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은혜로 큰 권능 보여주시니 두려움이 놀라움으로 바뀌어”

발행일 발행호수 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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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이어)

어렵사리 들어온 건설대인 만큼 제 각오는 대단해서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겠다는 자세로 일했습니다. 건설대로 일하며 참 신기했던 일은 자갈이나 시멘트 포대 등 무거운 재료를 운반할 때 이를 지켜보시던 하나님께서 쉭 하고 축복해 주시면 아주 가볍게 느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무거운 포대를 가뿐하게 들고 나르던 일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 힘이 아니었고,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건설대원들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한 번은 건물 바닥재로 쓰이는 자갈을 운반하다가 넘어져서 복숭아뼈가 툭 튀어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발목을 삔 건지, 뼈가 부러진 건지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서 다른 이에게 업혀 하나님 앞에 갔더니, 하나님께서는 발목에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축복을 받은 직후 조심스레 발을 움직여 보니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일어나서 한 걸음씩 걸어보니 아무렇지도 않아서 집에 돌아갈 때는 부축 없이 혼자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일하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걷지도 못했던 발목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니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집에 갈 때는 걸어서 혼자 갈 수 있어

그런데 1958년 12월에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위기감을 느낀 일부 정치인과 타 종교 세력이 결탁하여 말도 안 되는 죄목을 갖다 붙인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은 억울함에 분통을 터뜨렸고, 저 역시 너무나 속이 상해 밤마다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후 1960년 3월, 옥고를 치르고 소사신앙촌에 돌아오신 하나님은 도착하시자마자 오만제단에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고 안찰도 해주셨습니다. 저는 안찰 받기 전 속으로 ‘오랫동안 하나님을 뵙지 못해 죄가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배에 닿은 하나님의 손이 솜뭉치보다도 더 부드럽고 포근한 것이었습니다. 오시자마자 잠시도 쉬지 않고 교인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신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하여 안찰을 받고 나오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길을 꼭 따르겠다고 다시금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 제과공장

그 후 저는 제과부에서 근무하게 되어 빵에 들어갈 크림과 앙꼬 만드는 일을 맡았습니다. 당시 신앙촌에서 만들어지는 카스텔라, 크림빵, 앙꼬빵 등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제과 공장도 활기차게 운영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과부에 오시면 반죽에 들어갈 물을 축복해 주셨는데 그 물로 만든 빵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고 날개라도 돋친 듯 빠르게 팔려나갔습니다.

이후 저는 신앙촌에서 나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뒤로 몸이 갑작스럽게 쇠약해지면서 이불 위에 누워서 꼼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태어난 아이가 100일이 될 때까지 제대로 안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엉망이었는데, 어느 날 지인이 하나님께서 직접 축복해 주신 캐러멜을 꽤 많이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는 캐러멜을 입에 넣어 조금씩 녹여 먹었고, 며칠에 걸쳐 캐러멜을 먹고 나니 몸에 기력이 조금씩 돌아서 나중에는 밥도 직접 해서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 건강을 되찾은 저는 소사동 제단에 다니며 활발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몸이 쇠약해져서 누워만 있었는데
축복해 주신 카라멜 먹으니 몸에 기력이 돌면서
점차 건강을 되찾게 돼

소사동교회에서 여성회 회장을 할 때의 일입니다. 어떤 권사님의 손녀가 갑작스레 병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어 입관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성회 회장으로서 아이의 시신을 씻기는 일을 제가 맡게 되었는데, 처음 해보는 일인 데다가 아이의 얼굴색도 어둡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을 들으며 생명물을 적신 수건으로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자 두려움은 놀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두웠던 아이의 안색이 환해지고, 몸이 부드럽게 움직여 자유롭게 옷을 갈아입힐 수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보다 더 아름답게 피어난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그 후에도 생명물로 시신이 피어난 모습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는데, 하늘의 권능을 이토록 분명히 보여주시니 이곳에 하나님 은혜가 함께하심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이심을 발표하셨을 때에도 ‘아! 너무 옳다. 하나님이 신기한 능력을 갖고 이 땅에 오신 거구나!’하고 감탄하며 무릎을 쳤습니다.

안색이 어둡고 뻣뻣했던 시신
생명물로 몸을 닦아주니 얼굴이 환하게 피어나고
몸도 부드럽게 움직여서 산 사람보다 아름다워 보여

1980년부터는 언젠가 꼭 해야겠다고 생각만 했던 일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바로 신앙촌 소비조합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시에는 메리야스, 가구, 압력솥, 밥상 등 그야말로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되었고, 고객들도 품질 좋고 믿을 수 있는 신앙촌 물건을 참 좋아해서 장사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그때는 이불 커버 신제품이 많이 나왔는데, 저는 이불 커버를 구매한 고객 중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솜을 틀어 바느질까지 해서 이불을 완성해 드렸습니다. 고객들이 정성을 담아 만든 이불을 받고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그 환한 미소에 제가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금도 저를 만나면 그때 이불을 만들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아직도 그 이불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고 말하는 고객도 계십니다.

생명물두부가 막 출시되었던 1997년에는 관장님의 권유로 노량진 센터 식당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노량진 센터는 소비조합들이 도매로 물건을 구입하는 곳이어서 많은 소비조합들이 찾아오고 있었는데,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소비조합들을 매일 볼 수 있었습니다.

항상 바삐 움직이는 소비조합들에게 한 끼라도 든든한 식사를 제공하고 싶어서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한번은 생명물두부로 특별한 반찬을 만들어 보려고 튀긴 두부에 소스를 곁들인 두부탕수를 만들었는데 먹어본 사람들이 너무 맛있다고 다들 한마디씩 칭찬해 주셔서 쑥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덕소 센터 식당으로 옮겨 2022년까지 근무하다가 은퇴하여 소사동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습니다.

김지희 권사/ 소사동교회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소사신앙촌 건설대로 일하던 시절의 하루가 떠오릅니다.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저를 보신 하나님께서 “힘들지 않아? 집에 가고 싶지 않아?”하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하는 일에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던 저는 “아닙니다” 하고 큰소리로 대답했고 하나님은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어도 제 마음은 그때와 같습니다. ‘내 영혼이 은혜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하는 찬송가 가사처럼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면 하늘의 기쁨이 함께하시니 세상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저의 시간들도 이 진리를 끝까지 따라가며 하나님 뜻하시는 바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 구원의 소망을 갖게 해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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