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촌 건설의 신화(13) 신앙촌을 방문한 사람들①

UNKRA 콜터 단장, "한국이 잘 살 수 있는 길 보여줘"
발행일 발행호수 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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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 신앙촌을 방문한 윤치영씨(왼편에서 세번째)와 그 오른편으로 콜터장군, 임병직 대사.

신앙촌 방문한 UNKRA 콜터 단장  “한국이 잘 살 수 있는 길 보여줘”

경인가도 소사에 일찍이 상상도 못했던 신앙촌이라는 아름다운 도시가 건설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방문객들이 몰려 오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종교인, 교수, 대학생, 사업가, 군인, 공무원, 정치가 등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었다.

주 유엔대사 임병직씨와 국회의원 윤치영씨가 뉴욕타임스 기자를 대동하고 서울 중앙전도관을 둘러본 후 소사신앙촌을 방문하였다.

1958년 3월 23일자 신앙신보에 는 임병직대사와 윤치영의원의 신앙촌 방문기가 다음과 같이 실려있다.

“U N 주재 상임대사 임병직씨는 앞으로 있을 한일회담 수석대표로 참석하기 위하여 서울에 체류하고 있는데 임 대사는 여정의 피곤함을 개의치 않고 서울 중앙전도관과 소사(素砂)에 건설 도중에 있는 신앙촌을 방문하였다.

이 자리에서 임 대사는 선하고 좋은 일을 위하여 받는 박해는 달게 받고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박태선 장로에게 격려의 인사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45분간에 걸쳐 박태선 장로의 안내를 받아가며 모든 공장 시설과 주택 등을 일일이 살펴 보았다. 그런데 임 대사는 신앙촌이 건설되는 놀라운 사실을 보고 매우 감격한 표정으로 우리 민족은 이렇게 해야만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 이번 방문 소감을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임 대사 담(談) ‘민족이 갱생하는데 있어서 두터운 신앙심을 가지고 근면한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일(獨逸) 민족이 근면 정신으로 경제를 부흥시키는 것을 보더라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신앙촌이 되어지기까지 이 안에 있는 식구가 다 한마음 한뜻으로 일해 나가는 것을 볼 때 참으로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비단 이곳뿐만 아니라 전 민족이 자발적으로 이와 같은 정신으로 다른 지방에서도 해 주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은 일반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나의 부탁과 소망은 서울시를 위시하여 경향각지에 계시는 각계 각층의 지도층 인물들이 이 신앙촌을 하루 속히 시찰하고 그대로 실천하여서 우리나라도 서독 이상으로 부흥 발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동시에 이 나라에 이와 같은 놀랍고 아름다운 신앙촌이 이루어짐을 무한이 기쁘게 여기는 바이다.”

1958년 4월 1일에는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 단장 존 콜터 중장이 신앙촌을 방문하였다. 이 자리에는 UN주재 상임대사 임병직씨와 윤치영씨도 동행했는데 신앙촌 건설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그들은 한달 만에 두 번째로 방문한 것이었다.

1958년 4월 14 일자 신앙신보를 보자.

“콜터 중장 일행은 신앙촌에 와서 공장내부를 1시간 20분간 낱낱이 보고 또 새로이 건축을 하기 위해 닦고 있는 지대까지 살펴보았다. 콜터 중장이 말하기를 이곳에 안내 받아 오면서도 보기 전까지 이렇게 놀라웁게 되어져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하였다고 했다.”

6·25 동란으로 폐허가 된 한국의 재건을 위해 유엔 차원의 원조를 전담하기 위해 주재하고 있던 콜터 중장으로서는 자기의 원조도 없이 신앙촌과 같은 꿈의 도시가 건설되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이와같이 위대하게 건설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와서 직접 보니 참으로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놀랍게 되어져 있다. 그리고 남의 원조도 없이 자발적으로 자급자족하여 이 정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여러분의 정신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신앙촌이야 말로 앞으로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 것을 확신하며 여러분의 수고를 찬양하는 바이다.“
이어서 당시의 신앙신보는 외국인과 외국기자의 빈번한 신앙촌 방문과 관심에 대하여 언급하고 국내 지도층과 언론의 태도를 꼬집어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날로 놀랍게 건설되고 있는 신앙촌은 국내는 물론이요 점차 세계인의 이목까지 집중시키고 있는 차제에 국내의 일부 인사들은 자기들의 신앙노선과 달리한다고 해서 박태선 장로가 행하는 일이라면 덮어놓고 방해하고 교활한 수단으로 모함해 왔다. 그렇지만 신앙촌은 사람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추호도 굴하지 않고 지금과 같이 이루어진 것이다.

신앙촌의 되어지는 소식은 벌써 뉴욕타임스 기자도 탐방한 바 있으니 외국인들이 먼저 알고 왕래가 빈번할뿐더러 세계에 먼저 알려질 것이다. 이와 같이 외인들의 왕래가 자주 있지만 우리 국내의 지도층 인사들은 서울에서 얼마 되지 않은 곳에 큰 도회지가 건설되고 있다는 것을 왜 모르고 있는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지? 하여튼 세계적으로 여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문제의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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