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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맑게 사는 것이 가장 귀하다는 생각으로

백태신 승사(3) / 기장신앙촌

그 후 하나님께서는 경기도 부천에 신앙촌을 건설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수십 개의 공장부터 유치원과 학교, 예쁜 주택과 예배드리는 제단까지 속속 지어진다는 소식을 들으며 저희 식구들은 신앙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때 부모님과 오빠, 올케언니와 어린 조카가 같이 살았던 저희 가족은 소사신앙촌에 주택을 미리 구입해 두었습니다. 살고 있는 집이 팔리면 신앙촌으로 이사하려고 기다리는 중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추운 […]

무슨 일이 있어도 요동치 않고 이 길을 따라가리라

백태신 승사(2) / 기장신앙촌

하루는 박 장로님께서 윤치영 장관 댁에 가셔서 사람들에게 안찰해 주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윤 장관은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후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전도관에 열심히 나온다고 했습니다. 저도 안찰 받고 싶은 마음에 그 댁을 찾아갔더니 응접실에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앞사람이 안찰 받을 때 보니 박 장로님께서 눈과 배에 손을 살짝 대시며 […]

‘목사는 하나님의 향기를 전혀 모르나 보다’

백태신 승사(1) / 기장신앙촌

1933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저는 사업가이신 아버지를 따라 중국 톈진과 베이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8·15 해방 전에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가회동에서 살았는데 장로교인이셨던 어머니는 집과 가까운 안동 장로교회에 열심히 다니셨습니다. 당시 안동교회는 윤보선 의원을 비롯한 사회 저명인사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 교회 목사 딸과 친구로 지내며 성가대도 하고 교회 활동에 재미를 붙이게 됐습니다. 그 […]

날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복례 (3) / 기장신앙촌

강화도에서 소사신앙촌으로 돌아온 후 김 권사님 가족들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울에 나가게 됐습니다. 그래도 저는 신앙촌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며 지냈지만 하나님께서 영어의 몸이 되시고 공장이 멈추는 어려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서울로 나왔습니다. 얼마 후 하나님께서 옥에서 나오셔서 더 힘차게 덕소신앙촌을 건설하시고 소사에 있는 사람들이 덕소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게 부러울 수가 […]

전도관 다니며 웃는 일 많아져 ‘여기 오니 이렇게 편안하구나!’

이복례 (2) / 기장신앙촌

이만제단에 다니면서 저는 “요새 좋은 일 있어요?”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항상 표정이 없던 제가 자주 웃는 것을 보고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인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을 여의고 마음 붙일 곳이 없었던 저는 몹시 외로웠습니다. 한겨울 시냇물에 빨래할 때면 재잘거리며 학교 가는 또래들을 바라보다 ‘왜 난 엄마가 없을까.’ 하며 꽁꽁 언 손으로 눈물을 훔치곤 했습니다. […]

사람들이 병이 나았다고 외칠 때마다 집회장에는 환호소리가 넘쳐

이복례(1) /기장신앙촌

저는 1938년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現 구리시 수택동)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돌이 되기 전에 부모님을 여의고 언니들 손에서 자란 저는 고달픈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결혼한 큰오빠네 집에 얹혀살다가 전주로 입양됐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 집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 후 열여섯 살부터 남의 집 살이를 하며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부모 없이 막되었다는 핀잔을 듣지 않으려고 항상 […]

아름답고 성결한 마음 주시기를 오늘도 기도 드려

김장예 집사(3) / 기장신앙촌

당시 신앙촌 캐러멜과 카스텔라는 맛있기로 유명해서 인기가 무척 좋았습니다. 약속한 공급량을 맞추기 위해 공장에서는 시간을 아끼며 생산했는데 하루는 하나님께서 제과 공장 사람들을 부르셔서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쁘게 일하는 중에도 자유율법을 지킬 것을 당부하시며 마음과 생각으로 죄를 짓지 않는지 항상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유율법에 비추어 합당한 모습이 되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

스스로 생활을 돌아보며 죄짓지 않으려고 늘 조심

김장예 집사(2) / 기장신앙촌

집회가 끝날 무렵 원효로에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전도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다음 날 원효로에 찾아갔더니 기차처럼 기다랗게 생긴 예배실에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일 전도관에서 철야하고 다음 날 새벽예배를 드렸는데, 날이 갈수록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전날 가지 않으면 새벽예배 때 자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제단에서 기도드리고 있으면 어쩐 일인지 머리카락 타는 […]

박 장로님 집회에 와서 병 나은 사람들을 보니 무척 신기해

김장예 집사(1) / 기장신앙촌

저는 1934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습니다. 4남매 중 외동딸이었던 저는 아버지가 큰 양장점을 운영하시는 유복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희 식구 중에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없었지만 저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몇 년 동안 꾸준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주일학교에서 배우는 성경 이야기가 참 재미있었는데, 성경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따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하나님 말씀대로 바르게 살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

아름답고 성결한 자격 갖출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려

권기남 권사 / 기장신앙촌

그런데 제가 더욱 놀랐던 것은 친정아버지가 안동전도관에 다니시는 것이었습니다. 완고한 안동 양반인 아버지는 장로교회든 전도관이든 전부 못마땅해 하셨는데 어떻게 전도관에 나오시게 됐냐고 어머니께 여쭤 봤습니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네 아버지가 너를 보고 이러시더구나. ‘기남이가 전도관에 다니더니 딴사람이 됐어. 저 아이 고집은 누가 꺾는다고 꺽어질 리가 없는데 마음이 저리도 부드럽게 되는 것은 인력으로 할 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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