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사정 다 아시고 어려움을 이겨낼 힘 주시는 하나님

<신앙체험기 504회 소사동교회 김지희 권사>
발행일 발행호수 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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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초등학생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좋아 보였고, 저도 종교를 믿으면 더 착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집과 가까운 기성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다니고부터는 예배에 빠지지 않은 것은 물론 성경 공부, 기도 생활 등 극성맞다 싶을 정도로 열심이었습니다. 믿음이라면 누구에게도 밀리고 싶지 않았고, 그것이 은혜받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진짜 은혜를 받은 곳은 따로 있었습니다.

1955년 3월 26일부터 4월 5일까지 개최된 남산집회

제가 스무 살이 되던 1955년 3월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가 교인들을 모아놓고 남산집회에 가보라고 하였습니다. 목사 말에 의하면 지금 남산에서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의 집회가 열리고 있는데 불같은 성신, 향취 등 은혜가 많이 내리니 다들 가서 은혜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의 적극적인 권유로 저를 포함한 여러 명의 교회 사람들이 집회에 가게 되었고, 남산에 도착해 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천막 안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차 있었습니다. 이미 집회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저와 일행은 앞자리는 고사하고 뒤쪽에 겨우 앉아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한참을 기도드리는데 어느 순간 머리카락을 태우는 것처럼 고약한 냄새가 강하게 맡아졌습니다. 너무나 지독하게 풍기는 냄새 때문에 누가 똥을 밟고 집회장에 들어왔나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냄새의 출처는 찾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눈을 감고 기도드리는데 갑자기 몸이 후끈해지면서 과거에 저지른 잘못들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이웃집 아주머니가 저를 무척 예뻐하셔서 매일 빵을 하나씩 주셨는데, 하루는 이웃집에 가보니 아주머니는 안 계시고 채반 위에 빵만 놓여 있길래 당연히 제 것이라 여기고 빵을 집어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오르며 주인도 없는 집에 들어가 마음대로 빵을 먹은 것이 너무 양심에 찔리고 죄송한 것이었습니다. 그 오래된 기억에서부터 최근에 무심코 행한 잘못까지 모두 떠오르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펑펑 울면서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하고 계속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고약하게 풍기던 냄새는 사라지고 이번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향기가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진한 백합꽃 냄새 같기도 하고, 싱그러운 사과 냄새 같기도 한 그 향기는 태어나서 한 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냄새였습니다. 목사가 박 장로님 집회에서 향취가 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려 봤을 때 제가 체험한 것은 바로 향취 은혜였습니다. 또한 머리카락이 타는 듯이 고약한 냄새는 내 안의 죄가 타는 냄새라는 것을 나중에 듣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은혜라는 것을 추상적으로만 생각했는데 남산집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처음으로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남산집회가 끝나고 제가 다니던 기성교회에는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은혜를 받겠다며 하나님 집회에 가는 사람은 늘어난 반면, 남산집회에서 받은 은혜를 교회에서는 체험할 수 없다며 예배에 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인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어느 날 목사는 하나님이 이단이니 집회에 가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처음에는 은혜받으러 가라고 적극적으로 권하던 목사가 하루아침에 돌변하는 모습을 본 교인들은 크게 충격을 받고 실망했습니다. 마침 하나님께서 원효로에서 예배를 인도하신다는 소식을 들은 저와 몇몇 교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회를 떠나 원효로 구제단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원효로 구제단에 가보니 저처럼 하나님 집회에서 받은 은혜를 잊지 못해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교회 분위기가 무척 좋았고, 저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새벽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노량진에 사는 제가 원효로 구제단에 가려면 한강 다리를 건너가야 했는데, 이른 새벽 공기를 맞으며 친구와 함께 교회에 가는 길이 무척 즐겁고 설레었습니다. 저는 원효로 구제단에서 처음으로 안찰을 받게 되었는데, 주일학교 반사나 임원들에게 해주셨던 안찰로 기억합니다. 제 차례가 되어 안찰을 받는데 하나님의 손이 눈과 배에 살짝 닿기만 해도 심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안찰을 받을 때 고통스러운 이유는 내 속의 죄가 성신에 대항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직접 겪고 보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이만제단(서울중앙전도관)이 세워질 무렵, 하나님께서는 구역별로 심방을 다니시며 교인들의 집을 방문하셨는데,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이 수십 명이나 돼 무더기 심방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는 저희 집에도 하나님께서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하나님 뒤에 있는 사람들이 저를 부르며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집 안까지 들어가면 힘드실까 봐 저보고 빨리 밖으로 나와 안수를 받으라는 뜻이었습니다. 허겁지겁 밖으로 나가려는데 하나님께서 괜찮다고 하시며 현관 안까지 들어오셔서 두 손으로 제 머리에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저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당시 저희 어머니께서는 다 큰 딸이 집회에 다니고, 심방 다니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시며 교회 다니는 것을 심히 반대하셔서 집안에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그 사실이 매우 속상했던 저는 하나님이 오셨을 때 집 안으로 들어오셔서 축복해 주시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던 것입니다. 한데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하신 듯 하나님께서 현관 안까지 들어와 안수해 주셨으니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마치 모든 일을 다 아시고 어려움을 이겨나갈 힘을 주시는 것 같아 마음의 커다란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날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신기하고 감사했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1957년 말, 하나님께서 소사신앙촌을 건설하신다는 이야기에 저도 보탬이 되고 싶어 건설대에 지원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심한 반대에 부딪혔고, 건설대 이야기만 꺼내도 크게 혼이나 방에서 눈물 흘리며 기도드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간절히 기도를 드리다 보면 달콤한 물이 입에서부터 배 속까지 시원하게 흐르는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깊게 드리웠던 슬픔의 그림자가 걷히며 마음의 평안을 되찾을 수 있었고, 제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확신과 함께 다시금 부모님을 설득할 용기가 생겨났습니다. 결국 저의 확고한 의지를 존중해 주신 아버지께서 신앙촌 입주를 허락해 주셔서 저는 그토록 바라던 소사신앙촌 건설대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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