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시작, 한 해의 마무리! 신앙촌에서 김장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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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촌은 신앙인들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도시로, 생산·교육·종교 활동을 위한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본지에서는 ‘윤 기자의 리얼 신앙촌 체험’을 통해 신앙촌의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 편집자주

배추인지 상추인지 아직 구분이 안가는 어린 배추. 귀엽다.

# 9월 12일, 아기 배추를 만나다

한일영농에서 배추를 심는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밭으로 달려갔다. 처음 가본 배추밭. 이랑마다 아기자기한 모종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여리디 여린 연두빛의 모종만 봐서는 배추인지 상추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12월에는 다 자란 배추를 수확할 수 있다고 하니 꾸준히 지켜보기로 했다.

조금 자란 모종에 효소를 주는 모습. 역시 윤기자. 손만 봐도 어설프다.

# 9월 22일, 배추가 무럭무럭 자라길

배추밭에 EM효소를 주러 갔다. EM은 유익한 미생물을 말하는데, 농약 대신 효소를 주면 배추도 잘 자라고, 벌레도 잘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밭에 가보니 저번에 봤던 귀여운 배추 모종들이 아주 조금 자라 있었다. 호미로 모종 옆에 구멍을 뚫고, 숟가락으로 효소를 넣어 묻어줬다. 흙을 토닥토닥 다듬어주며 크고 튼실한 배추가 되길 속으로 바랐다. ̒배추야 얼른 무럭무럭 자라렴.

우람하게 자라난 배추들.

배추를 뽑고 다듬어서 트럭에 가득 실어 보냈다.

#12월 2일, 드디어 배추 수확하는 날

김치가 될 무도 함께 뽑았다.어릴적 만화에서 본 배추도사, 무도사가 세트였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오늘은 배추 수확하는 날. 자주 가보진 못했지만 나름 틈틈이 밭에 들러 애정있게 지켜 본 배추를 뽑으러 간다. 그런데 밭에 도착해서 본 배추는 내가 아는 배추가 아니었다. 겉잎을 떼어내기 전 원시적인 모습을 한 배추는 무척이나 크고 무성했다. 올해는 배추가 풍년이라 더 크다고 했다.

배추는 앞으로 꺾으면 뿌리까지 쑥 빠지는데, 그때 겉잎과 뿌리를 한꺼번에 잘라낸다. 하얀 배추 밑동이 드러나자 그제야 마트에서 보는 배추 같았다.

한참 배추를 뽑는데 새참으로 찐 고구마 한 솥이 왔다. 일하던 영농식구들 모두 솥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의 맛은 진정 꿀맛이었고, 웃음이 절로 났다.

고구마 먹고 힘이 난 우리는 한 줄로 서서 릴레이로 배추를 옮겼다. 손발이 착착 맞는 다는게 이런 기분일까? 배추를 트럭에 한가득 싣고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왔다.

소금에 절여지는 배추들. 곧 있으면 숨이 죽어 축축 쳐진다.

# 12월 5일, 김장의 시작, 속 만들기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김장하러 가기 전, 친구가 양말을 하나 더 신고 가라고 조언해줬다. 김장하다 물에 젖으면 발이 시려울 수 있다고 했다.

종합식당에 도착하니 앞치마, 장화, 마스크 등을 갖춰 입으라는 안내문구가 붙어있었다. 키는 아담하지만 부피는 아담하지 않은 나를 위해 적당한 중사이즈 앞치마를 골랐는데, 누군가 더 긴 걸 고르라고 했다. 짧은 앞치마는 일하다 물이 장화 속으로 떨어질 수 있으니 장화까지 덮어야 된다는 것이었다. 여러 김장 선배들 덕분에 최적의 아이템으로 무장할 수 있었다.

오전에 할 일은 배추를 절이는 일. 커다란 통에 배추를 꽃잎처럼 차곡차곡 예쁘게 펼쳐서 쌓고, 줄기 쪽에 소금을 착착 뿌렸다.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배추는 금새 숨이 죽어 일하다가 돌아보면 높이가 낮아져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가도 될 만큼 커다란 통 7개를 채우고 나서 다음 조와 교대를 했다.

오후에는 김치 속을 만들었다. 물과 고춧가루, 생강, 새우젓, 청각, 쪽파, 무채 등을 넣고 잘 섞이도록 버무렸다. 표현하자면 갯벌을 두팔로 계속 휘젓는 느낌이었다. 꽤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속을 만들고 나니 벌써 하루가 다 갔다. 내일은 김치를 만드는 날. 기대가 된다. 아니 사실 조금 걱정된다.

# 12월 6일, 대망의 김장하는 날

김장하는 파워레인져들. 신앙촌 자원봉사자들이다.

드디어 김치를 만들러 간다. 신앙촌 김장은 규모가 커서 주민들이 오전과 오후로 팀을 나눠 자원봉사를 한다. 오전에는 입사생 봉사팀이 절인 배추를 깨끗이 씻어놨다고 했다. 오후에는 나를 포함한 여청, 소비조합팀은 배추에 속을 넣기로 되어 있었다.

도착해보니 봉사자들은 벌써 준비를 마치고 완전 무장해 있었다. 하얀 모자, 하얀 앞치마, 하얀 마스크에다가, 김장의 상징 분홍 고무장갑까지… 김장을 위해 모인 파워레인져 같았다. 든든한 그 모습에 김장 초보인 나는 마음이 놓였다.

배추 앞에 섰지만 어찌해야 할 지 몰랐다. 속을 많이 넣으면 짜고, 조금 넣으면 간이 안 배니 적당히 넣어야 한다는데, 그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 초짜에겐 어려운 주문이었다. 곁눈질을 해가며 옆 사람과 비슷한 색이 나오게 했다. 잘 하고 있는 건가 궁금해서 앞에 언니에게 물어보니, 배추 겉 잎부터 속을 넣으면 편하다고 했다. 처음부터 물어볼걸 그랬다. 반대로 하고 있었다.

배추를 뒤집어 잡고 다시 속을 넣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옆에 쌓인 배추가 줄지를 않는 것이었다. 손이 점점 무뎌지고 느려졌다. 하지만 밝은 표정으로 즐겁게 일하는 어른들을 보며 다시 힘을 냈다.

4시쯤 되자 슬슬 끝이 보였다. 마무리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신앙촌 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배추 조각을 치우고 대야를 닦고 뒷정리를 했다. 항상 느끼지만 이곳 사람들은 손이 광장히 빠르고 일을 잘한다. 짐을 나르면 이삿짐센터 뺨치고, 김치를 담가도 공장 수준이다.

식당에서 저녁식사로 우리가 담근 김치와 떡국이 나왔다. 익은 김치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직접 담가서인지 김치가 참 맛있었다. 따끈한 떡국과 갓 담근 김치에 하루의 피로가 모두 녹아났다.

# 에필로그

고놈 참 튼실하네. 합격! 나와 함께 종합식당으로 가자.

사실은 김장을 하며 민폐가 될까봐 꽤나 걱정했다. 실수를 한다든지, 손이 너무 느려서 남에게 피해를 준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많이 노력했지만 역시나 손이 느리고 서툴렀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따뜻하게 도와줬다. 무거운 것은 같이 들자고, 어려운 것은 도와준다고, 또 허리 아프면 잠시 쉬라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마음의 짐을 덜고 김장 파워레인져의 일원으로서 기쁘게 김장을 마쳤다.

배추의 속을 채우듯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동지애를 느꼈다면 요즘 말로 오글거리는 것일까? 아무튼 겨우내 먹을 김장을 하고 마음이 부자가 된 나는 오늘 내가 담근 것이 김치가 아닌 행복일지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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