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이구나!’

김주자(2)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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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소사신앙촌 전경(1958년)

서울에 온 뒤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전도관에 나와 보라고 계속 권유하셨습니다. 그 권유에 못 이겨 이만제단에 다녀오신 날 아버지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설교 시간에 등단하신 박 장로님께서 “마음 문 여세요.” 하고 말씀하시는 순간 아버지는 7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고 하셨습니다. 6·25 전쟁 때 큰 소리로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서 구해 주셨던 음성이 바로 박 장로님의 음성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이야기하시며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이만제단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하셨고 얼마 후 집사 직분도 받으셨습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 경기도 부천에 신앙촌을 세우기 시작하셨습니다. 은혜 받은 식구들이 한곳에 모여서 죄를 씻어 천국 갈 자격을 준비하는 곳이라 하셨습니다. 저희 가족은 신앙촌에 들어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 1958년 4월 20일 드디어 입주했습니다. 그때는 신앙촌에 공장이며 주택, 학교가 한창 지어질 때라 저는 건설대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건설대원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먼저 하려고 했습니다. 벽돌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온돌을 나른다고 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앞 다투어 달려가서 조금만 늦어도 나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하는 동안 모두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여럿이 모여 시멘트 반죽을 하거나 큰 파이프를 나를 때는 신나게 찬송을 불렀고, 박자를 맞출 때는 “천국” “들어가자!”를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저는 체구가 작고 힘도 세지 않았지만 건설대에서 일하며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건설이 한창 바쁠 때는 횃불을 밝히고 야간작업을 했는데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면 피곤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새로운 힘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상하게 몸이 무겁고 피곤해 ‘오늘은 그만 들어가서 쉴까?’ 하며 망설일 때 하나님께서 건설 현장에 오셨습니다. 지방으로 집회를 다니시는 바쁜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건설 현장에 자주 오셔서 건설대원 한 명 한 명에게 안수하시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날도 안수해 주셔서 저도 줄을 서서 안수를 받았는데, 다시 돌아와 일할 때 모래를 가득 담은 지게가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습니다. 안수를 받고부터 팔다리에 힘이 솟아올라 평소에는 한두 번 쉬어 가던 길도 쉬지 않고 곧장 내달렸습니다. 지게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도 오히려 몸이 가볍게 느껴져서 다른 건설대원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며 다녔습니다. 그때 ‘내 힘이 아니고 하나님 주시는 힘이구나!’ 하고 알게 됐습니다.

계속된 권유로 이만제단에 가신 아버지
설교하시는 하나님 음성 듣고 전쟁 때
목숨을 구해준 목소리임을 깨닫고 놀라
그 후 전도관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해

소사신앙촌에 여러 공장이 세워져 바쁘게 돌아가면서 건설대원들은 공장으로 옮겨 일하게 됐습니다. 저는 카스텔라 생산으로 한창 일손이 부족하던 제과공장에서 일했습니다. 밤샘 작업을 할 때면 하나님께서 자주 공장에 오셔서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입구에 들어오실 때부터 온 공장에 향취가 진동했기 때문에 작업 시간에 향취가 나면 하나님께서 오신 줄 알고 안수를 받으려고 줄을 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안수해 주셨고, 안수를 받고 얼굴이 배꽃같이 핀 직원들은 신나게 찬송을 부르며 일했습니다.

그 후 덕소신앙촌을 거쳐 기장신앙촌에 입주해 생활하는 동안에도 열심히 일하는 시간이 가장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일을 할수록 힘이 솟아나는 것도, 마음속에 기쁨이 가득한 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도 저와 함께 기장신앙촌에서 생활하셨는데 연로하셔서 직장에 다니지 못하셔도 힘닿는 대로 신앙촌 곳곳에서 봉사하며 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니 피곤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져
안수를 받고 얼굴이 배꽃같이 피어 신나게 찬송을 부르며 일하는 직원들
일을 할수록 힘이 솟아나고 기쁨이 가득해서 일하는 시간이 가장 즐거워

그 후 1986년에는 아버님이 노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거동이 많이 불편해지셔서 제가 보살펴 드렸는데, 방 안에서 대소변을 보셨기 때문에 자주 환기하고 청소해도 냄새가 조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례반 권사님과 교인 분들이 오셔서 예배드릴 때 어느 순간 냄새가 사라지고 공기가 아주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셨던 권사님도 예배 도중에 아주 좋은 향취가 진동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기억해 주시나 보다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살아 계실 때 얼굴빛이 어둡고 병색이 짙었던 아버지는 입관예배를 드린 후 피부가 맑고 뽀얗게 피어 참 편안해 보였습니다. 주무시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2006년에는 어머니가 95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눈을 감으시기 전 제대로 잡숫지 못해 많이 마르셨는데 입관예배를 드리며 생명물로 깨끗이 씻은 후 어머니를 봤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비쩍 말랐던 얼굴에 보기 좋게 살이 올라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흔이 넘은 어머니 피부가 뽀얗게 피어 속이 비칠 것처럼 투명했고 입술은 화장한 것처럼 고운 분홍빛이었습니다. 살짝 미소를 머금은 어머니를 보면서 떠오르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많이 마르셨던 어머니가
생명물로 깨끗이 씻고 입관예배 드리자
말랐던 얼굴이 보기좋게 살이 오르고
입술은 고운 분홍빛에 피부는 뽀얗게 피어

소사신앙촌 시절 어머니는 저와 함께 건설대에서 일하셨는데, 젊은이 못지않게 열심을 다하시며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즐겁게 일하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때처럼 곱게 웃는 모습으로 편안히 잠든 것 같은 어머니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은혜로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올해로 여든이 된 저는 은퇴해 편안히 지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어버이날에는 합창 경연대회에 나가서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주 앞에 빨리 나갑시다~” 하는 찬송을 불렀습니다. 여러 사람과 화음을 맞춰 찬송하면서 갈 길을 밝혀 주시는 대로 귀한 길을 따라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수록 은혜 받을 때의 기쁨이 많이 떠오릅니다.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의 은혜를 간직하면 그 마음이 바로 천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매일매일 성신을 마음에 모시고 살다가 그날에 아름다운 세계에 들어가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김주자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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