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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직접 체험하니 이 분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주 일도교회 장명이 권사 신앙체험기 (1)

1946년생인 저는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섬 제주도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저희 집은 형편이 그리 넉넉지 못했습니다. 6.25 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어려웠던 시기, 저는 강냉이 가루나 우유 가루 등 교회에서 나눠주는 구호물자를 받고 싶어서 집에서 가까운 장로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꾸준히 교회를 다니던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육지에는 박태선 장로님이라는 유명한 부흥강사가 있는데 […]

지금도 변함없이 내리시는 성신의 은혜

<다시 보는 신앙체험기> 기장신앙촌 전경옥 (2)

(1편에 이어) 또 그해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캄캄한 새벽녘에 하나님께서 갑자기 전화하셔서 “동쪽 하늘의 별을 보라.” 고 하셨습니다. 제가 거처했던 방에서는 2동 건물에 가려 하늘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그 전화를 받고 바로 중간 초소 경비실로 뛰어나갔습니다. 현재 소방차고 위치입니다. 그곳에 도착하여 동쪽 하늘을 바라보니 많은 별들과 함께 커다란 별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

죄 짓지 말고 그 세계 같이 가자 하시던 그리운 하나님

1958년 6월에는 현재 소사 천부교회가 위치해 있는 노구산 정상에서 집회가 열렸습니다. 노구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인파로 산이 온통 뒤덮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때 예배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산 전체에 울려 퍼졌고, 은혜를 받기 위해 집회장에 온 사람들은 쏟아지는 비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뜨거운 열기 속에서 힘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듬해 저는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군복무를 […]

죄를 소멸 시키시는 권능의 하나님

<다시 보는 신앙체험기> 기장신앙촌 전경옥 (1)

저는 1936년 평안남도 남포에서 1남 4녀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포목상을 크게 경영하고 계셨기 때문에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환경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45년 8․15 해방이 되고 북쪽이 공산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저희 집은 부르주아라 하여 재산 몰수를 당하였고, 어머니는 그런 안타까운 상황을 겪으며 가슴앓이를 하시다 화병에 걸리셨습니다. 그러다가 6․25 […]

“박 장로님은 하늘의 권능을 가지신 분이구나!”

저는 1938년 경북 월성군 외동면의 작은 마을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매우 성실한 분들이셨지만, 6.25전쟁 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이웃집에서 쌀을 얻어먹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15살 때부터 학교에 가는 대신 산에서 나무를 베어 장터에 팔아 가난한 살림에 보태곤 했습니다. 매 끼니 챙겨 먹기도 힘들었던 곤궁한 삶 속에서 저는 신을 의지하고 싶은 […]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깨달은 것은 평생의 가장 큰 복”

(지난호에 이어) 1970년 세 번째 신앙촌 건설을 위해 기장으로 내려가 건설 현장에 나가보니 땅이 갯벌 같아서 발을 내디디면 무릎까지 푹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그 진흙을 다 긁어내고 건물을 세우는 일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마침 현장에 오신 하나님께서는 건설대를 두 팀으로 나눠 누가 더 빨리 흙을 퍼내나 시합을 해보라 하셨습니다. 의욕에 넘친 사람들이 불도저에 올라 힘차게 시동을 걸었지만 […]

해일을 일으키시며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 이심을 발표

신앙체험기 기장신앙촌 홍창홍 승사(3. 끝)

(지난호에 이어) 그 후 1968년에 저는 관장님의 권유를 받아 교역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서울 각지에 중앙전도관이 세워지고 그 산하에 십여 개의 제단이 개척되면서 전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였습니다. 저는 서울 3중앙 산하의 보문동제단과 성수동제단에서 시무하면서 교인 분들과 함께 전도를 했습니다. 그 무렵 군대에 있던 둘째 남동생이 의병 제대를 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시름시름 앓다가 […]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기쁨의 은혜”

울산교회 이형례 권사 신앙체험기 (1)

저는 1943년 전라북도 김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위로는 오빠가 둘, 아래로는 여동생이 셋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께서 쌀장사를 하시며 저희 6남매의 생계를 꾸려 나가셨습니다. 저는 17살이 되면서부터 어머니를 대신해 빨래도 하고, 쌀로 죽을 끓여서 동생들 식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홀로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는 무척 엄격하셔서 날이 조금만 어두워져도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 짓지 말라’는 말씀을 생의 좌우명으로

신앙체험기 기장신앙촌 홍창홍 승사(2)

그렇게 안찰을 받은 후로 저는 ‘장로님께서 나를 처음 보실 텐데 어떻게 내 죄를 아시나?’ 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람나무는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시는 분이 아니신가. 은혜를 내려서 죄를 씻어 주시는 분이 어찌 내가 지은 죄를 모르시겠나. 안찰하시며 죄를 지적하시는 것도 감람나무가 아니시면 하실 수 없겠구나.’ 그렇게 깨달아지면서 의문을 […]

“하나님의 권능이 이 곳에 함께하심을 보여주셔”

신앙체험기 기장신앙촌 진영섭 퇴임관장(3) 끝.

비쩍 말랐던 고인의 몸이 보기 좋게 살이 오르고, 얼굴은 광채가 날 정도로 환하게 피어나 이 모습을 지켜 본 유족들은 자기가 아는 지식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며 무척 놀라워해 하나님의 권능이 천부교에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셔서 무척 감사드려 (지난 호에 이어) 부산 기장신앙촌이 완공된 1970년대 즈음, 당시 하나님께서는 매주 일요일이면 서울로 올라가셔서 예배를 직접 인도하시고 다시 기장으로 내려오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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