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은혜를 주시는데 어떻게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신앙체험기 505회 서동교회 서송자 권사>
발행일 발행호수 2637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서동교회 서송자 권사

열아홉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면 지산리에서 살던 저는 스물일곱 살에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이제 막 3살, 5살이 된 어린 남매를 두고 남편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잃은 충격과 슬픔은 뒤로한 채 당장 아이들과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했고, 저는 원래 살던 집을 정리하고 아이들과 시댁 바로 옆집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작은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그로 인한 수입은 아이들을 키우기에 턱없이 부족했고 생계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자 제 마음은 점점 병이 들어 결국 환청까지 들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날은 귀에서 ‘너를 죽이겠다’는 목소리가 들려서 너무 무서운 나머지 시댁으로 달려가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혀 몸을 덜덜 떠는 저를 본 시댁 식구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불러와야겠다며 집 바로 맞은편에 있는 지산 전도관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전도사님을 포함한 전도관 사람들은 저를 둘러싸고 찬송을 부르며 정성껏 예배를 드려주셨습니다.

찬송 소리를 듣다 보니 어느새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한참 찬송을 부르던 전도관 사람들은 안정을 되찾은 제 모습을 보더니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시고 전도관에 꼭 와보시라며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갔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다시 환청을 듣는 일은 없었습니다. 건강을 되찾은 저는 너무 기쁘고 감사한 마음에 지산 전도관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제 나이 서른, 1971년의 일입니다.

그 후로도 경제적인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지만 전도관을 다닌 이후로는 전처럼 마음이 괴롭거나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편하고 기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시댁 식구들이 제가 전도관 다니는 것을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도관 덕분에 제 병이 나은 것을 직접 봤으면서도 왜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대로 안면몰수하는 것은 저를 도와준 곳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반대를 무릅쓰고 전도관을 다녔습니다. 시댁 식구들의 눈을 피해 몰래 전도관에 간 어느 날이었습니다.

지산 전도관에는 교인들이 쉴 수 있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는데 저는 그 방에 누워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워있던 제 목 위로 차가운 물방울이 똑똑똑 떨어졌습니다. ‘천장에서 물이 새나? 비도 안 오는데 왜 물이 새지?’ 하고 생각하던 찰나 몸에서 무언가가 싹 빠져나가면서 몸 전체가 시원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느낌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지만 몸속까지 싹 씻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기도를 드리니 그때부터 향기로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맛있고 좋은 향이던지 저는 연거푸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그 향을 계속 맡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향은 사라지고 지독한 탄내가 나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가려고 교회 문밖을 나서는데 몸의 무게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발걸음이 둥둥 떠서 공중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걸어왔는지 날아왔는지 모르게 집에 도착하고 나니 또다시 그 타는 냄새가 맡아졌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 냄새를 맡으니 살면서 제가 지었던 크고 작은 죄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적, 집에서 몰래 삶은 계란을 집어 먹었던 일을 포함해 그전에는 죄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모두 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나님께 용서를 빌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하고 간절히 기도드리자 지독하게 풍겨오던 냄새는 거짓말처럼 싹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8일 동안 타는 냄새를 맡고 회개하는 기도를 반복하고 나니 더 이상 지독한 탄내가 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제 이야기를 들은 전도사님은 제가 은혜받았다며 향기로운 냄새는 향취 은혜이고, 무언가 타는 듯한 냄새는 죄 타는 냄새를 맡은 것이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동안 겪어본 적 없었던 신기한 은혜 체험을 계기로 저는 신앙생활에 더욱 열심을 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못마땅하게 여긴 시댁 식구들의 핍박은 더욱 심해져서 저희 집까지 찾아와 훼방을 놓았습니다. 시어머니와 시동서는 제가 평소처럼 머리를 감아도 ‘어딜 가려고 머리를 감느냐’며 화를 내고, 잠깐 외출하려 해도 아예 밖에 나갈 수 없도록 문 앞에서 감시하며 가로막곤 했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전도관에 갈 수 없다는 것이 하도 속상해서 방으로 들어가 울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순간 진한 향취가 맡아졌습니다. 꽃향기 같기도 하고 고급 향수 냄새 같기도 한 향취가 진동하니 제 마음은 어느새 기쁨으로 가득해졌습니다. 그날 방안에서 ‘이렇게 귀한 은혜를 주시는데 어떻게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하며 한참 동안 감사기도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지산 전도관은 저희 집과도 매우 가까웠기에 저는 심한 핍박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하던 때에는 마당으로 나와 전도관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찬송을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마당 앞에 서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기도를 드리다가 눈을 떴는데 어디선가 베틀로 가지런히 짠 직물처럼 넓고 곧게 뻗은 빛줄기가 제 앞으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 빛은 분명 전도관 쪽에서 오고 있었습니다. 캄캄한 새벽에 그렇게 환한 빛이 나올 곳이 없는데 제 앞으로 오는 빛줄기는 너무도 밝고 선명했습니다. 빛을 바라보며 신기해하고 있는데 그 순간 마음속에 기쁨이 물밀듯 차오르고 몸이 둥둥 떠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저는 ‘은혜를 주시는구나!’ 생각하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하나님을 따라가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광주 서동교회

1976년에는 시댁에서 나와 광주에 있는 친정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이사 직후에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광주공원 근처에 전도관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위치를 알아두기 위해 미리 가보았습니다. 건물의 위치를 확인하고 집에 돌아와서 다음날 새벽예배를 갔는데 완전히 다른 건물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하게 생각되었지만 건물에 광주 전도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기에 들어가 보니 정말로 그곳이 전도관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전도관이라 착각하고 다녀온 곳은 다른 기성교회였고,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진짜 전도관을 찾아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재미있고 신기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는 그때 하나님께서 길을 인도해 주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후 광주 전도관을 다니며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다가 하나님께 안찰을 받으러 기장신앙촌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저는 그때 하나님을 뵙는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자하신 미소로 사람들을 한 명씩 안찰해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안찰 받을 때 아프다고 하는데 저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귀한 은혜를 내려주시는 분을 직접 만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광주에 온 이후로 저는 시장에서 빵을 팔며 간장과 메리야스 등 신앙촌 제품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는데, 1996년 12월에 생명물두부가 출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반가운 소식을 들은 저는 새벽에 두부를 받아서 광주 양동시장에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동안 신앙촌 제품을 좋아해 주는 고객들이 많았기에 분명 두부도 인기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두부는 처음 선보이는 것이라 조금 긴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고객들은 생명물두부에 큰 관심을 보였고, 신이 난 저는 신앙촌에서 나온 두부가 얼마나 맛있고 좋은 제품인지 설명하며 가져간 두부를 모두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두부를 판매하고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여니 향취가 강하게 맡아져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동안 하나님의 권능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을 많이 봐왔습니다. 지산 전도관에 다니던 시절, 병에 걸려 생을 마감한 아가씨가 입관 예배를 마친 후 아름답게 피어난 광경을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릅니다. 파리했던 안색이 뽀얗게 피어나고, 굳어있던 팔다리가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 병색이 완연했던 고인의 생전보다 더욱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몇 해 전에는 제가 다니는 광주 서동 천부교회의 권사님이 돌아가셨는데 생명물로 깨끗이 씻겨드리고 입관 예배를 드리자 너무나 환하게 피어나서 그 자리에 있던 교인들 모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은혜의 권능은 이토록 확실했습니다. 그렇기에 저 역시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이 길을 따라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순간순간 들어오는 죄 된 생각을 안 하려 노력하고 온 마음을 다해 기도드리는 날에는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것이 보여집니다. 부족하기만 한 제게 기쁨의 은혜를 허락해 주시며 곁에서 늘 힘이 되어주신 하나님.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감람나무 가지들에게 바라셨던 대로 죄짓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