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선 장로님이 바로 동방의 한 사람이자 감람나무

권기남 권사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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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집회 첫날 박 장로님께서 설교 말씀을 하실 때 단상을 보고 있던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단상에서부터 안개가 뭉게뭉게 퍼져 나오더니 앉아 있는 사람들을 뽀얗게 덮는 것을 보고 ‘어머! 저게 뭘까?’ 하며 무척 신기했습니다. 제 옆에 앉은 사람이 “웬일이지? 안개가 내려요.”라고 이야기하자 어떤 분이 ‘저것은 안개가 아니라 이슬 같은 은혜’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뽀얗게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것을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하시며 지금 은혜가 강하게 쏟아진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며 제가 본 것이 이슬 같은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느덧 3일이 지나 집회가 끝나는 날, 박 장로님께서는 앞으로 새벽예배에 빠지지 말라고 하시며 지킬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손을 번쩍 들며 꼭 지키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에는 부임해 오신 전도사님을 모시고 안기동에 전도관을 짓기 시작했고, 임시로 기도처를 마련해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설교 말씀을 하실 때
단상에서부터 안개가 뽀얗게 퍼져 나와
그때 박 장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강하게 쏟아지는 은혜 보는 사람 있다고

임시 기도처에 어른들부터 20대 청년들까지 모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전도사님은 매일 저녁 성경 공부 시간에 이사야서의 ‘동방의 한 사람’과 호세아서의 ‘감람나무’에 대한 구절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동방의 한 사람이 나타나는 ‘동방의 땅끝, 땅 모퉁이, 해 돋는 곳’은 한국이라는 것과 북방에서 한 사람이 이남으로 내려와서 역사를 이루는 것까지 뚜렷하게 성경에 기록돼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감람나무’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존재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박태선 장로님이 바로 동방의 한 사람이자 감람나무이신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경 공부 시간에 배운 것을 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리 교회에 오래 다니며 믿었다고 해도 이슬 같은 은혜를 받지 못하면 죄를 씻지 못하고, 죄를 씻지 못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감람나무가 계시는 전도관에 나오면 은혜를 받을 수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제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장로교회에 계속 다니셨는데, 저는 틈날 때마다 제가 은혜 받은 이야기며 성경 구절을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께 틈날 때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해 드리던 어느 날, 전도관 가자는 말에
말없이 따라 오셔서 예배를 드리신 후 `그렇지, 믿기만 하면 어떻게 구원을 얻나.
성신을 받아야지` 하시며 10년 넘게 다녔던 장로교회 발길 끊고 전도관 교인 되셔

그 후 어느 일요일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오늘은 장로교회 가지 마시고 저랑 전도관에 가요.”라고 했더니 어머니는 말없이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저를 따라 전도관으로 가셨습니다. 전도관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시더니 “그렇지, 믿기만 하면 어떻게 구원을 얻나. 성신을 받아야지.”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10년 넘게 다녔던 장로교회에 발길을 끊고 안동전도관 교인이 되었습니다. 성격이 활달하셨던 어머니는 목청도 좋고 노래를 즐겨 하셨는데 전도관에 다니면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에 밥을 할 때나 빨래를 할 때나 항상 찬송을 부르셨습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안동전도관에 오셨을 때 교인들에게 안찰을 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 안찰을 받았는데 앞에서 안찰받는 사람들을 보니, 고래고래 고함을 치거나 사지를 버둥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아무런 소리 없이 가만히 받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배 위에 살짝 손을 얹기만 하시는데도 저는 창자가 뒤틀리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집이 세구만.” 하고 말씀하셔서 저는 속으로 ‘제 속의 죄를 다 씻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몹시 아팠지만 고함을 치거나 버둥거리지 않으려고 아픈 것을 꾹 참았습니다. 통증이 차츰 물러가고 시원함을 느낄 때 하나님께서 “이제 됐다.” 하시며 손을 떼셨습니다. 저는 안찰을 받고 나오며 고집이 세다고 하시던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안찰 받고 나오는데 `고집이 세다`고
하시던 하나님 말씀이 마음에 남아
안찰을 받은 후 고집불통이던 성품이
부드럽고 온순해지는 것을 느껴

대쪽 같은 아버지 성품을 닮은 저는 고집이 무척 세어서 제 의견만 내세우는 일이 많았고 한번 고집을 피우면 아무도 못 꺾는 고집불통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찰을 받은 후로는 제 생각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 의견에 순순히 따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마음이 솜뭉치 같다고 해야 할지 참 부드럽고 온순해지는 것을 저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듬해 대구로 시집을 갔더니 시댁은 시부모님부터 일가친척이 전부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대구에서 전도관을 찾지 못해 안타까웠던 저는 시댁 식구들이 교회에 가고 나면 혼자 방에서 기도하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루는 신천동에 전도관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찾아갔더니 아직 건물 뼈대만 세워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제단 옆에 지어 놓은 사택에서 “날빛보다 더 밝은 천국~” 하는 찬송 소리가 들리는데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소리에 ‘우리 전도관 식구들이구나!’ 하며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곳에 가니 새 식구가 왔다며 모두들 반겨 주었고 그때부터 저는 대구제단에 다니게 됐습니다.

전도관에 대해 사람마다 다르게 말하니
직접 알아보고 싶어 전도관에 나오게 된
친정 옆집 아가씨는 설교 말씀도 듣고
성신을 직접 체험하면서 온 가족 전도해

하루는 안동 친정집에 다니러 갔더니 옆집에 사는 아가씨가 안동전도관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아가씨네 식구들은 원래 태화 장로교회에 열심히 다녔는데 이제는 모두 전도관에 나온다고 해서 어찌 된 일인지 물어봤습니다. 옆집 아가씨는 저희 어머니가 즐겁게 찬송하는 소리를 듣고 어쩌면 그리 찬송을 잘 부르시냐고 여쭤 봤는데, 전도관에 다니면 기쁨이 넘쳐서 절로 찬송이 나온다고 하여 전도관에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아가씨는 태화교회 목사가 ‘전도관은 이단’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어떤 사람은 이단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좋다고 하니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전도관에 가서 설교 말씀을 들어 보니 성신을 받지 못하면 구원을 못 얻는다는 말씀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고, 본인이 성신을 직접 체험하게 되면서 온 가족을 전도했다고 했습니다. 몇 년 후 그 아가씨는 전도사로 발령을 받았으며 지금도 교역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권기남 권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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