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 건설의 신화(2) 현대 홈타운②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교단의 집념 전국 최대 재개발 단지 이뤄내
발행일 발행호수 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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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천부교 교단이 교단 부지 7만 여평과 매입 부지 3만 여평을 내 놓아 가능하게 된 소사 신앙촌 재개발 사업은 현대건설이 시공하여 범박동 현대 홈타운 아파트로 탄생되었다. 3,000여 세대가 입주를 완료하였고 1,500여 세대가 현재 입주 중이며 1,000여 세대는 내년 5 월중에 입주할 예정이다. 아파트를 보상 받은 신앙촌 입주자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김석원 권사(80)는 6ㆍ25 때 황해도 황주에서 피란을 와서 서울 염리동에서 살았다. 그는 자기 몸의 지병을 고쳐 보려고 이만제단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이유도 없이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없었으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병원에 가보면 간이 나쁘다고 하기도하고 혹은 위장이 나쁘다고 하기도 하였다.

이만제단에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김 권사는 1958년 4월에 신앙촌에 입주하였다. 염리동에서 방 하나 부엌 하나의 무허가 주택에 살다가 그것을 판돈 30만원을 가지고 신앙촌에 입주한 것이었다. 그 후 김 권사는 제과공장에서 목수로 근무하였고 기장신앙촌 건설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한때 고생도 많이 하였으나 1남1녀는 잘 자라 주었고 장남은 대학교까지 마쳤다. 김 권사의 병은 신앙촌에 들어와서 일한 후 언제 나은지도 모르게 깨끗이 나아서 아무리 힘든 일을 하여도 피곤을 모를 정도로 건강하게 되었다. 현재 나이 80이 된 김 권사의 온화한 얼굴은 60대로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반세기 동안을 변함없이 신앙촌에서 살며 아무리 어려워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신앙의 절개를 지켜온 김 권사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 졌다. 소사신앙촌이 재개발되면서 그에게 아파트가 보상된 것이었다. 1958년 그가 사서 입주하였던 2.5 평의 5배가 넘는 면적의 아파트가 보상되었는데 거기다가 아들이 보태어 35평짜리 중형 아파트가 되었다.

아파트에 입주하는 날 그는 이북에서 피란을 내려와 가난을 벗지 못하고 일생 갖은 고생을 다 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님의 은혜로 고급 아파트에 살게 된 것이 꿈만 같았다.  인하대학 항공과를 거쳐 대한항공에 근무하는 아들과 자부의 극진한 효도를 받으며 손자 손녀의 재롱 속에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는 김 권사는 신천리에 근무하면서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끝끝내 하나님을 배반치 않고 그 은혜 안에 살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한없이 축복해 주심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있다.

김동성 권사(64)는 1958년 11월 소사신앙촌에 들어와 농장과 제과부 등에서 직장 생활을 하였고 1961년 덕소 신앙촌에서도 직장을 가졌었다. 부천에서 살면서 사업에 실패하여 집을 팔아 빚잔치를 하고 나니 수중에 150만원이 남아 있었다.
김 권사는 그 150만원을 가지고 1983년 5인의 가족을 이끌고 소사신앙촌에 입주하였다. 그 돈을 가지고 소사신앙촌에 17 평짜리 집을 샀던 것인데 소사신앙촌이 재개발이 되면서 조금 더 보태 이번에 40 평짜리 아파트를 보상 받은 것이었다.

아파트에 처음 입주하던 날 김동성 권사는 너무 기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것이 진정 내 집인가? 이게 꿈은 아닌가 하고 내 몸을 꼬집어 보았습니다. 사업 실패로 인해 겪었던 모진 고통의 세월이 생각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내 집이 실감 나지 않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발이 땅에 닿지 않고 구름을 타고 하늘을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딸 손미양(한일물산 노량진센터 경리계장)과 아들 병진군도 한결같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좁은 집에서 새우잠을 잘 때는 너무 어려웠었는데 정작 이렇게 좋은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니 너무나 좋아요.”

그러면서 김동성 권사는 동네 미장원에 갔다가 미용사와 다툰 이야기를 하였다. 그 미용사가 신앙촌 이야기를 하면서 신앙촌에 입주하는 사람들은 논 팔고 집 팔아 신앙촌에다가 다 갖다 바치고 거지가 된다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열이 난 김동성 권사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입니까? 내가 신앙촌에 입주한 사람인데 밖에서 사업에 실패하여 단돈 150만원을 가지고 내 집을 사서 살다가 신앙촌이 재개발 되어 40 평짜리 아파트를 보상 받았습니다. 나는 신앙촌에 들어와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좀 똑똑히 알고 말 하세요.” 하고 면박을 주었더니 그 사람은 “소문이 그렇게 나서…” 하고 말끝을 흐리더라는 것이었다. 김동성 권사는 기성교회의 모략으로 이런 헛소문이 초창기 때부터 나돌아 속이 상 하다고 하였다.

현재 부천시 원미동에서 시온쇼핑 매장을 경영하는 김동성 권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신앙촌에 입주한 교인들에 대한 교단의 특별한 배려가 없었다면 내 일생을 벌어도 어떻게 이런 좋은 아파트에서 살아 볼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어찌 다 보답할 수 있을런지요. 오직 깊이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라고 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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