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 반세기의 국민 신뢰 ‘신앙촌’상표

대담 - 박해정 승사(84. 기장 신앙촌), 이주현 공장장(34. 한일물산 양재공장)
발행일 발행호수 2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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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공장장의 세대공감, ‘앞세대의 선배님들이 쌓아 올린 의 명성을 잘 지켜나가겠습니다.’

‘신앙촌’이란 신앙의 울타리를 만들어 주시고 그 안의 사람들에게 경제 자립의 틀을 만들어 주시기 위해 세운 기업들. 죄 안 짓는 정직한 손과 마음으로 만든 제품이 나가서 전도한다는 말씀에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 제품을 생산하는 신앙촌 사람들. 천부교와 함께 가는 신앙촌 기업에서  일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주현: 제가 처음 입사를 했을 때 승사님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늘 1등만 하셨다고요.
박해정: 그때가 참 재미있었어. 3달에 한 번씩 생산경진대회를 했는데, 수예부서에서 1등을 했었고, 염색공장에서 1등을 했었지. 그때는 1등 하면 공장 직원 전체에게 여러 가지 상품을 주셨어.

이주현: 어떤 부서의 책임자를 하셨었는지요?
박해정: 덕소 시절에 1967년 염소산 가리 공장 책임자를 시작으로 기장 신앙촌으로 옮긴 후 도리고트(경편니트) 공장, 다이마루(환편니트) 공장, 나염공장, 염색공장, 가공공장, 연공공장, 수예공장, 다시 나염공장 책임자를 했었어.
염소산가리는 성냥의 원료를 만드는 공장인데, 그때는 우리 말고 대한전기라는 공장이 하나 더 있었어, 우리 신앙촌 물건이 시장을 석권하니 그 회사는 문을 닫았다지. 그리고 기장으로 옮겨 와서는 육영수 여사가 수출을 권해서 섬유공장을 굉장히 크게 했고 직원 수도 엄청나게 많았지. 그리고 공정마다 따로 다 공장이 있었어. 그때는 동대문 시장에 나가면 신앙촌 것뿐이었으니까. 경기가 좋았지.

이주현: 저도 그렇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잘 관리하는 것이 어려웠겠어요.박해정: 섬유 수출을 한창 할 때는 신앙촌 사람들 말고 밖에 사람들이 약 800명씩 들어왔었어. 그들을 태우고 드나드는 버스가 줄을 이었지. 수출의 날에 하나님께서 상도 받으셨잖아. 그때 그 사람들 전도해서 기장제단에 나가게 하기도 했었어. 얼르기도 하고 야단도 치고 그러면서 일을 하는 거지. 야단을 쳐도 미워서 야단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사람들도 알지. 지금도 대구에 가면 그때 그 욕쟁이 할머니 잘 계시냐고 묻는다고 하더라고.

이주현: 육 여사가 신앙촌 제품을 애용했다고 들었습니다.
박해정: 우리 신앙촌 수가 유명했어. 예전엔 수놓은 한복 치마를 꽤 알아줬는데, 육영수 여사가 동남아 순방을 할 때 우리 수예부에서 수 놓은 한복 그걸 입고 갔어. 또 신앙촌 엑슬란 내복도 유명했잖아. 지금은 아이 아빠가 됐지만 박지만 군 내복을 조그맣게 만들어서 들여갔었어.
신앙촌 메리야스는 인기 품목이지. 예전에 시중의 메리야스는 한 번 빨면 길이는 줄고, 옆으로는 늘어나고 그랬어. 그런데 신앙촌 메리야스는 빨아도 그대로 있으니 인기가 굉장했지.

이주현: 신앙촌 메리야스뿐 아니라 신앙촌 하면 예전부터 유명했던 제품들이 많잖아요.
박해정: 많지. 신앙촌 생명물 간장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좋은 물과 좋은 원료로만 하지. 예전에 시중의 간장들은 여름만 되면 곰팡이가 피고 그래서 남들은 양잿물을 넣고 그랬다고, 우린 안 그랬지. 밍크담요도 유명했고, 기름값이 많이 올라서 올해는 잘 나갈 것 같아.

이주현: 네, 수예부에서 극세사 제품이 유행이라는데 굉장히 잘나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럼 그런 제품 개발은 누가했나요?
박해정: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경우가 대부분이지. 밍크담요도 덕소시절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셔서 시작했어. 메리야스나 양말은 구제단 시절부터 했었어. 기계 한두 대 놓고 시작했는데 전쟁 뒤라 만들기만 하면 팔렸어. 그때는 전도관 양말, 전도관 메리야스라고 했지. 신앙촌 제품의 시작은 메리야스와 양말이야. 양재가 어렵지?

이주현: 아무래도 기온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요. 패턴도 젊어지려 하고요. 아동복도 준비하고 다양하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하청을 주려고 해도, 그들이 신앙촌처럼 정확하고 정직한 제품은 못 만든다고 못하겠다고들 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책임감이 더 들어요. 지금도 ‘신앙촌’이란 이름만으로 믿어주세요. 젊은 분들도 “우리 엄마가 쓰시던 그 신앙촌이네요” 하면서 반가워하시며 우리 물건을 찾는 분들이 늘고 있어요. 앞세대의 선배님들이 신앙촌이란 명성을 쌓아주셨어요. 그 이름에 걸맞게 해나가겠습니다.
박해정: 그렇지. 우리는 일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잖아. 일과 신앙이 조화를 이루어야지. 일할 때가 제일 행복했어.

이주현: 승사님, 힘을 얻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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