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신앙촌(1) 건설①
1970년 기장에 제3 신앙촌을 건설하나님께서는 1970년 2월 경상남도 동래군 기장면(現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기장신앙촌 건설을 시작하셨다. 1957년 소사신앙촌을 건설하여 별천지와 같은 아름다움으로 당시의 세인들을 놀라게 하였고 1962년 덕소신앙촌을 건설하여 한강변의 별장과 같은 주택촌과 신앙촌 제품의 우수성을 전국에 떨친데 이어 다시 세 번째 신앙촌이 한반도의 동남쪽 기장 땅에 건설되는 것이었다.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인류 역사상에도 그 유례가 없는 신앙촌을 왜 하나님께서는 그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세 곳이나 건설하신 것인가? 그 해답은 자유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절대명제로 되어있는 천부교의 교리에서 찾을 수가 있을 것 같다. 자유율법이란 양심의 법이라고도 하는 하나님의 법을 말한다. 즉 마음이나 의식으로도 죄를 지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법이다. 자유율법은 워낙 고도의 법이기 때문에 성경에는 기록돼 있으나(야고보서 2장 12절) 다른 종교에서는 그 개념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앙촌은 우리가 바로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기 위해 건설하신 곳이다.
자유율법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려는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세 번째 신앙촌
그러면 왜 신앙촌을 세 곳이나 건설하셨던 것일까? 지식의 교육기관에도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가 있듯이 신앙이 장성하는 데도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첫 번째 신앙촌에서 키운 자를 받아 둘째 신앙촌에 모아서 거기에서는 더 키우고 그 다음번에는 또 선발해서 마지막으로 셋째 울타리(세 번째 신앙촌)에 들어갑니다.” 라고 하심으로 이미 제3 신앙촌의 건설을 말씀하셨다.(1957년 10월 20일 설교 말씀) 우리의 신앙을 키우고 키워서 마지막에 의인을 만들어 완전한 구원을 주시려고 신앙촌을 건설하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숯 덩어리는 혼자서 잘 타다가도, 피지 않은 숯 덩어리 속에 들어가면 그것마저도 불씨가 사그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반쯤 핀 숯 덩어리라도 한곳에 모아 놓으면 얼마 안 돼서 전부가 활짝 피어 타오릅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씻음 받은 사람이라도 보고 듣는 모든 것이 죄악인 세상에서는 잘 간직하고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생활함으로써 선한 양심을 기르고 신앙을 키우기 위해 신앙촌이 세워진 것입니다. 신앙에도 단계가 있기에, 교인들의 믿음의 성장에 따라 소사신앙촌, 덕소신앙촌, 기장신앙촌이 건설되었습니다.” (Chunbukyo.or.kr)
1970년 2월 28일, 부산 해운대에서 약 20km가량 떨어진 現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학리, 삼성리, 동부리, 신천리 일원의 약 130만 평 부지에 기장신앙촌 건설은 시작되었다. 기장신앙촌 건설에는 덕소신앙촌 건설대와 각 공장에서 자원한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건설이 시작되고 1972년 6월경까지 1동, 2동, 3동의 대형 공장건물 및 각 공장 건물, 기숙사, 주택 등의 건설이 완공되었으니 총 공사기간은 약 2년 4개월이 걸린 셈이었다. 소사·덕소신앙촌 건설에 비해 공사기간이 길었으나, 기장신앙촌 건물의 규모로 볼 때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1동 건물은 건평 5,655평의 2층으로, 연건평은 11,310평이었고 현재는 시온합섬의 여러 공장과 한일물산 수예공장이 사용하고 있다. 2동 건물은 건평 2,650평의 3층으로, 연건평은 7,950평이며 현재는 판매부, 샘터식당, 새마을금고, 한일물산 양재공장과 메리야스 공장 등이 입주해 있다. 3동 건물은 건평 7,168평의 2층으로, 연건평은 14,336평이다. 현재 시온실고와 오리엔스 금속에서 사용하고 있다. 3동의 크기를 축구장에 비교해 본다면, 3동 건물 하나에만 축구장이 3개가 들어갈 정도로 당시로서는 매우 엄청난 규모였다.
기장신앙촌(2) 건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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