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 건설의 신화(4) 건설의 시작

위대한 기적의 원천은 하나님 권능
발행일 발행호수 2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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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아무것도 없는 無에서 큰 도시 신앙촌 건설, 위대한 기적의 원천은 하나님 권능`

사람들이 추위로 건설 활동을 중단하는 겨울철에 소사신앙촌 건설은 시작되었다. 일단의 건설대가 1957년 11월 초순 소사읍 범박리 채소밭에 천막을 치고 일대 43만여 평에  신앙촌 건설을 시작한 것이다.

이 지역은 원래 척박했던 땅으로 복숭아밭과 뱀이 무척 많았으나 하나님께서 이 땅을 축복하시니 뱀이 서로 엉켜 죽었고, 건설대들은 이를 가마니에 담아다가 휘발유를 뿌려서 태우기도 했다고 한다.

만여 명의 인구가 아무 불편함이 없이 살 수 있는 큰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최신 장비와 인력을 갖춘 오늘날의 대형 건설회사라 할지라도 몇 년간에 걸친 설계와 토지 매입, 막대한 원자재의 확보와 이를 위한 천문학적 자금이 필요하다.

1957년 당시에는 신앙촌과 같은 도시를 설계하고 시공할 전문 건설업체도 없었고 계약금이나 중도금을 주고 입주를 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 때는 6·25동란 직후의 어려운 시절로 건설장비라고는 질통, 지게, 곡괭이, 삽 등 원시적인 도구와 몇 대의 트럭과 불도저 등이 전부였다.
건설도 건설이려니와 만여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는 일터와 직장을 마련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로써 당시의 경제적 상황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위대한 기적의 원천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권능이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기성교회에서는 사람이 사는 동안 초가집 하나 짓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어떻게 박 장로가 수만 명이 다 들어갈 수 있는 집들을 짓고 그들을 먹여 살릴 수가 있겠느냐 하고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되고도 남음이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일이 끝나면 건설대원들에게 특별히 안수와 안찰을 해 주셨다. 안수와 안찰을 받은 건설대원들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횃불을 들고 작업을 해도 피곤함을 모르고 기쁨이 넘쳐 서로 더 많은 일을 하려고 욕심을 부릴 정도였으니 하룻밤이 지나고 나면 건물이 몇 채씩 늘어나는 기적 같은 속도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건설대원들에게는 베이지색 남방과 멜빵바지를 작업복으로 맞추어 주셨고, 하나님께서도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일을 하셨는데 그 모습이 흡사 하늘의 천사처럼 보였다고 한다.

아침에는 돌을 나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수를 해주셨는데 그 많은 사람들의 안수를 다 해주시면 구슬땀을 뚝뚝 흘리시고 하나님의 얼굴이 파랗게 변할 정도가 되어서 보는 이가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리고 낮에는 건설현장에서 작업배치며 지휘를 해 주셨고, 또한 집터를 파면 모래나 자갈 등을 지워주시고, 콘크리트를 비빌 때면 물을 부어 주시고 시멘트도 섞어 주시는 등 건설대원들과 처음부터 끝까지 동고동락을 함께 하셨다. 당시 건설대원에 참여했던 박정윤 집사(79. 기장신앙촌)의 증언을 들어본다.

“1957년 11월 소사신앙촌 건설이 시작되면서 저는 1차 건설대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소사신앙촌을 건설할 경기도 부천시 범박동에 도착한 저희 건설대원들은 먼저 배추밭에 천막을 치고 숙소를 마련한 다음 건설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작업시간 중에도 찬송을 힘차게 부르며 일을 하는 저희들은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고 그저 기쁘고 즐겁기만 하였습니다. 야간 작업시에는 건설 현장 둘레에 횃불을 쭉 켜놓고 일하였는데, 그 모습 또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임시로 마련된 숙소에 기거하시면서 멀리 지방에 집회를 인도하고 오신 후에도 건설현장 여기저기를 다니시며 저희들과 함께 직접 건설작업을 하셨습니다. 작업이 끝나면 건설대원 모두에게 안수를 해 주시고 생명물을 축복해 주셨으며, 숙소에 돌아가셔서도 제대로 쉬지 못하시고 밤새도록 창문을 열어놓고 축복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피곤이 금방 물러갈 것이라고 하시며 내복을 사서 축복해 주셨고, 작업복으로는 국방색 멜빵바지와 베이지색 남방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해 주시니 저희들은 동지섣달 추운 겨울에도 추위를 느끼지 못하였고, 다른 잡념 같은 것은 전혀 없이 오로지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소사신앙촌에 큰 우물을 파서 그 우물에 쌓을 돌을 나르던 때의 일입니다. 사람들이 오만제단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나오면서 돌을 하나씩 이고 우물 쌓는 곳으로 내려가 돌을 내려놓으면,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계수리에 주택을 지을 때에는, 새벽예배를 마친 사람들은 모두 시온국민학교로 가서 흙벽돌 찍어놓은 것을 가지고 계수리로 향했는데,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가 계셨다가 흙벽돌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손바닥이 다 갈라져 피가 나도 한 사람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안수해 주셨던 것입니다.”

조영철(59, 한국천부교유지재단 이사장)의 증언.

“이때 신앙촌 건설대원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횃불을 밝혀들고 찬송을 부르며 분주히 움직이는 광경은 마치 개미떼들이 일하는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그때 현장에서 종사했던 분의 말에 의하면 땀 흘려 일할 때 주시는 은혜의 양이 매우 커서 힘든 일만 골라 하고, 혹시 질통을 남에게 뺏길까봐 숨겨놓고 잠을 자는 일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밤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주무시지도 않고 깊이 잠든 건설대원들을 두루 살피시고 ‘쉭 쉭’ 부시며 축복해 주셨는데 그 은혜가 있었기에 그들은 편히 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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