을 때는 한창 건설할 때라 공장 직원들도 건설 작업을 도왔습니다. 건설 작업을 하고 공장 일도 하며 몹시 바빴는데 피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한번은 신앙촌 주민들이 큰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서 모래와 자갈을 나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강변에 세워진 덕소신앙촌을 바라보며 “참 아름다워라. 하나님 세계는~” 하는 찬송을 불렀던 것이 어제 일처럼 떠오릅니다.

강원도 고향에 계시던 아버지는 저를 보려고 소사와 덕소신앙촌을 찾아오셨습니다. 소사신앙촌에 오셨을 때는 노구산 오만제단을 가득히 메운 교인들을 보고 믿는 사람이 이렇게 많으냐며 놀라워하셨습니다. 그리고 덕소신앙촌의 아름다운 풍경에 큰 감명을 받으신 것 같았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것이 참 좋다고 하시며 “신앙촌이라는 말이 허명무실이 아니구나. 나도 여기서 믿음을 가지고 살고 싶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저는 직조 공장을 거쳐 모직 공장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1972년 기장신앙촌으로 입주했습니다. 1975년 즈음에는 생후 9개월 된 아들아이가 홍역을 앓다가 숨을 거두는 일이 있었습니다. 장례반 권사님이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이 씻어 주었는데, 다 씻고 나니 얼굴이 뽀얗게 피고 입술에 발그스름하게 혈색이 돌아서 죽은 아이가 아니라 꼭 살아 있는 아이 같았습니다.

그 후 딸아이가 네 살일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부엌에서 뜨거운 숭늉을 떠서 들어가는데 딸아이가 부엌으로 나오다가 저와 부딪히는 바람에 그 뜨거운 숭늉을 얼굴에 덮어쓰고 말았습니다. 몹시 놀라고 당황하여 제가 입은 치마로 얼굴을 닦았더니 설상가상으로 피부가 벗겨지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자지러질듯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여자 아이 얼굴에 흉이 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급히 의무실로 데려갔더니 축복 솜에 생명물을 적셔서 얼굴에 붙여 주었는데, 생명물이 닿자마자 아이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그 후로 매일 축복 솜에 생명물을 적셔서 아이 얼굴에 붙여 주었으며 축복 크림도 발라 주었습니다. 얼마 후 축복 솜을 떼어 보니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나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고맙고 감사한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금의님 신앙체험기)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