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을 헤매다가 다시 찾은 천부교(1) 홍신일 집사(워싱톤교회)

홍신일 집사(워싱톤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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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미국 필라델피아 동북방에 있는 노리스 타운이라는 작은 도시. 주로 노인들이 살고 있는 샌디 힐 테라스 아파트 8층에 있는 제 방에서 저는 지금 기쁨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워싱턴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방금 돌아온 길입니다. 생각해 보면 천부교 식구들과 예배를 드리고, 생명물을 받아 마시고,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고 온 것이 정녕 꿈만 같고 지나간 50년의 세월이 주마등같이 눈에 어립니다.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난 저는 국민학교 때 어머니를 따라 남산집회, 한강 모래사장집회 등에 따라 갔었습니다. 천막집회의 엄청난 인파와 불치의 환자들이 성신의 은혜로 완치되어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중학교 때 저는 이태원에 있는 보광동전도관에 다녔는데 제단 신축예배 때 제가 안내 역할을 하면서, 제단 앞에서 하나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인사를 올리는데 하나님께서 이마에 안수를 하여 주셨습니다. 이마를 탁 치시는데 그 순간 아주 강한 향취가 코로 싹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아주 심한 축농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강한 향취가 맡아지면서 코뿐만이 아니라 온 몸이 시원해지며 고질병이었던 축농증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러한 체험이 저로 하여금 이제까지 딴 길로 빠지지 아니하고 오직 천부교회만을 사모하게 해준 귀중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1963년도에 덕소신앙촌 제강공장 용광부에서 근무하다가 군에서 제대한 후 400여명의 한국인이 이란으로 취업하러 갈 때 저도 이에 동참하였습니다. 무더운 사막지대에서 1년 반 동안을 트레일러 운전사로 일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호화 유람선 선원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뉴저지에 있는 야채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매일 뉴욕으로 야채를 받으러 트럭을 몰고 가는데, 1978년 어느 날 새벽이었습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악천후 속에 뉴저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저는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자동차가 100피트나 되는 다리 아래로 추락한 것입니다. 즉사는 면하였으나 수술을 19시간이나 받고 의식을 잃은 상태로 1주일을 지나다가 깨어났는데 척추가 부러지고 하반신이 모두 망가져 하반신을 전혀 못 쓰는 불구의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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