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교회 김경두 권사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설 생각하니 너무 두려워
발행일 발행호수 2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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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죄를 벗고 구원을 얻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지 못해 새롭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전직 교역자 김경두 권사(70세, 서대문교회)를 만나보았다.

▷ 하나님을 알게 된 동기
김경두는 초등학교 때부터 장로교회를 다니다가 고등학교 때 서울의 형님 댁으로 올라와서 함께 살게 되었다.
그때 전도관에 다니고 있던 형수에게 어린 시동생은 당돌하게 “형수님, 그곳은 다니지 마세요”라고 대들곤하였다. 그러나 형수는 “도련님, 한 번만 우리 전도관에 가 봅시다. 그리고 이야기해봅시다”라고 하여 김경두는 미아리 고개에 있던 돈암동 전도관에 나가게 되었다.
당시에는 기성교회 목사들이 전도관에 대한 근거 없는 중상모략으로 거짓말로 교인들을 미혹할 때였다.

▷ 마음문을 열고 죄를 회개
1962년 12월 12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수요일 저녁이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서 손뼉을 치며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 날 김경두는 ‘목사들 이야기만 듣고 무조건 전도관을 욕 할 것이 아니라 한 번 자세히 알아보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보문동에서 돈암동까지 열심히 주일예배, 수요예배에 나갔고 나중에는 새벽예배도 다니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마포 이만제단에서 예배를 드릴 기회가 있었다. 김경두가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그는 기성교회에서 죄의 개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며 눈물의 기도를 드리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박태선 장로님은 단에서 “마음 문을 열고 죄를 회개하라”라고 하셨다. 김경두는 어려서부터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했기 때문에 ‘지은 죄가 없는데 무슨 죄를 회개하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면서 그동안 생각나지 않던 죄가 떠오르며 저도 모르게 회개의 눈물이 흘렀다.

신앙생활 쉬다가 온 가족을 이끌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하나님께 안찰 받을 때 내 모든 사정 다 알아주시는
인자하신 음성 듣고 위로 받아 눈물 흘린 기억 새로워

▷ 하나님 뜻대로 살리라
그렇게 1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주일학교 반사로 임명되었다. 어느날, 김경두는 덕소에서 주일학교 반사 특별안찰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돈암동제단 반사들과 같이 안찰을 받으러 갔다. 바로 김경두 앞의 젊은 청년이 안찰을 받는데 박 장로님이 손을 청년의 오른 배에 대면 그곳이 불룩 나오고 왼쪽을 대면 그쪽 배가 불룩 나왔다. 동시에 청년은 아파서 죽는다고 소리를 질렀다. 박 장로님께서는 “왜 이렇게 더러운 죄를 지었는가?” 라고 책망을 하셨다.

마침내 김경두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두려워서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박 장로님께서 내 눈에 손을 갖다 대시자 마치 면도칼로 오려내는 것 같았습니다.” 안찰을 받은 후에는 마치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심정이었고 이제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 하나님은 기쁨의 신
그 후 김경두는 아예 돈암동 제단 근처로 이사를 가서 새벽 세 시면 일어나 다다미로 된 제단 바닥을 쓸고 닦고 예배드릴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새벽예배 시간 내내 은혜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김경두는 당시 현대건설 사옥에서 운영하던 매점을 정리하고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하였다. 그 무렵 하나님께서는 돈암동 제단에서 서울시내 중앙관장회의를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올라오시는 길을 쓸면 향취가 진동하곤 하였다. 천국이 다른 곳에 있지 않고 내 마음에 있는 것 같았고 하나님의 신은 기쁨의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교역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1966년 시온 신학원에 입학하여 수료한 후에 여러 교회에서 교역 생활을 하였다.

▷ 다시 하나님 품으로
교역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의 장례를 치뤘는데 생명물로 시신을 아름답게 피워서 보내드렸다. 그런데 1990년 교역 생활을 그만둔 후에 내가 죽어서 생명물로 피어가지 못하고 땅에 묻힌다면 얼마나 억울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더구나 가족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누가 나에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주겠는가 하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그래서 2006년 5월 이슬성신절에 온 가족을 이끌고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 하나님 우리를 부르는 소리
교역 생활을 할 때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께 안찰을 받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그간 고생 많았지”라며 하시며 위로의 말씀을 해주시는데 눈물이 쏟아지면서 ‘하나님 우리를 부르는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하는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지금도 그 자비로우신 모습과 온화하고 사랑이 듬뿍 담긴 음성을 생각해보면 목이 메고 눈물이 앞선다.

“저는 교역 생활을 그만두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니 죄와 양심이 무뎌졌습니다. 그럼에도 죄인을 다시 불러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하며 내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절대 버리시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이가 들어 육신이 쇠약해지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촌음을 아껴서 하나님께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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