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사가 돼 한국 땅에 나타나신 동방의 의인을 증거하다

남삼호 관장(3) / 부산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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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소사신앙촌에서 얼마간 생활했던 저는 1962년 군에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청평의 화학부대에서 복무할 때는 주변에 제단이 없어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날인가 길거리에서 신앙촌 캐러멜 포장지가 떨어진 것을 보고 ‘언제나 제단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얼마 후 다행히 춘천 지역 부대로 이동하면서 춘천제단에 다닐 수 있게 되어 그렇게 기쁘고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군에 입대한 후 주위에 제단이 없어
예배를 못 드려 무척 안타까워 하는 중에
길에 떨어진 신앙촌 캐러멜 포장지 보고
‘언제나 제단에 갈 수 있을까?’ 눈물

제대 후 삼천포제단에 계속 다니던 저는 전도사님의 권유로 1967년에 전도사 수강을 받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전도사님들은 모두 설교도 잘하시고 훌륭하시던데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며 주저했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할 수 있다는 전도사님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냈습니다. 서울 2중앙 전도관에 마련된 시온신학원에서 전도사 수강을 받을 때는 성경 교육뿐 아니라 신축 제단에 가서 건설 일을 돕고 장례예배와 구역예배에 참석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수강을 마친 후 삼천포제단 산하의 죽림지관에서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교역생활을 하면서 놀라운 일들을 체험하는데
한번은 16년된 정신병자가 하나님 사진을 계속 바라보더니
얌전해져서 온 가족이 전도되기도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도하던 중에 박남식이라는 학생이 제단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남식이의 아버지는 정신이상으로 16년이나 머리를 깎지 않아 땅에 끌릴 정도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분이었습니다. 아무한테나 연탄집게를 휘두르고 지나가는 버스를 가로막는 등 이상한 행동을 계속하니 동네 사람들이 모두 무서워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그분을 만났을 때 “긴 머리를 깎읍시다.” 하고 이야기했더니 “머리는 친구들이 예복을 가져오면 그 옷을 입고 깎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승만, 신익희…….” 하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지나가는 말로 “저기 산언덕에 전도관이 있으니 한번 나와 보라.” 했는데 며칠 후 정말로 그분이 제단에 찾아왔습니다.

당시 예배실의 한쪽 벽에는 하나님께서 기도하시는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그분이 예배실 문을 열더니 하나님 사진을 1분 정도 계속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냅다 도망을 쳐서 자기 집으로 달아나더니 그때부터 방 안에 누워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주야로 동네를 헤집고 다니던 분이 계속 누워 있어서 나중에는 등에 욕창까지 생길 정도였습니다. 얼마 후 이발사를 데려가서 머리를 깎게 했더니 그분은 순순히 머리를 깎고 말끔한 모습이 되었으며, 그 소문이 퍼져서 동네 사람들이 저를 보고 “어떻게 남식이 아버지 머리를 깎았어요?” 하며 놀라워했습니다. 그때부터 남식이 아버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조용히 집에서만 지냈으며,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던 남식이네 식구들은 비로소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남식이네 형제와 어머님이 제단에 열심히 다니게 되었고, 특히 남식이 모친이 열심히 전도하셔서 제단에 오는 어른들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학생들도 계속 전도가 되어 새벽예배에 많이 참석했으며 교인들이 늘어나니 제단에 활기가 넘쳤습니다.

거제도에 제단을 신축하는데
교인들이 시골집처럼 지으려 해
제가 `하나님의 성전이니 우리가 사는 집보다 잘 지어야 한다`고 설득

그 후 1969년에 경남 거제도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거제도에서는 하나님 집회에 참석했던 청년 한 명이 주축이 되어 스무 명 정도가 전도사를 보내 주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과 함께 가정집에서 예배드리면서 제단 신축을 준비하는 한편으로 예배 시간마다 ‘감람나무’와 ‘동방의 일인’에 대해서 설교를 했습니다. 성경 이사야 41장에 기록된 ‘동방의 땅 끝, 땅 모퉁이, 해 돋는 곳’이 바로 한국 땅이며 박태선 장로님은 한국에 나타나신 동방의 일인이심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이슬성신이 찍힌 사진을 보여 주면서 “이렇게 은혜가 내리는 것을 저도 직접 보았습니다. 이 은혜를 내리시는 분이 바로 감람나무 박태선 장로님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소사와 덕소신앙촌의 아름다운 전경을 사진으로 보여 주면서 “은혜 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라고 설명해 주었더니 교인들 모두 감탄하며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교인들은 틈만 나면 저를 찾아와 예배를 드리자고 했으며 예배에 참석하는 아이들도 점점 늘어났습니다. 장소가 좁다 보니 집 마당에 멍석을 깔고 예배드리면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며 관심이 쏠리기도 했습니다.

교인들과 함께 제단 신축을 의논했더니 교인들은 시골집처럼 돌과 흙을 섞어서 제단을 지을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집보다 좋은 재료를 써서 지어 봅시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던 중 1970년 기장신앙촌 건설이 시작되면서 저는 제단 청년들과 함께 가서 건설 일을 도왔는데, 하나님께서 거제도제단의 신축 계획을 도관장님께 들으시고는 착수금을 주셨습니다. 그때부터 대지를 구입하고 기초 공사에 필요한 돌과 모래를 모았으며 기장신앙촌에서 수동식 벽돌 기계를 빌려와 건축에 필요한 벽돌 3,000장을 청년들과 함께 찍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다고 생각하니 힘든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1970년 거제도 마을 한복판에 벽돌로 지은 전도관 건물이 완공되자
초가집뿐이던 촌 동네에 자랑거리가 생겼다고 마을사람들이 기뻐해
개관예배날은 교인들과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동네 잔치가 열린 듯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제단 부지에 벽돌이 올라가면서 건물의 모습이 나타나자 동네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였고, 주일학생들은 언제 제단이 다 되느냐며 매일같이 물어보았습니다. 마침내 새하얀 건물의 제단이 완공되자 초가집뿐이던 동네가 환하게 보인다면서 촌 동네에 자랑거리가 생겼다고 마을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개관예배를 드리던 날은 우리 교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와서 동네잔치가 열린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주일학생이었던 아이가 장성하여 지금 신앙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볼 때면 교역자로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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