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생활 첫 해를 보내는 이철희 관장

죽을 고비에서 다시 산 인생 하나님 증거에 여생을 바칠 결심
발행일 발행호수 2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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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목포교회에서 시무하는 이철희 관장이 활짝 웃고 있다.

자녀들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랑스러운 천부교인이자 국제적으로 굴지의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 해외에서 교육을 시키면서 저는 한국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중 3년 전에는 장기간 누적된 과로와 영양의 불균형으로 서울대병원에서 폐장의 회생불가 판정을 받았습니다.

산소마스크로 연명하면서 죽음의 고비를 아홉 번씩이나 넘기는 가운데 장례식 준비를 하라는 최후 통첩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한없으신 은혜와 축복과 사랑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되었고, 그후 생명물과 요구르트 ‘런’과 신앙촌식품으로 섭생을 하면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산소마스크로 연명을 하면서도 제가 지은 모든 죄를 다 씻지 못하고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한다는 엄청난 사실이 너무나도 가슴이 메어지도록 슬프고 안타까워 1초1초 순간순간을 쉬지않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애원하면서 기도를 드리려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고, 귓전에서는 저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찬송소리가 늘 떠나지 않았습니다. 꿈속에서 하나님께 귀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산소마스크로 연명할 때
제가 지은 모든 죄를 씻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는게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약사로서의 업무를 깨끗이 정리하고 남은 생을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다면 선한 사업이든 교역의 길이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매진하기로 굳은 맹세를 하였습니다.

2011년 1월 3일 부산교회 부관장으로 첫발을 내디딘 저는 부산교회의 주일학교 전도 활성화를 위해 거의 매일 인근의 초등학교를 찾았습니다. 초대장과 축구공과 음료수를 챙겨 가서 학생들과 땀으로 범벅이 되도록 서너 시간씩 같이 축구를 하고 초대장을 나눠주며 하나님 말씀도 전하고 간식을 같이 먹으며 친분을 쌓아갔습니다.

저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단 한 명도 전도할 수가 없는데 많은 학생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고개 숙여 뼈속 깊이 사무치는 뜨거운 눈물로 감사를 드리고 또 감사를 드렸습니다.

전도된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교육을 잘 시키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해서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는데 전도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9월 30일 갑자기 목포교회로 인사 발령이 나게 되었습니다.

목포교회는 훌륭하신 전임 관장님께서 제단 신축을 위해 다방면으로 힘쓰시고 애쓰셔서 설계도면까지 완성을 해놓은 상태였지만 40여 년 동안 제단 터를 점유하고 있던 문모씨를 내보내는 일이 남아있었습니다. 그 일도 다행이 순조롭게 해결이 잘 되어 하나님께 큰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랜 세월 해결하지 못했던 과제의 실마리를 풀어주셨기에 더욱 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지고, 목포교회의 오랜 숙원사업이자 목포지역 전도 활성화를 위한 구원의 방주인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께 신축하는 일에 한 마음 한 뜻으로 서로 화합하고 협조하여 완수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교역자가 되기를 간절하게 원하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모하며 경외하면서 온 몸과 온 영혼과 온 정성을 다하여 전력질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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