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펼친 책] 다시 본 ‘밀양’이야기

발행일 발행호수 2436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영화 <밀양>의 한 장면. <밀양>의 원작조설이 이청준의 <벌레이야기>이다.

“제 영혼은 이미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거두어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제 와서 제가 왜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어느 독실한 기독교인의 유언처럼 들리는 이 말은, 유괴 살인범 김도섭이 사형을 받기 전에 한 말이다.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1980년에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살인범 김도섭이 처음부터 기독교인은 아니었다. 그는 주산학원 원장으로 초등학생 제자인 알암이를 유괴 살해한 뒤 체포되었다. 그는 유괴 후 알암이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천연덕스럽게 알암이의 안부를 묻고 살해 후에는 시체를 재개발 건물의 지하실에 매장할 정도로 주도면밀한 살인범이었다. 알암이가 참혹한 시체로 돌아온 후 알암이 엄마는 슬픔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녀에게 ‘주님의 사랑’을 설파하며 살인범을 용서하라고 집요하게 설득한 사람은 독실한 기독교인 김 집사였다. 알암이 엄마는 결국 기독교에 귀의하고 김도섭을 용서하기 위해 그를 대면하기에 이른다.

자기 아들의 유괴 살인범을 면회 간 엄마
‘나는 예수 믿고 내 죄를 이미 용서받았다’는 말에
예수 믿으려던 마음도, 용서하려던 마음도 팽개쳐 버려

보통의 유괴 살인범이 피해자의 엄마를 어떻게 대할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살인범이라도 그 부모에 대해서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은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옥에서 기독교에 귀의한 김도섭은 너무나 평온한 얼굴로 알암이 엄마에게 말한다. “나는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 받아 영혼의 평화를 얻었다”라고. 김 집사는 김도섭에 대해 “그는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며 누구보다 깨끗한 영혼으로 주님의 인도를 따르고 있다”라고 말했다.

살인범의 면회를 마친 후 알암이 엄마는 예수를 믿으려던 마음도 용서하려던 마음도 팽개쳐 버리고 자살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청준은 소설의 모티브가 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유괴 살인범이 했던 그 말이 참혹한 사건보다 더 충격이었다”라고 했다. 아마도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청준과 같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받지 않았다면 김도섭도 인간 본연의 양심으로 참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극악무도한 살인범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 살인범에게 천국행 티켓을 발행하는 종교가 아닐까. 교황의 트위터에 클릭 한 번 하는 것만으로 모든 죄를 사함받는 너그러운 그들의 천국에는 수많은 김도섭으로 가득할 것이다. 살인범의 천국에 누가 가고 싶어할지 궁금해진다.
황은미/시온입사생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