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렇게 안찰을 못 받아서 안타까워합니까?

김춘매 퇴임 교역자(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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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초창기 전주전도관 모습

저는 1928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열아홉 살에 결혼한 후로는 남편 직장이 있는 고창에서 살았는데,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임신한 몸으로 70Km를 넘게 걸어서 전주까지 피난했습니다. 그때 무리가 됐는지 학질에 걸려 한참을 앓은 후 아이를 사산하고 말았습니다. 또 남편은 공습이 퍼붓는 중에 남원 시댁으로 갔다가 행방불명이 되어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전쟁 통에 혼자가 된 저는 그때부터 친정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건강이 많이 나빠져서 밥을 제대로 못 먹고 점점 말라 갔습니다. 한 달에 열흘 정도만 겨우 밥을 먹고 20일은 미음도 잘 넘기지 못했습니다. 전주 적십자병원에도 다녀 보고 위장약도 먹어 봤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습니다. 또 너무 말라서 그런지 허리까지 안 좋아져서 항상 허리 통증이 있었고 무거운 것을 잘 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집에서 기운 없이 지내는 저를 안쓰러워하시며 바람도 쐴 겸 아버지가 하는 건어물 상에 나오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몸이 조금 괜찮은 날은 중앙시장에 나가 아버지 가게를 지켰습니다.

중앙시장 상인 중에 저와 동갑내기인 김 집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김 집사님은 저를 보고 그렇게 아파서 어떡하냐고 걱정하며 자신이 다니는 전도관에 나와 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전도관에서 은혜를 받고 병이 나은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져서 그분을 따라 전주전도관에 가게 됐습니다. 그때가 1958년으로 기억됩니다.

전도관에서 손뼉을 치며 찬송했는데, 교회에 다닌 적이 없는 저는 찬송가를 몰랐지만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예배 마지막에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며 영광을 돌릴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바람이 ‘휙-’ 하고 불어오더니 좋은 향기가 맡아져서 얼른 사방을 둘러봤지만 화장한 사람도 없고 향기가 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그 향기가 따라오는 것처럼 계속 맡아졌습니다. 꽃향기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은 향기를 맡으며 마음이 참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안찰 받을 기회 놓친 것을 아쉬워하다 꿈에서 박 장로님께 안찰을 받았는데
그로부터 3일 후 대전전도관 집회에서 안찰을 받을 때 박 장로님께서
“엊그제 안찰 받았지요” 꿈에서 안찰 받은 것 다 아시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라

전주전도관에 다녀온 후로 김 집사님이 자주 찾아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전도관을 세우신 박태선 장로님은 집회하시는 곳마다 은혜를 내리셔서 많은 사람이 모인다고 했습니다. 단상을 치시면 불덩이가 쏟아져 나오고 예배 시간에 안개처럼 뽀얗게 은혜가 내린다고 했습니다. 특히 박 장로님께 안찰을 받고 병이 나은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안찰을 받아 보고 싶었습니다. 마침 박 장로님께서 전주전도관에 오셔서 집회하신다고 하여 참석하게 됐습니다.

단상에 서신 박태선 장로님은 양복 차림의 젊은 신사 분이셨습니다. “마음 문 여세요.” 하시며 강대상을 힘 있게 치셨는데 그때 불덩어리 같은 것이 확확 튀어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김 집사님이 말하던 불덩어리가 저거구나!’ 싶어 무척 신기했습니다. 보통 예배 후에 안찰을 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날은 안찰 시간이 없다고 해서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김 집사님을 만나 보니, 집회를 마친 후 계속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안찰을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저는 안찰 받을 기회를 놓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그날 밤 ‘조금만 기다렸으면 안찰을 받았을 텐데…….’ 하고 안타까워하다 잠이 들었을 때 이런 꿈을 꾸게 됐습니다.

꿈속에서 제가 예배실에 앉아 있을 때 하얀 와이셔츠 차림의 박태선 장로님께서 들어오시더니 “누가 그렇게 안찰을 못 받아서 안타까워합니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라고 대답하며 벌떡 일어서자 박 장로님께서 다가오셔서 허리를 몇 번 쳐 주셨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저는 그 꿈이 얼마나 생생한지 박 장로님을 실제로 뵌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전에 김 집사님이 이야기해 줄 때는 박 장로님께서 눈과 배를 안찰하신다고 들었기 때문에 ‘왜 나는 꿈에서 허리를 쳐 주셨을까?’ 하며 의아했습니다.

그로부터 3일 후에는 대전전도관에서 열린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안찰해 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한 명씩 안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 차례가 되었을 때 박 장로님께서 “엊그제 안찰 받았지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꿈에서 안찰 받은 것을 다 아시고 말씀하시니 깜짝 놀랐습니다.

그날 눈과 배에 손을 살짝 대시며 안찰해 주셨는데 안찰 받고 나올 때 몸이 아주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대전전도관에 갈 때만 해도 걷는 것이 힘들어 쉬었다 가야 했지만 안찰을 받고는 힘든 줄 모르고 집까지 가뿐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저를 괴롭히던 허리 통증이 그때부터 말끔히 사라져서 차츰 무거운 것도 들 수 있게 됐습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앓아누웠었는데
안찰을 받은 뒤로 건강을 되찾게 되었고
전주전도관을 새로 지을 때도 벽돌 나르며
일을 도울 수 있게 되니 기쁘고 즐거워

안찰을 받은 뒤로 저는 몸이 좋아지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속이 편안해지고 밥을 제대로 먹게 되면서 볼품없이 말랐던 몸에 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도 몇 번씩 앓아누웠던 저는 건강을 되찾게 되었고, 전주전도관을 새로 지을 때도 다른 교인들처럼 벽돌을 나르며 일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일하는 것을 와서 보시고는 ‘우리 애가 내일은 꼼짝도 못하겠구나.’ 하셨는데, 제가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나가서 놀랐다고 하셨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제단 짓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전도관 덕분에 건강해졌다 하시며 전도관에 다니는 것에 호의적이셨습니다. 매일 새벽예배 갈 시간이면 제 이름을 불러 깨워 주셨는데, 농담으로 “매일 새벽마다 깨워 주니 나도 절반은 교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루는 아침밥을 먹을 때 아버지가 “나 어제 박 장로님께 안수를 받았단다.”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안수가 어떤 것인지 알고 계셨는데, 저는 전도관에 안 다니시는 아버지가 어떻게 안수를 받으셨나 싶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진으로만 뵈었던 박 장로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아버지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원래 잘 웃지 않으시는 아버지가 그날은 활짝 웃으시며 기분이 좋아 보이셨습니다.

(김춘매 퇴임관장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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