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하시는 생명의 은혜 속에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박인화 권사(3) / 덕소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03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당시 일곱 살이던 제 아들 금석이는 귓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습니다. 다섯 살 때 홍역을 하며 열이 많이 오른 뒤로 귀에서 자주 고름이 나왔는데, 처음에는 동네 병원에 가서 주사를 한 대 맞으면 괜찮아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주사를 많이 맞아야 고름이 멈추었습니다. 감기라도 걸려서 열이 오르게 되면 어김없이 귀에서 고름이 흘러나왔으며 나중에는 주사를 맞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또한 물처럼 묽었던 고름이 점점 누런빛을 띠더니 급기야는 자고 일어나면 베개를 흥건히 적실 정도로 시퍼런 고름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다녀도 전혀 차도가 없는 데다가 날이 갈수록 귓병이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저는 ‘생명물을 발라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는 축복 솜을 생명물로 흠뻑 적신 후에 아이의 귓구멍에 끼워 주었는데, 그 모습을 본 제 남동생은 “누님, 수영하다 귀에 물이 조금 들어가도 귀가 잘못될 수 있는데 그렇게 물을 귀에 넣어 주면 어떡합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축복 솜을 끼워 준 뒤로 아들아이는 귀가 괜찮아지는지 축복 솜과 생명물이 담긴 병을 들고 와서는 귀에다 끼워 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생명물을 적신 축복 솜을 며칠 동안 계속 끼워 주었더니 놀랍게도 고름이 완전히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2년 동안이나 낫지 않고 계속 악화되었던 귓병이 그때 생명물과 축복 솜으로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홍역을 앓은 후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져
생명물 묻힌 솜 넣었더니 고름이 줄고 2년간 악화만 되던 것이 깨끗이 나아

1958년 6월 25일 저는 아들과 함께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아버님은 “이북에서 내려와 기댈 사람이라고는 부모와 동생밖에 없는데 그 타향에서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라며 걱정을 하셨고, 자식밖에 모르는 어머니도 말할 수 없이 서운해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전도관에 다니면서 병이 낫고 기쁘게 생활하는 것을 계속 지켜보셨던 부모님은 ‘신앙인의 마을에서 살고 싶다.’라는 제 마음을 이해하시고 입주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제가 소사신앙촌에 입주하고 며칠 뒤에 소사신앙촌 노구산에서 대집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노구산 정상에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 속에서 한참 찬송을 부를 때 저는 단상 쪽이 뽀얀 안개로 뒤덮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집회 기간 동안에 소나기가 자주 내렸지만 그날은 해가 쨍쨍한 날씨여서 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웬 안개일까?’ 하고 의아했습니다. 그러다 예전에 하나님의 성신이 이슬과 같이 뽀얗게 내린다고 하셨던 말씀이 떠오르며 ‘아! 저것이 바로 이슬 같은 은혜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은혜 속에서 힘차게 찬송을 부를 때 마음속에 차오르던 기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소사신앙촌 노구산에서 열린 대집회에 산 정상은 인산인해를 이뤄
해가 쨍쨍한데 단상 쪽이 뽀얀 안개로 덮이길래 ‘웬 안개일까’ 놀라
하나님의 성신이 이슬과 같이 뽀얗게 내린다는 말씀이 떠올라
‘아, 저것이 바로 이슬 같은 은혜구나!’하고 마음 속에서 기쁨이 차올라

저는 소사신앙촌 편물 공장에서 근무하다가 1960년 무렵에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2년 덕소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아들과 함께 1차로 입주를 했습니다. 저희 가족이 입주하고 얼마 후, 3아파트 1층에 사시던 권사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입관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생전에 복막염을 앓았던 고인은 배가 불룩한 모습이었고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가득히 모여 찬송을 부를 때는 박자와 음이 잘 맞지 않아서 힘들게 찬송을 했습니다. 방 안에서 찬송을 부르던 저는 냄새와 답답함을 견디기가 힘들어 밖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방과 부엌에 사람들이 가득 차서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후 찬송의 박자와 음이 맞아져서 모두들 한 목소리로 힘차게 찬송을 부르게 되면서 어느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말할 수 없이 상쾌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견디기 힘들었던 냄새와 답답함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찬송을 부르면 부를수록 힘이 나서 목청껏 찬송을 불렀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 시신은 얼굴이 곱게 피어나고 불룩하던 배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 꺼져서 예쁘고 편안한 모습으로 입관을 했습니다.

덕소신앙촌에 입주한 뒤에도 저는 계속 소비조합으로 활동하며 서울 지역에서 방문 판매를 했습니다. 주로 신앙촌 메리야스와 간장을 판매했는데 워낙 수줍음이 많았던 저는 처음 만나는 고객에게 제품 설명을 하는 것이 몹시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고객들이 먼저 신앙촌 제품을 알아보고 “아, 신앙촌 간장 맛있지!” “신앙촌 메리야스 너무 좋아요!” 하며 제품을 가져다 달라고 주문을 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촌 제품을 믿고 찾는 분들을 만나면서 저는 조금씩 판매를 익힐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는 신앙촌 제품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고객들과 40년 넘게 왕래하면서 친척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만날 때면 친구를 대하듯 저를 반가워하는 그분들을 보며 참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시체안치실에서 꺼낸 시신은 한눈에 봐도 뻣뻣하게 굳어있는데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며 예배 드리자 온몸이 유연하게 움직이며 뽀얗게 피어

작년 12월에는 덕소신앙촌의 진영순 집사님이 노환으로 숨을 거두셔서 입관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양대학교 구리병원에서 운명하셔서 시신이 시체 안치실에 있었는데 처음에 시신을 꺼내 왔을 때는 한눈에 보기에도 뻣뻣하게 굳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장신앙촌에서 떠 온 생명물로 깨끗이 씻기며 입관예배를 드리고 나자 온몸이 너무나 유연하여 나긋나긋하게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생전에도 곱고 단정한 분이었지만 생명물로 씻긴 후에는 90세가 넘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만큼 뽀얗고 환하게 피어났으며 그 모습을 본 교인들도 너무나 잘 피셨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요즘 제단에 모이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그렇게 대견하고 예쁠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하나님께서 귀한 은혜로 이끌어 주시고 키워 주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낙원에 계신 지금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 제 일생 동안 허락해 주신 생명의 은혜 속에서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며 이 길을 따라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죄를 멀리하는 맑은 생활로 하루하루 의로워져서 그날에 하나님 빛 앞에 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