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과 걱정이 가득했던 삶이 하나님 뵌 후로 새 삶을 살게 돼

김옥자 권사/서울 장위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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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체험기 김옥자 권사

1968년 3월 제 나이 마흔한 살 때였습니다. 우연히 길 가던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다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분이 춘천에 오셔서 집회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집회하시면 병자들이 낫고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했는데, 저는 교회에 다니지 않아 박 장로님이나 부흥집회를 몰랐지만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구나 하며 재미나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시내 곳곳마다 집회 포스터가 붙었다며 저한테도 같이 가자 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하니 호기심이 생겨 따라가게 됐습니다.

집회가 열리는 춘천전도관은 산언덕에 있어 멀리서도 한눈에 보였습니다. 산언덕에 오르니 우렁차게 손뼉 치며 찬송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예배실에 사람이 가득 차 저희는 제일 뒷자리 신발 신는 곳에 겨우 앉았는데, 막상 예배에 참석하고 보니 손뼉 치는 것도 찬송하는 것도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 멀리 단상에 박태선 장로님께서 나오셔서 설교 말씀 하시는 동안에도 사람이 많아 그런지 음성이 잘 들리지 않았고 저는 얼른 집에 갈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자 아주머니가 “오늘 박 장로님께서 안찰해 주신대요.” 하며 꼭 받아 보라 했습니다. 이런 기회가 드물다며 자꾸 권하는 말에 긴가민가하다가 많은 사람이 안찰 받으려고 몰려드는 것을 보고 궁금한 마음에 저도 안찰 받는 줄에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눈에 손을 대시자마자
너무 아프더니 차차 통증이 사라지고
온몸이 시원하고 가벼워 나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져

차례가 되어 박 장로님께서 두 눈에 손을 대시자마자 얼마나 아픈지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세게 누르시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손을 얹으실 뿐인데 너무 아파 소리 치고 싶은 것을 겨우겨우 참았습니다. 그토록 아프던 통증이 차츰차츰 사라지더니 온몸이 시원해질 때 박 장로님께서 손을 떼셨습니다. 안찰을 받고 나오자 발이 땅에 닿는지 안 닿는지 모를 정도로 몸이 가벼워 훨훨 나는 것 같았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저는 안찰이 뭔지 잘 모르면서도 ‘이렇게 몸이 가볍고 좋으니 다들 받으려고 하나 보다.’ 하며 전도관을 더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두 달쯤 지나 서울 창신동으로 이사했을 때 마침 이웃집 아주머니들이 전도관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숭인동에 있는 3중앙 전도관에 같이 가자 하시기에 선뜻 따라나섰습니다. 몇 번 새벽예배에 참석해 보니 관장님 설교 말씀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유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이라 하시며 자유율법을 지켜서 행동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짓지 않아야 된다 하셨습니다. 저는 자유율법을 지키면 양심적이고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아 그 말씀대로 살고 싶었고, 내일은 무슨 말씀을 해 주실지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청계천으로 이사해서도 먼 길을 걸어 다니며 새벽예배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1971년 무렵, 하나님께서 일요일마다 서울에 있는 중앙전도관을 순회하시며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 가시는 중앙을 따라다니며 예배에 참석하는 교인이 많았습니다. 한번은 3중앙 전도관에서 예배를 마친 후 하나님을 따라 5중앙으로 갔습니다. 청량리에 있는 5중앙은 대로변의 큰 건물이었는데 예배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 도로까지 차고 넘쳐 조금만 늦어도 자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3중앙 교인들과 같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단상과 가까운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한참 찬송을 부를 때 소나기가 “쏴아~” 하며 머리 위에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장독을 열어 놨는데 어떡하지?’ 걱정하다 몸을 만져 보니 보송보송할 뿐 전혀 젖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빗방울이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느껴졌고 온몸이 말할 수 없이 시원한 것이었습니다. 또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하는데 예배 후 집으로 돌아올 때도 계속 맡아지며 나중에는 목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물이 꿀꺽꿀꺽 마셔졌습니다. 교인들에게 예배 시간에 소나기가 내리고 좋은 향기가 계속 진동한다 했더니 “은혜 많이 받으셨네요.” “참 기쁘고 좋지요?” 하고 한마디씩 건넸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빗줄기가 내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형용할 수 없이 좋은 향취를 맡게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한참 찬송을 부를 때 머리 위로 소나기가 쏟아져
몸을 만져보니 전혀 안 젖어
또 좋은 향기가 계속 맡아지며
목으로 시원하고 달콤한 물이 꿀꺽꿀꺽 마셔져
하나님 은혜는 빗줄기처럼 느꺄지기도 하고
향취로 맡아진다는 것을 그때 알아

그 후 3중앙에서 예배드릴 때였습니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편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하는 찬송을 부르며 괴로운 인생길이란 가사가 마음에 들어와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남편의 사업 실패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전북 김제가 고향이었지만 먹고살 길을 찾아 춘천으로 서울 판잣집으로 떠돌아다니며 마음이 늘 괴로웠습니다. 세상 어디도 편히 쉴 곳 없는 처지가 찬송가 가사 그대로였습니다. 찬송을 부르면 부를수록 눈물이 쏟아져 어깨까지 들썩거렸는데 남 보기가 창피스러워 그치려고 해도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머리 위에서 “쏴아~” 하며 소나기가 쏟아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아! 은혜 주시는구나!’ 하며 흐르는 눈물을 더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예배 시간 내내 울다가 누가 볼까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에 앉아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본향 하늘나라’ 찬송을 생각하는데 아주 좋은 향취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더니 금세 방 안을 가득 채운 것처럼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또 은혜 주신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해서 그 자리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한참 울고 나니 그동안 겪은 설움이 눈물에 다 녹아 나온 것처럼 마음이 그렇게 가볍고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힘든 살림은 마찬가지였지만 고생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살이가 고달파도 제단에 가면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평안해지니 하루하루를 기쁘고 감사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3중앙 권사님 두 분과 함께 전도관에 갈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두 분은 병원에서 고치지 못했던 병이 하나님께 안찰 받고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소화가 안 되는데…….’ 하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저는 속상한 일을 많이 겪으면서 위장이 점점 나빠져 제대로 먹지를 못했습니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 보니 위가 너무 약해진 상태라며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지 말아야 될 음식을 작은 책자로 만들어 줬습니다. 책자에는 대부분 먹지 말아야 될 음식이었고 먹어도 되는 음식은 손에 꼽을 만큼 몇 가지가 안 되어 끼니 때마다 미음을 쑤어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소화가 안 돼?”하며
안수해 주신 후로는 언제 위장이
아팠던가 싶게 속이 너무나 편안하고
아무런 문제 없이 소화가 잘돼

그 후 축복일이 되어 기장신앙촌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안수해 주셔서 줄을 서서 한 명씩 안수를 받았습니다. 제 차례가 됐을 때 하나님께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왜? 소화가 안 돼?” 하고 말씀하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마치 제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답을 해 주시는 것 같은 음성이셨습니다. “네” 하고 대답하자 머리에 손을 얹으시며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날 축복일 예배를 드리고 집에 돌아오니 몹시 허기져서 보이는 대로 밥과 반찬을 꺼내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안수를 받은 뒤부터 언제 위장이 아팠던가 싶게 속이 너무나 편안한 것이었습니다. 전날만 해도 미음조차 겨우 삭였던 제가 찬밥에 김치와 야채를 먹어도 아무 문제 없이 소화가 잘됐고 그때부터 병원과 약을 모르고 지냈습니다. 지금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제 생각을 곁에서 들으신 것처럼 말씀해 주시던 음성이 떠오르곤 합니다. 건강을 되찾게 해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돌아가신 분을 생명물로 씻기고 나니
차갑고 뻣뻣했던 몸이 부드러워지고
푸르스름했던 피부도 맑고 환하게 피어
주무시는 듯 편안하고 깨끗한 모습 돼

저는 전도관에 다닌 후로 입관예배에 참석하며 돌아가신 분이 아름답게 피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됐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분은 2005년에 돌아가신 김보예 권사님이십니다. 보통 입관예배 때면 교인들이 찬송을 부르고 장례반 권사님이 고인을 생명물로 씻겨 드렸는데, 그때는 장례반이 없어 교인들 여러 명이 같이 씻겨 드렸습니다. 저는 그때 돌아가신 분을 처음으로 씻기게 됐습니다. 며칠 동안 영안실에 있었던 고인은 몹시 차갑고 뻣뻣하게 굳어 있었고 피부도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굳은 몸을 여러 명이 힘들게 움직이며 씻기기 시작했는데 생명물로 씻길수록 부드러워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고, 다 씻기고 나자 팔이며 다리가 자유자재로 움직여졌습니다. 푸르스름한 빛을 띠던 피부도 어느새 순색으로 맑고 환하게 피고 발그스름한 혈색이 감도는 입술은 살짝 미소를 짓고 계셨습니다. 온화하게 미소지으시던 생전의 모습보다 더 곱고 예뻐서 저도 따라 미소를 짓게 됐습니다. 주무시는 듯 편안하고 깨끗한 얼굴을 보며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길을 따라온 세월이 어느새 50년이 흘러 저는 구순이 넘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고생하며 살다가 하나님을 뵙고 새 삶을 살게 됐습니다. ‘하나님 내가 알기 전 날 먼저 사랑했네. 그 크신 사랑 나타나 내 영혼 거듭났네.’ 하는 찬송이 그대로 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 귀한 은혜로 함께해 주시는 사랑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앞으로 남은 시간 헛되이 보내지 않고 가르쳐 주신 대로 맑고 바르게 살 것을 다짐해 봅니다. 허락해 주시는 은혜 늘 간직하며 그날에 기쁨으로 하나님을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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