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자 사장/신앙촌상회 배방점

초면의 손님들끼리 서로 제품을 홍보하며 더 사가기도, 자부심 생기고 더욱 감사
발행일 발행호수 2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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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새로운 얼굴이라면서 어디서 나타났어? 라고 물어오는 분도 있던데 예전에 신앙촌에서 일하면서 하나님께 축복도 많이 받던 시절도 있다.

한번은 축복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가 나오신 하나님 머리에 빛이 둘리어 있는 것을 보기도 했었다. 또 공장 대항 배구 경기 중에 공이 내 앞에서 휘는 것도 지켜보았다. 운동을 좋아하고, 배구를 잘 했다. 워낙 잘 해서 지금으로 치면 신앙촌의 김연아라 할 만큼 인기가 있었다. 한번은 결승전에서 상대 팀이 약한 선수들뿐이라 약하게 넘어오던 공인데 받아 넘기려고 준비하고 있는 내 팔 앞에서 옆으로 휘어지는 것이었다. 몇 차례 그런 일이 있으면서 그날 경기를 어렵게 이겼는데 며칠 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해주셨다. 경기를 하는데 차이가 많이 나서 휙 이겨버리면 이긴 팀도 재미없고, 진 팀도 재미없다.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이겨야 이긴 팀의 기쁨은 배가 되고, 진 팀도 덜 아쉽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러저러한 하나님과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은 하면서도 막상 교회로 발길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니 교회에 다시 안 나오려고 했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미리 쳐 놓으신 그물 안에서
나혼자 기를 썼던 것 같아
결국 나의 자리는 여기인데

12,3년 전 안양에 사시던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날 위해 항상 기도하시던 엄마였다. 어서 속히 교회에 다시 나오기를 언제나 기도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엄마를 내가 살고 있는 천안으로 모셔왔다. 수술을 받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신 엄마는 교회에 나가야겠다며 데려다 달라고 하셨고 엄마를 천안교회에 모시고 가면서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다시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나는 예배실 뒤쪽에 앉아 예배 끝나기가 무섭게 빠져나왔다. 처음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설교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다시 마음이 끓을까봐서.

그러나 뿌려놓은 씨앗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나는 어느 새 런 판촉을 나가게 되었고, 소비조합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지난 해 주위 권사님들의 의견을 듣고 지금 동네인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에서 신앙촌상회 할 자리를 알아봤다.
거리에서 보니 ‘임대’ 글자 붙은 매물로 나온 상가가 없었다. 무작정 부동산에 가서 물어봤다. 부동산 사장님은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남성복 매장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자리의 주인과 이야기가 되었다면서 3칸을 쓰고 있던 주인이 한 칸을 막아 가게를 내놓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내 가게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난 해 5월이었다. 첫 손님의 첫 마디가 “어머 신앙촌이 생겼네, 언제 생겼어요? 옛날에 신앙촌 물건 많이 썼다”는 것이었다. 읍 단위 동네지만 동네 사람들이 신앙촌 물건 좋은 것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오픈 할 때부터 사람들은 신앙촌 제품은 알아준다며 들어와 믿고 사간다. 그럴 때면 자부심이 내 안에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 동네 사람들이 말한다. 처음에는 어디 잘 되나 지켜보자 라는 마음으로 봤다고. 그러나 이제는 말한다. 이 골목에서 장사가 잘 되는 곳은 신앙촌상회뿐이라고.
상회 안에 들어온 손님들은 서로가 초면인데도 서로 신앙촌 제품을 설명해가면서 그것에 동조되어 더 많은 물건을 사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이렇게 신앙촌상회에 앉아있으면서 내가 여기까지 온 길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그물을 쳐놓으신 것 같다란 생각이 든다. 아무리 빠져나가려고 해도 이리저리로 몰아 결국 빠져나가지 못하게 나를 묶어놔주셨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지금은 한없이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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