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에선 90세는 돼야 노인 대접 받아요’

신앙촌 노익장들의 '노인 찬가'
발행일 발행호수 2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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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유근환 권사(96세), 정규용 승사(92세), 홍영의 전직 관장(95세), 정기찬 집사(95세)

장수 마을로 소문 난 신앙촌에서 90세 이상 할아버지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었다. “신앙촌에서는 70대는 청년, 80대는 장년(壯年)으로 취급되며 90대는 되어야 노인 대접을 받는다”고 파안대소하는 노인들의 망중한을 들어 보았다. 그들은 장수의 조건으로 한결같이 신앙이 주는 마음의 평안과 ‘공원 속의 도시’ 신앙촌의 아름다움을 첫 번째로 들었다.

유근환 권사(96세)

유 권사는 백세를 4년 앞둔 지금도 귀가 밝고 기억력이 뛰어나다. 그는 전주 출신으로 1956년 6월 11일부터 16일까지 전주교회에서 하나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천부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 전주시내에 있는 장로교, 성결교, 감리교 등 모든 교파들이 조직적으로 하나님의 집회를 방해하려고 청년들을 앞세워 집회장소에 난입하여 난동을 부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유 권사는 하나님의 설교말씀과 은혜의 체험을 하고 난 후에 기성교회에는 구원이 없음을 확신하고 소사신앙촌에 가족 모두를 데리고 입주하여 덕소를 거쳐 기장신앙촌에 들어와 신앙생활을 하였다. 유 집사는 새벽 4시면 일어나 목욕 하고 제단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매일을 시작한다.

그 후에 아침을 먹고 신문을 읽는다. 96세가 된 노인이 신앙신보를 1면부터 8면까지 한 자도 빠트리지 않고 매일 읽는다. 유 집사는 무엇보다도 신앙신보가 기다려진다고 한다. 오후에는 지팡이를 짚고 신앙촌 경내 꽃밭을 이곳 저곳 산책하며 건강을 다진다. 저녁을 먹고 잠시 후에 잠자리에 든다. 이렇게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또렷하게 말하였다.

정규용 승사(92세)

멋진 캡을 쓰고 다니는 정 승사는 모든 면에 젊은이 못지않은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정 승사는 아직도 장안농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을 정도로 정정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70대로 보이는 정 승사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유학을 마치고 교편 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정 승사는 하나님의 남산집회에 참석하여 은혜의 체험을 하였고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셨을 때 소사에 입주하여 시온고등학교 교사생활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덕소 시온 제2상업고등학교에서 정년을 맞았다.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가장 공기가 맑은 기장신앙촌에서 살고 있으니 ‘내가 정말 복을 받았구나’하는 것을 수시로 느낀다고 하였다. 신앙촌에 사는 게 무엇이 좋으냐고 물으니 정 승사는 “첫째, 죄 안 지어서 좋다. 온 세상이 듣는 것 보는 것 모두가 죄로 가득 차 있지 않느냐. 둘째, 공기가 너무나 맑아서 좋다”고 했다.

홍영의 전직 관장(95세)

홍 관장은 1955년 6월 14일 대구 칠성동 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을 뵙고 은혜를 받았다. ‘성신으로 거듭나야만 한다’는 말씀에 감화 감동을 받고 곧장 서울에서 한강 모래사장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 때 홍 관장은 꼽추와 벙어리 등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병이 나았다며 기뻐 뛰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다고 한다. 그 후 홍 관장은 1957년 대구에서 교인들과 합심하여 제단을 건축하고 1958년 6월에는 전남 벌교 관장으로 발령받아 약 30년 동안 교역생활을 하였다.
1986년에 정년퇴임을 한 후에 기장신앙촌에 입주한 홍 관장은 신앙촌에서의 행복한 노후를 만끽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 기도문을 하고 양로원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토바이를 타고 기장 시내까지 나들이를 했다. 그리고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식사 후에는 공원을 산책 하며 운동을 한다.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라.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은 젊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홍 관장의 얼굴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온유함과 평안함이 가득하였다.

정기찬 집사(95세)

정 집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정정하였으나 최근에 무릎 수술을 받고 거동이 좀 불편하다고 했다. 하지만 과거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정 집사는 전주 중앙교회에 다니다가 1956년 6월 전주에서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집회’ 대자보를 보고 참석하고 싶어 했으나 직장에서 허락지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어머니의 권유로 전주제단이 준공된 후에 하나님 집회에 참석하여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참석자 모두에게 안수를 해주시는데 이 때 은혜를 받고 눈물이 한없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 때 기성교회에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로 달려왔다고 한다.

그 후 정 집사는 20년간 다니던 기성교회 직장을 전도관에 다닌다는 이유로 사직을 강요당하여 일곱 식구 생계가 막막해졌지만 진리를 버릴 수 없어 1958년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였다.
덕소신앙촌에선 가성소다 공장에서 작업 부주의로 머리를 다쳐 식물인간이 되다시피 했으나 하나님께서 강하게 축복해주셔서 완전히 회복된 일도 있었다. 기장신앙촌에서는 몇 년 전까지 초소근무를 자원할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였다. 앞으로 소망이 무엇인지 물으니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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