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람나무를 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설교 말씀에 푹 빠지다

남삼호 관장(2) / 부산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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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그해 12월에는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셨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신문지상에서 하나님과 전도관에 대해 악의적으로 비방하는 기사가 떠돌고 동네 사람들이 제단에 몰려와서 공연히 돌을 던지는 일도 있었지만, 우리 교인들은 그럴수록 더욱 똘똘 뭉치며 열심히 제단에 나왔습니다. 이 역사를 가로막으려 하는 세력이 있어도 결단코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전보다 더욱 강하게 각오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59년 11월, 전도사님이 말씀하기를 전국에서 건강하고 씩씩한 청년 교인들을 모집한다고 했습니다. 당시는 소사신앙촌에 목재를 공급하기 위하여 당국의 허가를 받아 지리산 산판에서 벌목 작업을 했는데 그 산판에서 일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전부터 소사신앙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도 신앙인들이 모여 사는 신앙촌에 가서 살고 싶다.’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던 저는 ‘산판에서 일하는 것은 신앙촌에 사는 것과 다름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판에 가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처음에는 집을 떠나는 것을 걱정하셨으나 “네가 전도관에 다니면서 한결 밝아지고 즐겁게 지냈으니 네가 원한다면 산판에 가거라.” 하며 허락해 주셨습니다. 일하던 공장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공장 사장님은 “월급을 더 줄 테니 계속 일해 달라.” 하고 권면하셨지만 제 마음은 이미 산판에 가 있었습니다. 같은 제단의 청년 두 명과 같이 산판으로 떠나는 날 부모님과 제단 교인들, 회사 동료들과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여수행 배에 올랐습니다. 뱃고동 소리가 울리고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이 길을 열심히 가겠습니다.’ 하며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1959년 소사신앙촌 건설에 필요한 목재 공급위해 지리산에 산판 운영
건강하고 씩씩한 청년 모집에 자원
가보니 훌륭한 숙소와 식당까지 있어

산판 구역에 도착해 보니 좋은 나무로 지은 아담한 제단과 숙소, 식당까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앞서 오신 분들이 터를 닦고 건물을 짓느라 수고를 많이 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업장에서는 벌목부터 운송까지 각 작업별로 반을 나누어 일했습니다. 저는 목재를 운반하는 목도반에서 일했는데, 발걸음이 맞아야 목재가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반할 수 있기 때문에 구령에 따라 박자를 맞추며 운반했습니다. 벌목한 나무 중에 최고 좋은 목재는 오만제단의 건축 재료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좋은 나무를 운반하여 차에 싣고 나면 “이 나무가 성전을 짓는 데 쓰이면 정말 보람되겠다.” 하고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산판에서 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머리맡에 물을 떠 놓으면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축복해 주신다고 하셔서 매일 그 생명물로 몸을 닦았습니다. 생수 마찰을 하면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하며 어느새 몸이 훈훈해져서 엄동설한에도 추위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생수 마찰을 계속하다 보니 나중에는 피부가 맑고 고와져서 어린애기 살결같이 빛나고 투명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리산에서 북을 치고 힘차게 찬송 부르며 새벽예배로 하루를 시작
목재를 옮길 때나 서로를 부를 때 `천국`외치면 `들어가자`로 화답해
최고로 좋은 목재는 오만제단 건축 재료가 된다는 말에 보람 느끼고
나팔수가 높은 산에서 트럼펫으로 찬송을 할 때 그 소리는 마음을 깊이 울려

새벽예배 시간에 북을 치면서 힘차게 찬송을 부르면 깊은 산골짜기에 찬송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작업장에 집합하여 먼저 예배를 드리고 하루 일을 시작했습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트럼펫 소리가 울리면 흩어졌던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면서 모여들었는데, 이쪽에서 “천국” 하고 외치면 저쪽에서 “들어가자!” 하면서 메아리도 “가자-자-자-” 하고 울렸습니다. 목재를 운반할 때나 서로를 부를 때 “천국” “들어가자.”는 우리들의 구호였습니다. 가끔씩 나팔수가 높은 곳에서 “이 산과 저 산이 마주쳐 울려 하나님 은총을 찬송하네.” 하는 찬송을 트럼펫으로 연주할 때면 그 소리가 마음을 깊이 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산판 책임자 분이 하나님께 면회를 다녀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님께서 옥중에서 나오시면 산판에 오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옥고를 치르신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이라도 편히 쉬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쁜 양옥집을 지어 놓고, 오며가며 그 집을 바라보면서 오시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옥에서 나오신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오만제단에서 예배를 인도하시고 전국으로 집회를 다니신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모진 옥고를 치르신 후에도 오직 감람나무 가지들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으시고 은혜를 부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산판에서 1년 정도 생활한 후 산판 작업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저는 다른 분들과 함께 소사신앙촌에 입촌하게 되었습니다. 입촌하는 사람들은 선물 받은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차량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들뜬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면서 신앙촌을 향했습니다. 신앙촌 입구에 들어서자 꿈에도 그리던 신앙촌에 왔음을 실감하면서 감격과 함께 기쁨의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저는 소사신앙촌 주택 건설대에 소속되어 일하면서 A동 주택 건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소사신앙촌에 들어와 오만제단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안 보일 정도로 이슬성신 임하는 것을 목격해

하루는 소사신앙촌 오만제단에서 하나님의 인도로 예배를 드릴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설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보였는데, 제단 안에 안개 같은 것이 자욱이 내리면서 단상에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점점 가리더니 나중에는 하나님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전에 교인들로부터 ‘이슬 같은 은혜가 뽀얗게 내린다.’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아! 저것이 말로만 듣던 이슬 은혜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힘차게 설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구라도 알 수 있도록 쉽게 비유를 들어 주시고 눈앞에 보이듯이 실감 나게 설명해 주시니 저는 말씀에 푹 빠져서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감람나무에 대한 성경 구절을 하나하나 풀어 주시는 말씀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고 ‘그렇구나! 이슬 같은 은혜를 주시는 감람나무이시구나!’ 하면서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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