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은혜 받고 신앙촌 자녀들의 교육 수장이 되기까지 (시온고 석세조 교장)

시온교 50년 나의 보람과 눈물- 석세조 교장의 교육일기
발행일 발행호수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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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시온고 초기 건물 모습과 교장실에서 51년 시온고 역사를 이야기하는 석세조 교장

소사신앙촌에 세워진 시온고등학교가 올해로 개교 51주년을 맞이했다.
개교 초기부터 지금까지 시온고등학교에 몸담고 있는 석세조(石世助.79) 교장을 만나 교육 반세기에 담긴 애환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석세조 교장은 시온고등학교 개교이래 51년간을 시온학원과 함께 해 온 산 증인이자 41년간을 교장으로 봉직해 ‘대한민국 최장수 교장’의 기록을 갖고 있다.

-그간 많이 마르셨네요.
“몇 달 심하게 앓고 먹질 못해 10키로가 빠졌는데 요즘 밥을 좀 먹어서 5키로 정도 다시 쪘어요.”
많이 여위었어도 노 교장 선생의 음성에는 여전히 힘이 있었다.

-시온고등학교가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요?
“1957년 11월에 하나님께서 소사신앙촌 건설을 시작하셨어요. 그러자 받은 은혜가 있는 사람들은 은혜의 땅 신앙촌으로 물밀듯이 이사를 해왔는데 주택과 공장을 먼저 건설하신 후 당장 학교가 없으니까 입주자 자녀들이 신앙촌 밖으로 나가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간혹 못된 아이들이 우리 학생들을 신앙촌 아이들이라고, 전도관 다닌다고 괄시 하고 핍박을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키워야 한다고 하시며 학교 건립을 추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1958년 4월에 옹진학원을 인수하여 시온고등학교를 개교 했습니다. 그 때 인수위원 다섯 사람 중에 제가 한 사람이었지요.
하나님께서는 학생들을 사랑하시고 2세들의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셨는데 특히 부모 세대는 자기들이 받은 은혜가 있으니까 그렇다지만 어린 학생들이 나가서 안 믿는 아이들 틈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몹시 안타깝게 생각을 하셨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개교때부터 지금까지 시온고에 계시는 거네요.
“개교하면서부터 평교사, 학생과장, 교무부장, 교감 등으로 근무하다가 1968년 3월 27일에 교장으로 임명을 받은 이래 지금까지입니다. 근무 51년 교장 41년인 셈이지요. 하나님께서 시켜서 시작했으니 앞으로도 힘이 자라는 데까지는 학교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만나 뵙게 되었고, 믿게 되셨나요?
“먼저 여동생이 믿었는데 나는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직접 알아보려고 원효로 구 제단을 찾았습니다.
동생들이 ‘박 장로님은 한 번만 쓱 보시면 죄 지은 것을 다 아신다’고 하던 말이 생각나서, 같이 간 하사관을 앞에 앉히고 그 뒤에 숨듯이 앉았습니다. 또 ‘단상에서 불이 나오고 향취가 난다’고 하던 동생들 말이 생각 나 무슨 전기 장치 같은 것을 해놓은 것은 없나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장치는 아무 것도 없었고 하나님께서는 광주집회 때 기성교인들이 깡패를 동원해 집회를 방해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속으로 ‘그것 참 고약하다. 전라도 가서 손 좀 봐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예배 중에 세 번을 그렇게 쳐다보시는 것이었어요. 첫날 예배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 후 어떤 은혜 체험을 하셨나요?
“동생들에게서 안찰을 받으면 그 사람의 죄가 다 드러난다는 말을 들어서 안찰 받으면서 죄를 지적 받고 망신 당할 일 있나 싶어서 안찰을 한 번도 받지 않았는데 하루는 꿈에 제가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안찰을 받고 몸이 시원하며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눈을 뜨니 새벽 1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너무나 기쁜 가운데 나도 모르게 입에서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하는 찬송이 나오는데 그 찬송을 억제하기가 힘들 정도로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하나님께서 ‘그제 1시부터 2시 사이에 꿈에 안수나 안찰 받은 사람 손 들어 보세요’ 하시기에 놀라 번쩍 손을 들고 보니 수십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에 안찰 받은 사람은 의심이 많은 사람,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을 위해 해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품고 있던 의심이 사라졌고 하나님을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셔서 살고 있다는 증거를 하셨는데요.
“1963년 12월에 장결핵과 폐결핵이 급성으로 왔는데 입맛이 없어 먹질 못하고 두 달 가니까 제가 다 죽어가고 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의사이신 작은 아버지는 젊은 녀석이 병에 걸렸는데 병원에는 가지 않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미련한 인간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만 욕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소리가 들려서 세배도 드릴 겸 동생의 부축을 받고 작은 댁에 갔습니다.
그동안 먹지 못해 피골이 상접한 저를 보신 작은 아버지는 권위자이신 김희석 박사님께 저를 데리고 가서 X-ray 사진을 찍게 하셨습니다. 그날 작은 아버지는 ‘이놈이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기적이고 앞으로 살아도 1주일 살면 많이 사는 것이고 만약에 죽지 않는다면 그것은 박태선 장로님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이다. 의학으로는 안 된다’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몸이 이 지경이 되자 다른 선생님을 채용하셔서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하나님께 편지를 올렸습니다. 편지를 드린 다음다음날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네 생명은 내 손에 있으니 염려 하지 말라. 내가 부를 때까지 기다리라’는 전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전해 듣고 나서 음식을 조금씩 먹기 시작해 살아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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