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로 ‘런’ 배달하는 가구점 사장님 (박종대 권사/홍성교회 장년회장)

박종대 권사 / 홍성교회 장년회장
발행일 발행호수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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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홍성교회 장년회장 박종대(65세)권사댁은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가족이다. 박 권사는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고 늘 모든 일에 솔선수범 한다. 교회 수리를 할 때도 설계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추진력을 발휘한다.

본래 박 권사는 어머니 김연옥 집사가 천부교회에 나오시다가 십 여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자신은 신앙없이 살아가던 젊은이 였다. 박 권사는 젊어서 병이 하도 많아 늘 약을 안고 살았다. 박 권사가 가진 병은 위장병, 관절염 등을 비롯하여 무려 일곱 가지나 되어 세상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많았다. 당시에 가구 기술을 배워 가구공장을 경영하게 되었는데 몸이 아프니 남들이 하루 걸려 만드는 물건을 자신은 3-4일이나 걸렸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박 권사는 어머니가 하나님의 부흥집회에 가자고 하셔서 마음먹고 따라 나섰다.

은혜받고 7가지 병이 나아

부흥집회 첫 날도 하도 힘이 없어 부축하여 사람들이 데리고 나갔다. 첫 날 예배를 보는데, 가슴에 불같은 성신이 확 임하더니 온 몸이 부드러워짐을 느꼈다. 그 이튿 날부터 열심히 새벽이고 주일날이고 교회에 나오니 병이 하나씩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이었다. 사십일이 되자 모든 병이 나아버렸다.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1983년부터 가구공장을 경영하게 되었다. 지금 관장으로 시무하고 있는 큰딸(양산교회 박희정 학생관장)이 기장에 있을 때에 하나님을 뵙게 되었는데 박 권사가 무엇을 하는지 하나님께 아무도 말씀을 드린 적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박 권사를 보시더니 “손바닥만한 가구점을 하는구만. 앞으로 내가 축복해주지.”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떨어진 후 박 권사네 가구점은 불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에 비가 700밀리미터가 내려 서천시내가 모두 가슴까지 물에 잠겨 가구는 몽땅 다 버리게 되었다. 서천 시내에 있는 대부분의 가구점이 홍수 여파로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박 권사가 거래하던 가구 회사의 본사에서는 무상으로 가구를 새 것으로 모두 바꾸어 주겠다고 하여 박 권사는 아무런 손해를 입지 않았다.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홍성관장에게 전화를 일주일 간 매일하셔서 서천의 홍수 상황과 박 권사의 가구점에 대하여 일일이 물으셨다.

가구 전시장을 새로 전시하고 새 물건을 들여놓으니 손님들이 홍수여파로 가구구입이 폭증하여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문득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신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이 때 박 권사는 가구점이 오전 8시 반에 문을 열면 밤 12시 되어서야 문을 닫을 정도로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았다고 한다.

지금 박 권사는 그 때를 회상하며 “부족한 죄인에게 이런 큰 복을 주셨구나”라고 하나님께 고맙고 감사할 뿐이라고 하였다. 당시에 돈을 벌어 지금 가구 전시장과 시온센타가 있는 300여 평이 넘는 땅도 구입하게 되었단다. (사진 위 오른쪽과 아래 쪽)

박권사의 신앙관은 간단했다. 받은 바 은혜가 분명한데 하나님을 배신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거기에는 하나님만을 사모하는 깊은 신앙이 배어 있었다. 슬하에 3녀 1남을 둔 박 권사는 딸 둘은 현재 교역자로 시무중이었다. 외동아들인 박성구(29세)씨는 소문난 효자로서 아버지를 닮아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청년이다.(사진 맨위) 아버지인 박 권사는 새벽이 되면 목욕을 하고 하나님께 새벽예배를 드릴 준비를 한다.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항상 녹음테이프를 틀어놓고 아들과 함께 예배를 보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 덕분인지 아들은 아무런 탈이 없이 잘 자라 ‘런’ 판매며 교회일이라면 아버지 못지않게 앞장서는 청년이 되었다. 하지만 박 권사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다고 겸손해 하였다.

`내가 축복해 주지`

박 권사는 3녀 1남을 키우면서 모두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일꾼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였다. 아들 성구씨에게 물으니 아버지는 신앙에 대해서만은 심한 ‘독재자’였다고 회상하였다. 그러나 성구씨는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그런 열성 덕분에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었고 세파에 휩쓸리지 않게 되었다고 고마워하였다.

벤츠엔 ‘런’이 가득

박성구씨는 런과 두부를 판매하는 소비조합원이다. 그의 영업용 차량인 벤츠(Benz)차에는 런과 시온제품으로 가득하였다. 벤츠를 타고 다니는 성구씨를 보니 소비자들도 더욱 신뢰가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 권사는 29년간 축복일을 다니면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두 번을 빠진 외에는 빠진 적이 없다. 박 권사는 축복일이 다가오면 신이 나고 기쁨이 솟구친다고 했다. 축복을 받으러가니 어찌 즐겁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두 부자는 기장 축복일에 갈 때가 가장 즐겁고 기쁜 날이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두 부자는 자가용을 타고 가면서 가정사와 인생사 그리고 신앙문제에 이르기까지 서로 친구가 되어 모든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신앙을 돈독하게 하자고 다짐하는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박 권사는 아들에게 일류가구 기술을 다 전수해 주었고 절대로 죄짓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고 늘 가르치고 있다.

박 권사는 순종하는 자와 아니하는 자의 삶의 차이를 실감하고 있다며 하나님께는 무조건 순종이 제일이지 이유를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는 십일조를 모든 비용을 제하고 바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수입 금액에서 바치는 생활을 한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잔머리를 굴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복을 차버리는 행위라고 하였다.

주일이 되면 200리 길이 넘는 홍성교회에 와서 아들과 함께 식사준비를 하는 봉사활동을 한다. 먼 길을 온 교인들에게 정성껏식사 한 끼를 대접하기 위해 열과 성의를 쏟는다. 교회 일이라면 그는 늘 신이 나서 앞장서는 것이다.

부자가 함께 가는 길

박 권사와 성구씨가 벤츠에 런을 싣고 다니면서 문전박대를 당할 때는 전주집회에서 하나님께서 당하신 중상모략과 핍박을 생각하고 눈물이 절로 나왔다고 하였다. 이렇게 하여 성구씨는 한때 혼자서 런을 250박스를 소비하기도 하였고 이를 통하여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인내를 배웠다고 하였다. 이제는 그런 풍파가 다 지나가고 제품을 신뢰하는 고객들이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박 권사는 아들과 함께 요즘 군산 이마트와 롯데마트에 런을 넣을 채비를 하고 있다.

지금 서천에는 30여개 되던 가구점이 하나둘 문을 닫고 박 권사가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박 권사는 자신이 번 돈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잠시 맡겨주신 것을 잘 선용하여 쓸데 없는 곳에 쓰지 말고 아껴서 하나님 일에 써야 한다고 믿고 있다.

아들 성구씨는 아버지이자 신앙의 선배인 박 권사가 몸이 건강하셔서 자신의 든든한 기둥으로 오래오래 계셨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신앙안에서 두 부자가 나란히 한길을 함께 가며 하나님께 헌신하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김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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