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은혜를 알게 되면서 천국에 가고 싶다는 소망 생겨

추화엽/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554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추화엽 권사

추화엽/기장신앙촌

저는 스물여섯 살이던 1958년 전도관에 처음 나갔습니다. 전도관에 열심히 다니시던 어머니가 권유하셔서 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에 있는 자그마한 제단에 따라갔습니다. 전도관은 새벽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도 전도관에 가면 왠지 모르게 기쁘고 즐거워서 다음 예배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고 새벽 일찍부터 제단으로 달려갔습니다. 교인 분들은 예배 시간에 은혜 받은 이야기를 자주 하셨는데 저는 은혜가 뭔지 몰라도 마냥 좋기만 했습니다.

전도관을 세우신 박태선 장로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은혜 주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 가서 은혜가 안개처럼 뽀얗게 내리는 것을 봤다는 분도 있었고 향취 은혜가 진동하는 것을 직접 맡았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 향취는 하늘나라의 향기라고 하셔서 ‘향취 은혜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또 박태선 장로님께서 세우신 소사신앙촌에서 많은 교인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는데 열심이던 어른들은 항상 은혜 내리는 신앙촌을 그리워하며 거기서 살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분들이 속속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시는 것을 보면서 저도 신앙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1959년 전도사님의 추천을 받아 신앙촌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입주했을 당시는 박 장로님께서 옥고를 치르시며 영어에 계실 때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전도관과 신앙촌으로 몰려오자 일부 정치인들과 종교계가 위기의식을 느끼고 말도 되지 않는 죄목을 만들어 억울하게 옥고를 치르시게 했던 것이었습니다. 1960년 3월 26일 영어에서 돌아오시던 날 저는 박 장로님을 처음 뵈었습니다. 그날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하나님께서 설교 말씀을 하시는데
손끝에서 안개같은 것이 퍼져 나가
뽀얀 것이 뿜어져 나오더니
나중에는 예배실이 온통 안개로 뒤덮인 것 같아

만 명이 넘는 신앙촌 주민들과 전국에서 모여온 교인들이 소사신앙촌 정문에서부터 길게 줄을 서서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연세 높은 어르신부터 전도사님들, 교복 입은 학생들까지 수많은 교인이 이제나 오실까 저제나 오실까 하며 정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오셨을 때 그 기쁨과 환호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곧장 노구산 오만제단으로 가시는 하나님 뒤를 따라 다들 예배실 앞자리에 앉으려고 달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상에서 왔다 갔다 하시며 설교 말씀을 하셨는데, 이쪽에서 손을 뻗으시면 손끝에서 뽀얀 안개같이 것이 착착 퍼져 나가고, 저쪽에서 손을 뻗으시면 또 뽀얀 것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손짓하시는 대로 뽀얀 것이 뿜어져 나오니 나중에는 그 넓은 예배실이 온통 안개로 뒤덮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은혜가 뽀얗게 내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찬송을 인도하셔서 따라 부를 때는 왜 그리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랐습니다.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하는 찬송이 너무 좋아서 자꾸 부르고 싶었는데, 찬송을 마치고 설교 말씀을 하시자 ‘찬송을 더 하셨으면…’ 하며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찬송의 맛을 알면 아무리 불러도 또 부르고 싶어진다.” 하셔서 그 말씀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며 “찬송의 맛을 알면
계속 부르고 싶어진다”는 말씀 실감해
말씀을 듣고 찬송을 하면 할수록
정신은 맑아지고 눈은 초롱초롱해져

말씀을 듣고 찬송하며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정신이 더욱 맑아지고 눈은 초롱초롱해지기만 했습니다. 예배가 끝나 밖을 나와 보니 저녁과 밤이 지나 아침이 밝아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집회에 가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시던 어른 분들 이야기가 떠올라 ‘그게 이런 거구나!’ 하며 무릎을 쳤습니다. 그때 나도 은혜 받았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은혜를 더욱 확실히 체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소사신앙촌 오만제단 예배 광경(1960년)

하나님께서 인천전도관 집회를 다녀오신 날이었습니다. 저녁 무렵 돌아오신 하나님께서는 오만제단 앞에서 사람들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안수를 받는 순간 아주 향기롭고 좋은 향기가 코에 쏟아붓는 것처럼 진하게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향기가 점점 더 강하게 진동하면서 노구산 전체를 뒤덮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나님 주시는 향취 은혜구나!’ 그동안 은혜의 창파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정말 이것이 은혜의 창파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귀한 은혜를 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감격스러워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참을 울면서 ‘하늘나라는 이런 향취가 가득하겠지요. 저도 그 세계 꼭 가고 싶습니다.’ 하고 기도드렸습니다. 처음 전도관에 나갈 때는 은혜가 무엇인지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지만, 차츰 은혜를 알게 되면서 천국에 꼭 가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났습니다.

오만제단 앞에서 하나님 안수를 받는 순간
아주 좋은 향기가 진하게 맡아져
코에 쏟아붓는 듯한 향기는 점점 강하게
진동하면서 노구산 전체를 뒤덮는 것 같아
귀한 은혜 주시는 것이 감격스러워 눈물이 나오고
이것이 은혜의 창파구나 깨달아

그때부터 은혜 받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1967년 덕소신앙촌에 입주해서는 수예부에서 일하게 됐는데 하나님께서 공장에 자주 오셔서 안수해 주시고 은혜를 주시니 일하는 것이 그렇게 신나고 재미날 수가 없었습니다. 수예부에서 만든 이불이 큰 인기를 끌어서 시간을 다퉈 가며 일하면서도 피곤한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는 마냥 즐겁기만 했는데 지금 와서는 하나님의 모습이 많이 떠오릅니다. 한 명 한 명에게 안수하시며 인자하게 웃으시던 모습, 전국으로 순회 집회를 다니시는 중에도 공장에 오셔서 축복하시던 모습, 매일 기장신앙촌 건설을 지휘하시면서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덕소신앙촌에서 새벽예배를 인도하시던 모습…….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구원을 주시기 위해 한없이 애쓰시고 희생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찬송 부르며 신앙촌에서 떠온 물로
아버지를 씻겨 드리니 검었던 피부가
뽀얗게 피어 그렇게 곱고 예쁠 수 없어
동생들도 아버지 모습 보고 놀라워 해

1985년 무렵 아버지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그동안 장례예배를 드리면서 고인을 생명물로 씻기면 뽀얗고 곱게 피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에 아버지도 생명물로 씻겨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생명물이 없어서 신앙촌 샘터에서 물을 떠 가면서 ‘하나님 함께해 주세요.’ 하고 간절하게 기도드렸습니다. 집에서 찬송을 부르며 아버지를 씻겨 드릴 때 아주 좋은 향취가 바람처럼 불어와 계속 맡아졌습니다. 평생 농사지으신 아버지는 피부가 검었는데 씻기면 씻길수록 뽀얗게 피어나면서 그렇게 곱고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꽉 다물고 있던 입술이 어느새 풀려 살짝 미소를 짓고 계시는 것을 보고 동생들도 아버지가 웃으신다며 놀라워했습니다. ‘귀한 은혜를 주셨구나!’ 하며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니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 날로 가깝도다~” 하는 찬송이 떠오릅니다. 부족한 저를 생명길로 불러서 은혜를 주시고 구원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주시는 하늘의 은혜를 받으며 아름다운 천국을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세계 향하며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싶습니다. 하나님 가르쳐 주신 대로 맑고 바르게 살아서 그날에 기쁨으로 하나님 뵈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