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은혜 간구하며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고 싶어”

나옥희 집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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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옥희 집사

나옥희 집사

(지난 호에 이어서) 그 후 소사신앙촌에서 지낸 시간은 3년 남짓 짧은 시간인데도 사진으로 찍어둔 것처럼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제과 공장에서 새하얀 유니폼 입고 달콤한 냄새 풍기는 캐러멜을 손이 안 보이도록 빠르게 포장하다 보면 한쪽에서 신나게 찬송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거기 질세라 목청껏 찬송을 부르며 연신 웃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한 번씩 외국 사람들이 공장에 견학 오면 빠른 손놀림을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일본에서 들여온 포장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제과공장에서 만든 카스텔라는 얼마나 맛있는지 입안에서 살살 녹았습니다.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맛이 안 잊혀지고 한 번만 먹어 봤으면 하고 그리울 정도입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처음 맛본 카스텔라여서 특별하게 기억되기도 할 것이고, 기쁘게 일하던 시절이 부드럽고 달콤한 맛하고 같이 떠올라서 더 그립습니다.

소사신앙촌 제과 공장에서 캐러멜을 포장하는데
곳곳에서 사원들이 찬송을 부르며 즐거운 마음으로 일해
웃으며 일했던 그 시절이 기억에 남아

소사신앙촌에서 마냥 기쁘고 즐겁게 살 줄 알았지만 부모님 생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요즘 같지 않아서 열일곱 살만 되도 시집가서 쪽찐머리 하고 다니는 일이 흔했는데, 스무 살 넘어 과년한 딸을 그냥 둘 수 없다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충청북도 충주 주덕읍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시집은 농사일밖에 모르는 시골이었습니다. 저는 저녁상을 치우고 나서 시어머니와 남편하고 같이 둘러앉아 성경을 읽어 드리고 찬송가도 불러 드렸습니다. 시어머니가 어디서 이런 걸 배웠냐 하시기에 전도관에 다니고 신앙촌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어머니도 남편도 재미있게 들으니 다음 날도 그다음날도 성경과 찬송을 알려 드렸는데, 저녁마다 그러다 보니 동네에 소문이 나서 저 집은 재미나게 산다고들 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자 시어머니가 전도관에 나가 보자 하셨습니다. 집에서 10리를 걸어 주덕읍 탑돌전도관에 나갔더니 예배실에 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신앙촌에서 지냈던 일이 눈앞에서 필름을 돌려 보여 주는 것처럼 생생히 떠올라 사무치게 그리웠고, 아무리 그치고 싶어도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울다 울다 겨우 눈을 떠 보니 시어머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계셨는데, 집에 와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구박하기를 했냐, 시집살이시키기를 했냐. 딸처럼 여기고 귀애했는데 왜 그리 서럽게 우느냐?” 하셨습니다. 그렇게 어깨를 들썩거리고 한참을 우는 데는 섭섭한 게 있는 모양이라 하셨습니다. 저는 신앙촌이 그리워 울었다고 말하다 말고 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3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신앙촌은 마음으로부터 그리는 고향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신앙촌에 다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매일같이 하고 또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읍내와 가까운 논밭을 사게 되어 이사하고 보니 코앞에 주덕전도관이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나 싶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전도관이 가까우니 매일 새벽예배 나가자 했더니 다들 순순히 따라나섰습니다. 나중에는 농사일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전도관에 살다시피하며 전도사님을 도와 드렸습니다. 그리고 신앙촌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합해 드디어 1965년 다시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그 후 3남매 아이들 낳고 키우면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부산에 기장신앙촌이 세워지고 한 달에 한 번 축복일에는 기장신앙촌에 내려가 예배드렸는데, 1985년 무렵부터는 매주 일요일마다 축복일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그때 구역장을 맡아 축복일에 가는 교인들을 챙기고 차를 대절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축복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축복일에 참석한 것은 제 신앙이 자라는 좋은 계기가 됐습니다.

축복일날 예배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향취가 코 밑에 살살 불어와 맡아져서
한없는 축복을 주시는구나 깨달아

어느 축복일이었습니다. 신발 벗고 예배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얼마나 향취가 진동하는지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향취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한가운데를 지나는 것처럼 부드럽고 향긋한 냄새가 온몸을 감싸며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예배 마치고 소사신앙촌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향취가 코 밑에서 살살 불어와 계속 맡아지니 ‘은혜의 창파라더니 한없이 부어 주시는구나! 진짜 축복을 주시는 축복일이구나!’ 하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향취 속에서 베갯잇을 적시며 울다 울다 잠들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열심히 살아 보자는 각오가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생각만 해오던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축복일에 열심히 참석하는 교인들을 보면 소비조합을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신앙촌 제품을 팔고 알리다 보니 전도를 많이 하는 것도 보기 좋았습니다. 언젠가 나도 소비조합을 해야지 하고 늘 생각했는데 드디어 신앙촌 옷을 들고 고객들을 만났습니다. 성격이 활달해 사람들 만나는 것도 재미났지만 신앙촌 물건이라면 반색하며 이웃들까지 불러 모아 주니 물건 파는 재미도 컸습니다. 고객들 취향에 맞춰서 옷이나 내복을 골라가면 마음에 쏙 든다며 좋아했고 신앙촌 물건은 역시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 올릴 때면 보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일 오후 4시쯤이면 준비해 간 물건이 다 팔려서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 구역 연로하신 교인들을 찾아가 말벗을 해 드렸는데, 초창기부터 따라오신 그분들께 은혜 체험담을 듣는 것이 좋았습니다. 식구처럼 가깝게 지내며 찾아뵙다가 임종하실 때가 다가오면 정성껏 몸을 닦아 드리고 생명물을 먹여 드렸습니다. 그렇게 어른들을 챙겼던 것이 계기가 돼 1994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후에는 장례반을 맡아 연로하신 분들을 보살펴 드리고 장례예배 때 고인의 몸을 생명물로 깨끗이 닦아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100세가 가까우신 권사님이 오랫동안 누워 계셔서
얼굴과 몸 전체가 자줏빛이었는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문을 하자 
자주빛 피부가 날이 갈수록 밝아지는 것이 뚜렷해
돌아가신 후 생명물로 씻겨드리자 얼굴이 뽀얗게 피고
검버섯까지 깨끗하게 없어져

15년 넘게 장례반을 하며 있었던 일을 다 쓰자면 지면이 모자랄 것 같습니다. 생명물로 씻기고 나면 한결같이 아름답고 곱게 피어나니 한 분 한 분의 모습이 다 체험담인데 그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김옥춘 권사님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김 권사님을 처음 뵀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100세가 가까우신 권사님은 오랫동안 누워 계셔서 혈액순환이 안 돼서인지 얼굴과 몸 전체가 자줏빛이었는데, 사람 피부색이 그런 것은 처음 봤습니다. 그래도 정신이 또렷하셔서 제가 가서 보살펴 드리면 무척 고마워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권사님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기도문을 열심히 하시던 모습이 떠올라 김 권사님께도 하루에 기도문 1,440번을 하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실에 매듭을 묶어 기도문 할 때마다 매듭을 짚으며 숫자를 셀 수 있게 해 드렸습니다. 권사님 끈기가 대단하셔서 그때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문을 하셨고, 자줏빛 피부가 날이 갈수록 밝아지는 것이 뚜렷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2001년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기도문을 하셨는데 돌아가신 후 생명물로 씻겼을 때는 얼굴이 뽀얗게 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덕더덕 많이 있던 검버섯까지 깨끗하게 없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건으로 말끔히 닦아 드린 후에도 콧잔등에 이슬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고, 닦아 드리고 다시 보면 또 맺혀 있었습니다. 생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예쁘니 유족들이 다들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입관까지 마친 후 멀리 사는 유족이 도착해서 고인을 뵐 수 있게 관 뚜껑을 열었을 때였습니다. 뚜껑을 여는 제 손에 시원한 바람이 선들선들 와 닿아 저도 모르게 “이럴 수가!” 하고 탄복을 했습니다. 8월이라 한창 더울 때였는데 뚜껑을 덮어 둔 관 속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마친 후에도 성신의 바람으로 고인을 계속 지켜 주신다고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분을 생각하면 나도 마지막까지 하나님 은혜 간구하며 맑은 정신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굽이굽이 많은 일이 있었던 것도 같고 눈 깜빡할 새 다 지나온 것도 같습니다. 어려운 일 닥칠 때면 하나님은 죄와 타협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올곧게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은혜 받아 기쁠 때는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하는 찬송처럼 천국을 맛보게 됐습니다. 오늘도 은혜 주시는 길을 따라가니 이보다 값진 시간이 어디 있나 싶습니다. 귀한 은혜 간직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서 그날에 아름다운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라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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