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단상에서 불덩어리가 사람들 쪽으로 튀어나와

김후순 집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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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이듬해인 1956년 10월에 저는 창미네 식구들을 따라 전도관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용산구 원효로 3가에 위치한 그곳은 박태선 장로님께서 세우신 교회라고 했습니다. 기차처럼 기다랗게 생긴 예배실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찬송을 했는데 거기서 소리 높여 찬송을 부르며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주 일요일에는 이만제단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여 창미 어머니와 함께 이만제단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한창 건설 중인 이만제단은 외벽이 세워진 상태로 그 안에 입추의 여지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처음 뵈었던 박태선 장로님은 키가 훤칠하신 신사 분이었으며 예배 시간에 우렁찬 음성으로 설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설교 중에 단을 “탕 탕” 하고 내려치시는 순간, 거기서 불덩어리가 번쩍번쩍하며 튀어나오더니 사람들이 앉아 있는 쪽으로 날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하며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박 장로님께 안수를 받은 뒤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져
매일 이만제단 새벽예배 참석
그동안 체험한 신기한 일들이
은혜 받은 것임을 깨달아

예배 중간에는 박 장로님께서 빼곡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다니시며 한 명 한 명의 머리 위에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저는 안수를 받는 순간 푹신한 솜이 머리에 닿는 것처럼 아주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박 장로님께 안수를 받은 뒤부터 놀랍게도 피를 쏟는 일이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고 온몸에 힘이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외출을 거의 하지 못했는데 몸이 가볍고 힘이 생기니 밖에 나가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때 마침 이만제단을 건설하는 일을 교인들이 돕는다고 하여 저도 거기에 가서 일을 도왔습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길게 줄을 서서 릴레이로 벽돌을 하나씩 나를 때 저도 함께 벽돌을 나르며 아주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안수를 받은 뒤로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지면서 매일 이만제단에 나가 새벽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그동안 제가 체험했던 신기한 일이 바로 은혜를 받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 맡았던 좋은 향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향취 은혜이며, 박 장로님께서 단상을 치실 때 쏟아져 나왔던 불덩어리는 불성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로 건강을 되찾은 저는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한없는 기쁨을 주시고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눈물이 솟아올랐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하는 찬송은 제 마음의 간절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되찾은 저는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한없는 기쁨을 주시고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가슴에서부터
뜨거운 눈물이 솟아올랐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하는 찬송은 제 마음의 간절한 기도가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57년 4월에는 이만제단이 완공되어 개관집회가 열렸으며 집회 기간 중에 서울운동장에서 전국 전도관 체육대회도 개최되었습니다. 농구, 배구, 축구 등의 구기 종목과 달리기, 마라톤 등의 육상 종목이 있었으며 관중들이 참여하는 즐거운 게임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잘했던 저는 ‘아이 업고 달리기’ 경기에 나가서 아이를 업고 힘차게 운동장을 달렸는데, 1등으로 골인 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건강해졌습니다!’ 하고 속으로 외치며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상품을 주시던 모습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제가 전도관에 다니면서 건강을 되찾게 되자 저를 잘 아는 동네 사람들은 무척 놀라워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각혈을 하고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던 제가 몰라보게 건강해져서 새벽부터 예배를 드리러 다닌다고 이야기하면서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전도관은 이단이라며 수군거리던 장로교회 교인은 저를 보고 “저분이 나은 것을 보면 전도관에 뭐가 있긴 있어.” 하며 더 이상 비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뻣뻣하게 굳은 시신 생명물로 씻기니
환갑에 가까운 고인이
청년처럼 젊어보일 뿐 아니라
향취까지 진동해
하나님 권능 마음 깊이 깨달아

이만제단에 계속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시던 남자 권사님이 돌아가셔서 입관예배를 드리게 되어 저는 처음으로 입관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장례반 권사님이 고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는데, 한쪽 팔을 들어서 조금만 올리려고 해도 전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시신은 뻣뻣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며 교인들이 힘차게 찬송을 부르는 동안 장례반 권사님은 생명물로 깨끗하게 시신을 씻겼습니다. 수의를 입힌 후에 다시 시신을 보니 그렇게 뻣뻣했던 몸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부드러워져서 장례반 권사님이 두 손을 잡고 움직이며 짝짜꿍을 할 정도였습니다. 얼굴이 뽀얗게 피고 입술도 발그스름하게 물들어 환갑이 가까우신 고인이 마치 이십 대 청년처럼 젊어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입관을 마치고 나자 시신을 모신 방에서 백합꽃 향기 같은 진한 향취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뻣뻣하게 굳고 송장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시신을 생명물로 씻긴 후에 그토록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보고 향취까지 진동하는 것을 체험하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58년 2월에 저는 소사신앙촌으로 입주를 했습니다. 신앙촌이 건립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은혜의 마을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저는 전도사님이 입주자로 추천해 주셔서 드디어 입주하게 되었습니다. 소사신앙촌에서 만난 사람들은 제가 얼마 전까지 죽을 날만 기다리던 환자였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했습니다.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여 주면 해골 같은 모습에 깜짝 놀라며 지금은 살도 오르고 얼굴이 환하게 피어서 새사람이 되었다고들 했습니다.

(김후순 집사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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