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

김병화 권사/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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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화 권사

김병화 권사

항상 눈물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농사에 지친 몸으로 시부모님 저녁상까지 치우고 나면 저는 사랑채에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열여덟 살에 충북 보은으로 시집가서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지냈습니다. 내 손으로 물 한 그릇 떠 본 일 없이 컸는데 시집에서 밀어닥치는 농사일과 집안일이 버거웠고 호랑이 시어머니가 그렇게 무서울 수 없었습니다. 울다 지쳐서 잠들었다가 새벽밥을 지으러 나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 후 시댁에서 분가하고 농사일에서 벗어나면서 살기가 수월해졌지만 어쩐 일인지 마음은 편안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1974년, 제 나이 서른여덟 살 무렵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했을 때였습니다.

“거기는 찬송이 들리는 집이에요.”

소사리 큰길 가에 있는 집으로 이사했더니 동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사리전도관이라는 곳이 바로 위에 있어서 새벽마다 부르는 찬송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린다고 했습니다. 과연 새벽부터 찬송이 들리는데 왠지 듣기 좋았습니다. 그 전도관에 가게 된 것은 매일 집에 들르시던 전도관 권사님 때문이었습니다.

함대덕 권사님은 신앙촌 메리야스와 속치마를 판매하셨는데 시중에 파는 물건보다 훨씬 좋아서 애용하게 됐습니다. 신앙촌 간장도 맛있어서 제가 이웃들한테 다니며 대신 팔아 드리니 자연히 권사님이 저희 집에 자주 오셨습니다. 권사님이 전도관에 같이 가 보자 하셔도 “저는 신앙촌 물건만 팔아 드릴게요. 전도는 하지 마세요.” 하며 가지 않았는데, 일요일 아침 일찍 찾아오셨을 때 거절을 못 하고 따라나선 것이 전도관에 나간 계기였습니다. 가 보니 동네 사람들이 예배실 가득히 모여 있었고, 다들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 좋아서 새벽예배와 수요일예배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다섯 살짜리 작은아들을 데리고 수요일예배에 갔을 때였습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아…” 하는 찬송을 부르는데 처음 듣는 찬송가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서 한참 울고 나니 입고 있던 치마 한 폭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십수 년이 지나고 다 큰 아들이 “그때 엄마 치맛자락이 흥건하도록 우셨어요.” 하고 기억하는 걸 보면 많이 울기는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울고 나니 그동안 슬프고 괴로웠던 일들이 눈물에 씻겨 간 것처럼 속이 후련하고 편안해졌습니다. 그때까지 교인들 권유로 예배실에 앉아 있다 오는 정도였지만 그 후로 누가 뭐라지 않아도 예배에 안 빠지게 됐습니다. 교인들은 그런 저를 보고 은혜 받았다고 했는데 저는 그게 정말 은혜일까 궁금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확실하게 은혜를 체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신앙촌 센타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강하게 진동해
화장품 냄새와는 완전히 다르고
계속 맡고 싶고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

서울 동대문에 있는 신앙촌 센타에 갖가지 신앙촌 제품이 진열돼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함대덕 권사님을 도와 신앙촌 제품을 조금씩 판매하던 저는 센타에 처음 가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향기로운 냄새가 강하게 진동해서 물건 사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왔다 갔다 하며 향기를 맡았는데, 건물 어딜 가나 좋은 향기가 맡아졌습니다. 신앙촌 물건을 사러 온 분들이 예쁜 원피스에 화장을 곱게 하고 있기에 화장품 냄새인가 했지만, 그분들 곁을 지나가 보니 그 향기는 화장품 냄새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무리 맡아도 더 맡고 싶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향기였습니다. 그런데 한참 만에 물건을 구매해서 밖으로 나왔는데도 그 향기가 따라오는 것처럼 계속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교인들이 이야기하던 ‘향취 은혜’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세상에 없는 좋은 향기를 맡게 되는데 그것이 향취 은혜라고 했습니다. 제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전농동전도관 예배 때

멀리 계신 하나님 얼굴이
크게 보이고 눈 마주치는 느낌 들어
그 순간 커다란 불덩어리가 가슴에 꽂히는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왈칵 나
온몸을 태우는 것처럼 뜨거운 불이 사라지더니
말할 수 없이 시원하고 가벼워져

갑자기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다가 서울 오류동 병원에 갔더니 복막염이라고 했습니다. 그날로 입원하고 치료를 받는데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전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고 하던 이야기가 떠올라 저는 생명물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께 연락을 드렸더니 하필 그때 소사리전도관에 생명물이 없어 몹시 안타까웠는데 대신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신앙촌 간장이 있어서 딸아이가 받아 왔습니다. 깨끗한 그릇에 물을 가득 담고 거기에 축복받은 간장을 타서 먹었습니다. 한 그릇을 다 먹고 나니 옆구리가 터지는 것처럼 아프던 통증이 차츰차츰 물러가는 것이었습니다. 간호사들도 저를 보고 방금 전까지 허리를 못 펴고 아파 하더니 이제 괜찮으시냐며 놀라워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때 간호사가 하는 말이, 처음 왔을 때는 상태가 심각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빨리 낫게 될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퇴원하고 그 주 일요일에 서울 전농동전도관으로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예배를 인도해 주시는 날이었는데 늦게 도착하니 3층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서 제일 뒷자리에 간신히 앉았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시작되어 단상을 올려다 봤을 때 하나님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예배실이 워낙 넓고 단상이 3층에 있어서 저 멀리 계신데도 그 순간 하나님 얼굴이 크게 보이며 눈이 딱 마주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커다란 불덩어리가 가슴에 꽂히는 것처럼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활활 타는 불이 온몸을 태우는 것처럼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고 한참 지나자 그 불이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온몸이 말할 수 없이 시원해졌습니다. 예배 마친 후 집에 올 때는 몸이 땅에 닿는지 안 닿는지 모를 정도로 가벼웠습니다. 언제 복막염을 앓아서 그렇게 아팠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40대였던 저는 몹시 약해서 몸져눕는 일이 많았습니다. 밥을 잘 못 먹고 약도 잘 넘어가지 않아서 늘 골골하며 지냈습니다. 오죽하면 살림을 맡아 하던 큰딸이 엄마가 안 아픈 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복막염이 깨끗이 나은 뒤로 병원과 약을 모르고 살 정도로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주신 축복이라 생각하며 늘 감사드립니다.

저는 건강해진 몸으로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어딜 가나 믿어 주고 반겨 주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즐거웠고, 은혜를 받고 보니 더욱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로 이사 온 후에도 소비조합을 계속했는데 보름에 한 번씩 소비조합 축복일이 있어 기장신앙촌에 내려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던 1985년 무렵이었습니다.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두 손을
눈 위에 얹으시자 그리 아플 수 없어
손 떼시자 눈부터 가슴까지 시원해져
마음은 기쁘고 즐거워 연신 웃음이 나

그날은 눈안찰을 해 주시는 날로 안찰 받기 전 예배실에서 찬송을 부를 때였습니다. 눈을 감고 찬송하다가 갑자기 향기롭고 좋은 냄새가 머리 위에서 쏟아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져서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주변을 둘러봐도 모두 찬송에 열중하는 사람들뿐이고 그렇게 향기가 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고 저는 ‘은혜 주시는구나!’ 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찬송이 끝나고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한 명씩 안찰을 받았는데 너무 떨려서 계속 순서를 양보하다가 제일 끝으로 가게 됐습니다. 안찰 받으면 내가 죄지은 만큼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긴장되고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씻어 주시는 기회이니 꼭 안찰을 받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제 차례가 됐을 때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손을 눈 위에 살짝 얹으시자 깊이 후벼 파는 것처럼 그리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소리 치고 싶은 것을 겨우겨우 참고 났더니 하나님께서 손을 떼셨는데 그 순간 통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부터 머리, 가슴까지 시원해졌습니다. 마음은 또 왜 그리 기쁘고 즐거운지 서울 집에 돌아와서도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죄가 씻어지면 이렇게 좋구나!’ 싶었습니다. 그 전에도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지만 직접 안찰을 받고 보니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소비조합을 계속하던 저는 1998년 기장신앙촌에 입주하게 됐습니다. 휴게실에서 일하며 신앙촌 사람들과 축복일에 찾아오는 교인들을 위해 맛있는 간식 거리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휴게실에 찾아오던 아이들이 20년이 지나 어엿한 신앙촌 사원이 된 것을 볼 때면 마음이 흐뭇합니다.

하나님을 뵙고 지금까지 따라온 시간을 돌아보니 그 고마움을 무슨 말로 다 표현할까 싶습니다. 눈물짓던 슬픈 마음을 다 씻어 주셔서 기쁘고 감사하게 살아왔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고맙고 감사함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바르게 갈 수 있을까 하는 그 생각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맑고 깨끗하게 살아서 그 영광된 날에 기쁨으로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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